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힘은 무엇에서 나올까? 『동의보감』에 따르면 그것은 곡식이다. “천지간에 사람의 성명을 길러주는 것은 오직 오곡뿐이니 오곡은 토덕을 구비하여 기의 중화를 얻었기 때문에 그 맛이 담백하면서 달고 성질이 화평하여 몸을 크게 보하면서도 삼설을 잘 시켜서 오랫동안 먹어도 탈이 나지 않으니 이것이 사람에게 크게 이로운 점이다.” 5행으로 볼 때 토의 덕이란 치우치지 않고 중화를 취하는 것이다. 곡식은 단맛이긴 하지만 담백하고 화평하여 매 끼니 먹어도 싫증 나지 않고 탈도 안 나는, 덕이 있는 식품이다. 곡기를 일주일 이상 끊으면 죽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곡식을 원료로 했으면서도 본래 곡식의 담백, 화평한 기운과 완전히 다른 성질로 변해버린 식품이 있으니 바로 ‘술’ 즉 알콜이다. “술이란 오곡의 진액이고 쌀누룩의 정화로서 비록 사람에게 이롭기도 하지만 또한 사람을 상하게도 하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술에는 열도 많고 독도 많기 때문이다. 큰 추위에 바닷물도 얼어버리지만 오직 술만이 얼지 않는 것은 그 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혼란해져서 사람의 본성까지도 바꾸어 놓는 것은 그 독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곡식이 물과 누룩을 만나 발효되면서 그것은 액체가 되지만 지독한 열 혹은 양기 덩어리의 기운으로 변한다. 바닷물이 얼어버리는 추위에도 술은 얼지 않으니 그 열성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혈맥을 잘 돌아 찬바람과 큰 추위를 술로 이겨내는 경우가 많았고 힘든 노동을 할 때도 술의 힘을 빌리곤 한다. 옛 설화에 나오는 장사들은 말 술을 마시고도 끄떡 않고 일을 했고 싸움을 했다. 그뿐인가? 귀신을 영접하는 제사에 빠져선 안 되는 음식이 바로 제주(祭酒)이니 사기(邪氣)를 없애주고 위로 올라가는 기운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