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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에세이] 약을 쓰지 않아도 기쁨이 있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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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10-28 07:57 조회2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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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쓰지 않아도 기쁨이 있는 길은

박 해 광(감이당)

신기하다. 이해는 되지 않는데 선명하게 외어진다. ‘무망지질无妄之疾, 물약勿藥, 유희有喜.’ 무망无妄괘 구오九五효사다. 무망无妄괘에 대하여 「서괘전」은 ‘무망无妄괘의 모습은 건乾괘가 위에 있고 진震괘가 아래로 있다. 진괘는 움직임을 상징하는데, 하늘로서 움직이면 진실함이 되고, 인간의 욕심으로 움직이면 거짓됨[妄]이 있다. 무망이라는 뜻이 위대하구나!’라고 설명한다. 이 설명을 따르면 무망지질无妄之疾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 일어난 병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따라 일어난 병이며 약을 쓰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고 약을 쓰지 않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병과 약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구나.’ 무망지질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면서 든 생각이다.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고 병원을 나서며 망설였다. 언젠가 감기 초창기에 빨리 낫고픈 욕심으로 약을 지어 먹었지만 옴팡지게 고생만하고 앓을 만큼 앓고 나서야 회복 된 적이 있다. 그 후로 감기약은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를 믿을 수 없었다. 약을 믿기로 했다. 약을 먹는 동안 콧물은 흐르지 않았다. 대신에 머리가 아팠다. 나흘이 지나고 처방 받은 약을 다 먹었다. 다음날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해열제에 의존해 닷새를 지내고도 열이 내리지 않아 코로나 치료제를 처방받았다. 열은 내렸지만 머리가 아프고 증상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4월 한 달을 코로나와 씨름하며 보냈다. 지금도 의문이다. 꼭 약을 먹어야 했을까? 물론 나의 답은 ‘먹어야 했다’이다. 나의 병은 무망지질이 아니었으니까.

하늘은 몸을 통하여 신호를 보낸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고. 삶은 수단이 아니고 과정이라고. 그런데 나는 약으로 그 신호를 가리고 못 본체하며 행복이라는 망을 향하여 질주를 한다. 병이라도 나면 빨리 약을 먹고 다시 질주를 한다. 채울 수 없는 욕망을 향한 무한 질주를 행복이라고 착각하면서. 무망하면 ‘밭을 갈지 않고서도, 수확하며, 1년 된 밭을 만들지 않고서도, 3년 된 밭이 되니,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고 했는데도. 밭을 갈기도 전에 수확을 생각하고 밭을 묵히기도 전에 비옥한 땅을 욕망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무망이 아니라 무병無病이다. 하늘의 이치가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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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팔월, 삼십 여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을 했다. 더불어 나의 이중생활도 끝이 났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서 삼십 여년의 교직 생활 중 ‘아, 나 이 순간 더 없이 행복하구나! 시간이여 멈추어라! 영원히!’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없었다. 난 교사이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다. ‘선생님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았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중에 교사는 거의 없었다. 학교생활은 나의 에너지를 다운 시키고 충전이 필요하다며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으려했다. 방학을 기다리며 한 학기를 보냈고 어김없이 돌아오는 개학이 두려웠다. 방학으로도 부족하여 10년마다 쉬었다. 돌아보니 하늘은 십년마다 신호를 보내왔던 것 같다. 처음 신호가 왔을 때는 다행히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서 2년을 쉬었다. 다음은 의사 선생님을 설득하여 2년을 쉬었다. 십년이 지나 더 이상 휴직은 의미가 없어졌다. 건강 검진에서 폐사진이 이상하여 정밀 검사를 받고 2년 정도의 안정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학교에 휴직원을 내고 6개월 후 퇴직을 했다. 나의 몸이 가는 곳-학교에 나의 마음-지극한 진실과 정성은 없었다. ‘진실무망한 마음으로 가는 것은 뜻을 이룬다.’고 했는데. 

진실무망한 도로 행해나가면, 어떤 일에서든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함이 없다. 사물을 대하는 데 진실하게 정성을 다하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수양하면 자신의 몸이 바르게 되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처리하면 그 일 처리에 이치를 얻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이 감동하여 변화하게 되니, 어떤 일에서든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함이 없다.(정이천, 『주역』, 심의용 옮김, 527쪽, 2016, 글항아리)

2y-kang-dFohf_GUZJ0-unsplash삼십 여년의 교직 생활 중 ‘아, 나 이 순간 더 없이 행복하구나! 시간이여 멈추어라! 영원히!’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까?

병은 하늘이 몸을 통하여 보내는 시그널이다. 잠깐 멈추고 너의 삶의 태도를 살펴보라고. 습관적인 너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해 걸어왔고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그 발걸음에 임하는 너의 마음가짐은 진실무망한지? 잘 보라고. 하늘은 만물을 변화시켜 길러내고 끊임없이 살리고 살려서 각 사물의 본성과 명命을 바르게 하고자 했으나 난 그 신호를 못 본체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익숙한 사소한 편리함에 안주하여 작은 습관 하나 바꾸지 못하고 제 몸 하나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두려움이 되었고 두려움은 몸에 대한 무관심이 되었다. 이렇게 나의 병은 예정되어 있었다. 나의 병은 잘못된 습관, 몸에 대한 거짓된 마음이 가져온 병-망지질妄之疾이다. 약을 쓰지 않는 것[勿藥]이 두려운 이유다. 이 달 21일 병원에 간다. 다시 폐에 대한 정밀 검사를 하고 약을 계속 먹을지 중단할 지를 결정하게 된다. 어떠한 결정이 나든 이제 약만으로는 안 된다. ‘사람에게 망령된 거짓이 있다면 이치상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이미 진실무망한데 또 다시 약으로 다스리면 이는 도리어 망령된 것이니, 어떻게 약을 쓸 수 있겠는가?’ 무망, 어렵지만 가야할 길이다. 약을 쓰지 않아도 기쁨이 있는 길.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걷기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핑계만 생기면 중단했다. 지금은 ‘살아야한다’는 마음으로 걷는다. 같은 시간에 가면 항상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보면 나도 방향을 바꾸어서 걸어볼까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걷는 것이 더 힘들어 보이는지 어느새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하루는 마음을 내어 다시 시점으로 돌아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더 힘들지는 않았다. 방향만 바꾸었지만 그 길은 새로운 길이었다. 이제는 두 바퀴를 걷는다. 방향을 바꾸어서. ‘병과 약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 병을 더 이상 회피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무병을 바라며 약으로 무마하지 않고 함께 사는 법을 익히려는 마음만으로도 새로운 치유가 시작될지 누가 아는가?’ 걸으면서 하는 생각이다. 이 또한 나의 욕심[妄]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katarzyna-urbanek-i4-rO3IwUe4-unsplash이제는 두 바퀴를 걷는다. 방향을 바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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