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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덕충부(德充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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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도 작성일13-08-23 22:55 조회4,34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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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 님의 '맹자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장자 <덕충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 자기 몸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은 처세와 보신의 요점으로서 공자는 말하였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 '소학'에 나오는 말로 몸이며 얼굴이며 머리털과 살은 부모로 부터 받아서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그래서 그 당시 벌을 받아 얼굴에 글씨가 새겨지고 발뒷꿈치가 잘려 '올자'가 되는 것은 상당한 치욕인데, 올자 <왕태>는 그래도 제자가 천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왕태는 올자인데, 제자가 그리도 많습니까? 하니 공자왈 ~ 그는 성인이다. 나도 장차 그를 스승으로 모실려고 한다" 하며 그는 생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늘이 뒤집혀도 놀라지 않는다" 하니 제자가 놀랐다.
 
그는 만물을 하나로 보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으니 자신이 잃어버린 발뒷꿈치를 한덩이 흙이 떨어져 나간 것 처럼 여긴다.
또, 육신을 초월하여 천지를 육신으로 삼는다.
 
물론 왕태는 장자가 창작한 인물인데,  신도가 라는 사람도 올자였는데, 정나라의 재상인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에게 배울 때 자산이 신도가를 무시하자 - 신도가 왈~ 사람들이 나를 비웃으면 나도 잠깐은 발끈하는데, 백혼무인 선생 앞에만 가면 걱정과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선생님은 나를 19년 동안 올자로 대하신 적이 없지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숙산무지>라는 올자가 공자를 찾아왔는데, 공자가 그를 꾸짖자 숙산무지 왈 ~ "내게는 발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내 발보다 더 존귀한 것을 먼저 볼 줄 알았는데, 실망했습니다.  하니 공자가 사과하였다.
 
그리고 숙산무지가 떠나자 공자가 제자들에게 ~ 저 사람은 올자이면서도 덕인이 되었다~ 하였다. 
 
그 후 무지는 공자를 떠나 <노자>를 찾아가 말했다. " 공자는 지인(至人)이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하니 노자 왈~ "왜 그에게 생사와 시비가 하나라는 이치를 깨우쳐 줌으로써 그의 질곡(구속, 한계)을 벗겨 주지 않았는가? 하니 무지왈~ "하늘이 그에게 형벌을 주었는데, 제가 어찌 그것을 벗겨 줄 수 있습니까?
 
* 숙산무지는 인형(人刑)을 받았지만 공자는 천형(天刑)을 받아 <인의예의>라는 도덕에 매여 아직 한계에 머물러 있다~ 라는 뜻이다
댓글목록

명도님의 댓글

명도 작성일

허~ 감이당 답변 받아보기 참 힘드네요, ㅎ  양해 충분히 합니다.. 연구를  더해서 <감성에세이>에 올릴께요.

그리고 <인문고전> 뿐 아니라 여러가지 쟝르를 자유게시판에 올려도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기념으로 중국 선종(禪宗)의 3대 조사인 승찬(? ~ 606)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 나오는 선시 한 구절 보냅니다.

道가 무엇인지 묻지 말게나. 물을 수도 없고 답할 수도 없는 것이라네.

물을 때도 다른 것이 없고 답할 때도 다른 것이 없다네.

무엇을 하여도 다른 것이 없고, 아무 것 하지 않아도 다른 것이 없다네.

숨을 쉰다. 여기에 어떤 이유가 필요한가?  꽃을 본다. 여기에 어떤 이유가 필요한가?

바람소리를 듣는다. 여기에 무슨 근거가 필요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여기에 무슨 도가 필요한가?

부처를 찾지 말게나. 지금 당장 이것 외에 다른 부처는 없으며, 도를 찾지 말게나.  도라는 말 이외에 다른 도는 없다네....

감이당님의 댓글

감이당 작성일

감이당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감성에세이> 게시판에 올려놓으셨기에 제가 자유게시판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감성에세이> 게시판에 올라가는 글들은 기본적으로 일정한 분량의 에세이를 써서 코멘트를 받고 다시 수정하고 또 코멘트를 받고 완성된 글을 올리는 용도로 만들어진 게시판이라 여기로 옮겨두었습니다. 양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