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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와 페스트] 팬데믹은 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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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10-23 15:35 조회1,4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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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나의 ‘기쁨’!

복희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들어오시오. 나는 목 매달았소’

“이제 좀 나아졌어요.” 하고 그는 리유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렇지만 아까는 그 사람이 꼭 죽는 줄만 알았습니다.” (…) 마지막 층인 3층 왼편 문 앞에 이르자 리유는 거기 붉은색 분필로 쓴 글씨를 볼 수 있었다. ‘들어오시오. 나는 목 매달았소.’ (…) “마침 저도 외출을 하려는 참이었어요. 그때 소리가 들렸어요. 문에 써놓은 글씨를 보았을 때는 뭐랄까요, 장난으로 그랬거니 했어요. 그런데 저 사람이 이상한, 아니 심지어 음산하다고도 할 수 있는 신음 소리를 내는 거예요.” (…) “제 생각에는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까뮈, 『페스트』, 책세상, 2017, 35쪽)

오랑에 페스트가 막 시작될 무렵, 그랑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자살 미수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코타르라는 남자다. 그랑과 같은 아파트에 꽤 오래 살고 있었지만, 계단에서 마주치면 그저 인사 정도를 주고받던 사이였다.

평소 그랑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코타르는 외톨이에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자기 방, 건물 안의 식당, 목적을 알 수 없는 외출, 그리고 저녁이면 가끔 맞은 편 영화관에 가서 갱 영화를 보는 것, 이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겉으로는 포도주 대리점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이 주업 같지는 않았고, 재산도 좀 있는 것 같았다.

진료를 끝낸 의사 리유가 경찰에 신고를 하려 하자, 갑자기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나더니,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할 터이고, 그건 다만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가서 그랬던 것이”니(36쪽) 제발 경찰만은 부르지 말아 달라며 훌쩍훌쩍 울면서 애원을 했다. 그 뒤로 리유를 만날 때마다 건강은 뒷전이고, ‘아픈 사람을, 목 매달았던 사람을 건드리진 않겠죠?’, ‘선생님 병원에 나를 입원시켜줄 수 있나요?’, ‘진료소나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체포해간 전례가 있나요?’ 등등.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만 해댔다. 현관에, 그것도 눈에 잘 띄는 붉은색 분필로, 자살을 알리는 문구를 써 놓은 것도 그렇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기절초풍을 하는 것도 그렇고, 범죄자나 할 법한 질문들도 그렇고, 이 사람이 목을 매단 이유가 궁금해진다.

“지진입니다, 진짜 지진 말입니다!”

자살 미수 사건 이후, 그 전에 더러 찾아오던 사람들조차도 발길을 끊자, 코타르는 작전을 바꾼 듯했다. 남의 동정을 얻거나 환심을 사는 데에 온 힘을 쏟기로. 평소 왕래가 없었던 그랑에게도 계속 말을 걸어왔고, 두세 번 호화로운 카페에 데리고 간 일도 있었다. 코타르는 팁이 매우 후했고, 웨이터들도 그를 특별 대우해 주었다. 급사장이 따라 나와 코트 입는 것을 도와주자 무심코 “그만하면 증인이 되어 줄 수 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랑이 무슨 증인을 말하는 거냐고 물으니, 코타르는, “아니,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라며 얼버무렸다. 병석에서 일어난 며칠 뒤, 우체국에 가려던 그랑에게 누이동생에게 보낼 용돈을 좀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100프랑을 부쳐달라고 하더니, 다시 더 큰소리로 200프랑을 보내면 동생이 깜짝 놀랄 거라며, 자기가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그 애는 모를 거라는 둥 필요하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불친절하거나 무관심할라치면 바로, “그 망할 자식이” “딴 놈들하고 한 패”가 되었다며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어느 날엔가는 그랑더러, 저녁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꼬치꼬치 묻더니, 뜻밖에도 자기도 책을 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엉뚱하게도 예술가는 딴 사람들보다 더 권리가 있고, 여러 가지가 허용되기 때문이란다.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내뱉는 말이나 행동을 보건대,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온통 그를 지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을 자기에게 유리한 증인으로 만들까, 어떻게 하면 특권을 행사해서 체포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 꽉 차 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되질 않으니….

그러던 중, 오랑에 페스트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생겼다. 사람들이 전염병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코타르의 귀에까지 그 소문이 들렸다.

“사람들이 유행병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게 정말인가요, 선생님?” “사람들이야 늘 떠들어대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하고 리유가 말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가지고 한 열 명만 죽으면 세상 끝장이라도 난 듯이 떠들어댑니다. 꼭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요.” “그럼 꼭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일까요?” 코타르는 갑자기 자동차 문의 손잡이를 꽉 잡더니 눈물과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외치고는 달아났다. “지진입니다. 진짜 지진 말입니다.” (90-91쪽)


코타르는 갑자기 자동차 문의 손잡이를 꽉 잡더니 눈물과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외치고는 달아났다. “지진입니다. 진짜 지진 말입니다.”

세상이 대혼란에 빠지기를, 그래서 공권력이 자기에게 관심을 안 가지게 되기를 학수고대했는데, 유행병이라니! 뭔가 기회가 오는가 싶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큰일이나 난 것처럼 요란을 떨면서 대책을 세워댄다. 그래서 대혼란은커녕 혼란으로 가기도 전에 수습이 되고 만다. 늘 그래왔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그걸 수습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일 테고, 그나마 교류가 있는 리유, 타루, 그랑조차도 이렇듯 불안한 자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역에 온 힘을 쏟고 있으니, 눈물이 나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방법은 하나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도 그저 그런 지진이 아니라 세상이 뒤집어질 만한 진짜 지진 말이다. 자신도 그 안에 포함되느냐, 마느냐는 관심 밖이다. 나 혼자만 아니면 된다. 다른 사람도 다 함께 불안과 고통에 시달린다면 마음이 편안할 것 같다.

“페스트 안에 있는 게 더 편안해요”

시의 문들이 폐쇄된 지 이틀 후, 의사 리유는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코타르를 만났는데, 그는 리유에게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그런데 선생님, 그놈의 페스트가 거 참! 점점 심각하게 되어 가는데요.” 의사는 그렇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코타르는 거의 유쾌해 하는 듯한 어조로 단정을 내렸다. “이제 와서 가라앉을 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될 걸요.”(116-117쪽)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9개월이 지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염의 불안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주는 불편, 그리고 경제활동 제한에 따른 소득의 감소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 마스크 등 방역 물품 생산과 판매로 뜻하지 않은 수입을 올린 사람들도 있고, 코로나 덕분에 자신의 범죄가 묻히는 것에 안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코로나가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칫 그런 심리가 한계치를 넘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페스트 속 코타르의 행보가 극적으로 보여준다.

드디어 코타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왔다. 절대로 페스트가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 점점 심각해져야만 한다. 그렇게만 되면,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죽어가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세상에서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군중 속에 섞여, 자신의 “꿈이면서도 만족스럽게 맛보지는 못했던, 사치와 여유 있는 생활, 즉 거침없는 향락을”(266쪽) 맘껏 추구할 수 있으리라.

코타르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페스트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통과하면서 점차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수개월째 요지부동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리유와 함께 보건대를 조직한 타루가 “왜 우리한테 와서 같이 일하지 않으세요, 코타르씨?”라고 물었을 때, 그는 무척 불쾌했다. 코타르는 ‘양심에 거리끼지만 그러기는 싫다’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말했다. “나는 페스트 안에 있는 게 더 편안”하다고. “그런데 왜 내가 그것을 저지하는 데 끼여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217쪽)

코타르가 원하지 않는 단 한 가지는 딴 사람들과 헤어져 있는 일이다. 그는 “혼자서 죄수가 되어 있느니보다는 모든 사람과 함께 포위당해 있는 편”이 더 좋은 사람이다.(264쪽) 그런데,페스트가 오기 전에는 사귀고 싶은 상대가 있어도 그와 가까워졌을 때, 혹시 자신을 밀고할지도 모른다는, 그러면 혼자서 죄수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격리된다는 불안 때문에 외톨이로 지냈다. 타루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올바른 양심을 갖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다면 “그 어느 누구도 남과 함께 어울려 지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오면서 올바른 양심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을 함께 묶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페스트를 안겨 주는’ 길밖에 없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페스트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원하면서도,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각자 저마다의 근심 속에 파묻혀 외롭게 지내게 되었으니,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외롭다는 그 사실이 코타르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점차 코타르의 씀씀이가 커졌고, 급기야 배급물자의 불법 거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불안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담배와 술의 수요가 폭증했고, ‘불법거래’로 위험과 차익이 극대화되니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질구레한 투기에도 손을 뻗쳐 점점 더 부자가 되어갔다. 이전과 달리 그는 대낮에도 활개를 치며 다녔고, 누구를 만나도 ‘자연스러운 태도’로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코타르는 살맛이 났다.

페스트의 종식, 광기의 폭발

그러나 살맛나는 생활도 잠시. 그렇게도 요지부동이던 페스트의 통계 숫자가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여러 차례 리유를 방문했다.

“그냥 이런 식으로 갑자기, 아무 예고도 없이, 질병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세요?”

“다시 말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건가요? 오늘 내일로 다시 터질 수도 있단 말씀이군요.” 

“결국은 시 문이 열리고 말테죠. 그러면 두고 보세요. 모두들 나같은 건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버리고 말 겁니다.”(369-370쪽)

그는 질문을 했다가, 낙담을 했다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를 알아챈 리유가 숫자상으로는 분명히 희망적인 징조를 보였지만, 코타르에게는 아직은 섣불리 승리를 외칠 단계는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코타르는 그 말을 이웃 사람들에게 퍼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자신도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2주 뒤 시의 문을 개방한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은 후 그는 미친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며칠 뒤, 그는 길거리를 헤매다가 만난 타루에게 페스트 종식 뒤 모든 기관들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거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끝까지 혼란을 붙들어두고 싶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불쑥 경찰이 나타났고, 코타르는 눈 깜짝할 새 도망쳐버렸다.

페스트 종식을 자축하는 축제가 열리던 날,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누군가 총을 쏘아댔다. 코타르였다. 페스트가 물러간 세상, 거기서 사람들과 격리되어 또 다시 불안에 떨며 외톨이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욕망 추구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던 코타르, 그의 욕망은 점차 더 짜릿한 것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맸고, 위험과 불안을 동반할수록 쾌감은 배가 되었다. 결국 평온한 일상에서는 어떤 만족도 느낄 수가 없게 된 그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으면 외톨이가 된 듯 불안했고, 다른 사람들을 고통 속에 끌어들여 함께 있을 때라야 마음이 편안했다. 그런 심리가 총을 쏘게 했고, 그는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체포’를 기어이 당하고야 만다.

오로지 쾌락만을 향한 무한질주는 신체의 생리적인 메커니즘마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 그리하여 종국에는 광기의 폭발로, 죽음충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코타르의 자살 소동과 총격 사건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그는 다시 유형수가 되어 그렇게도 싫어하는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이는 “인간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긍정”한(402쪽) 대가, ‘페스트는 나의 기쁨’이라고 외친 전도된 욕망의 대가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휘젓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조금치의 ‘코타르’도 살고 있지 않다고, 이 지구상에 적어도 ‘팬데믹은 나의 기쁨’이라 대놓고 외치는 ‘코타르’는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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