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의 보옥이와 대옥이가 투닥거리는 장면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둘은 분명 너무 좋아하는데도 맨날 싸우고 오해하고 울고불고 야단이다. 그중 재밌는 사건 한 가지를 보면, 보옥이가 어느 날 외출했다가 하인 녀석들에게 차고 있던 패물들을 거의 빼앗기다시피 나누어 주고서 돌아왔다. 대옥이는 자기가 만들어준 염낭주머니까지 없는 걸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씩씩대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대옥을 보고서 뭔가 불길하여 서둘러 따라간 보옥이, 아니나 다를까 대옥이가 보옥이에게 주려고 만들던 향주머니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은 뺏겨서 없는 줄 알았던 염낭주머니는 보옥이의 속옷 속에 잘 간직되어 있었다. 이제 같이 부아가 난 보옥은 그걸 꺼내 보여주며 “자 이것 봐. 이건 도대체 뭐야? 내가 언제 누이의 물건을 남한테 함부로 주었던 적이 있단 말이야?”라고 화를 냈다. 또 한 술 더 떠서, 그렇게 자기한테 만들어주기 싫다면 이것도 돌려주겠다며 그 염낭주머니를 대옥에게 던지고 나가버렸다. 아니, 뭐 별일이라고 이렇게들 화를 내나?
보옥이가 이렇게 나온다면, 대옥이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다시 성깔을 부려보는데, 자기의 오해에서 비롯된 거지만 자기가 만들어주기 싫어서 그랬다는 보옥이의 오해도(물론 일부러 염장지르려는 거다)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대옥은 너무 참담하고 화가 나서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그 염낭주머니마저 잘라버리려 하자 보옥이 재빨리 달려와 사죄하고 달래준다. 이때 대옥이 울며불며 “제발 나하고 더는 이렇게 실랑이하지 말고 살아. 그렇게 화를 내려면 아예 손을 털고 사라지라고. 이게 도대체 뭐야!”라고 소리친다. 그러니까 말이다. 대옥아. 왜 둘 다 일을 만들어서 화를 내고 있느냐고.
앗,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이들은 무슨 커플도 아니고 할머니 거처의 한 켠에서 함께 기거하는 사촌지간이며, 열 두세 살 남짓된 아이들이란 점이다. 정화스님의 뇌과학 이론에 따르면 이 나이대의 아이들의 뇌신경 연결망의 수는 일반성인의 1.5배나 되기 때문에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어른이 볼 때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열을 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별 것 아닌 일로 이렇게 유치한 싸움을 벌이는 걸까? 물론 그런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이 조금 더 커서는 홧김에 이렇게 막나가는 충동적 행동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계속 아프게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보옥과 대옥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도 주체 못하는 슬픔으로 가슴앓이를 한다. 그렇다면, 서로 싸우는 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오, 오히려 사랑의 전조증상인 것이며, 사랑이 깊어질 때 슬픔도 함께 깊어지는 것은 슬픔이야말로 사랑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