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작은 도서관 모임을 갔더니 해고 통보받은 관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투쟁이나 협상에서 나서지 못하는데, 폐관된 도서관을 지키며, 해고된 채 출근해서 대출 반납하고 동아리까지 챙기고 있더라고. 이야기를 듣다 다 같이 눈시울이 벌게졌다. 모임 후 그동안 외면하려 했던 것이 미안해서 홍삼 스틱 작은 것을 선물로 보냈다. 그랬더니 나의 속 좁음을 모르는 그분은, 얼마 안 되는 홍삼을 해고된 다른 관장들과 나눴다며,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고 한다. 나는 더욱 미안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날 모임에서 눈물지은 것은 그분이 불쌍해서만은 아니었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해고됐건 말건 책 보러오는 사람에게 책 보여주고 싶은 마음, 동아리 사람들이 오면 챙겨주고 싶은 마음… 같은 마음을 지녔음을 느꼈던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입장과 처지가 다르지만 같은 것에서 감응할 수 있는 사람들임을 알았기 때문에 가슴 아프면서도 힘이 났던 것이다. 그런 작은 일에 감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의 힘이기도 했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다큐멘터리 <Infinite Potential>에서 크리슈나뮤르티와의 대담을 통해 말한다. 우리는 전체성의 일부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질서와 연결되어 있다고. 그래서 우리가 느낀 슬픔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것이기도 하다고. 한 작은 도서관의 아픔은 작은 도서관 모두의 아픔이다. 작은 도서관인의 아픔은 폭력과 욕망에 중독된 인류의 아픔이고, 인류의 아픔은 모든 생명의 아픔이기도 하다. ‘나’의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과 함께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짧게나마, 감응하여 세상의 이치와 통하는 감이수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응이 현 사태를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냐고 할 수도 있겠다. 물리학자 데이빗 봄은 앞서 언급한 다큐에서 어린 시절 징검다리로 강을 건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징검다리 돌 하나를 디디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르는 채, 바로 다음 돌만을 디딜 뿐이다. 그러나 그 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전체성의 존재로 연결로 이어주는 깨달음의 순간일 수 있다고 한다. 겨우 한 걸음이지만, 그 걸음은 나와 연결된 존재로 이어준다. 나는 그들의 일부임을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러면 이 불인한 천지의 온갖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감응하고 통하여 세상의 이치와 통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미약한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계사전은 이어서 말한다. 통하면 오래갈 수 있고, 하늘이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通則久, 是以“自天祐之, 吉无不利, 계사하전 2장)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