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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죽음 -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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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4-02-03 12:28 조회5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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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미숙 선생님의 신간현자들의 죽음 -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가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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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죽음에 대한 명랑하고 심오한 탐구

이제
60대는 여생이 아니라 인생 3막이 기다리고 있다. 청년기, 중년기 못지않은 시간을 살아 내야 한다. 1, 2막엔 수명 여부와 상관없이 도달해야 할 목표 혹은 미션들이 있었다. 경제적 자립, 결혼과 육아, 사회적 성취 혹은 가치와 명분 등. 설사 그 도중에 생을 마쳐도 그것을 끝이라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60대는 다르다. 아무리 여생이 길다 한들 이젠 대책 없이 소멸과 해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한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 여정의 테마가 소멸과 해체라는 건 분명하지만, 거기에 대한 지혜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늙고 어떻게 병들지, 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 더 놀라운 건 우리 시대, 우리 문명에는 이에 대한 자산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세기 동안 죽음에 대한 모든 지적, 문화적 자산을 다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자본과 노동(과 소비)밖에 모르는 문명은 그래서 치명적이다! 마치 눈을 가린 채 새벽길을 걷는 느낌이랄까.
출구는 오직 하나뿐이다. 노병사, 특히 죽음을 탐구하면 된다. 반드시 수행해야 할 미션 따위는 없는데, 다가오는 경로는 소멸과 해체가 분명하다면, 이거야말로 죽음을 탐구하기 딱 좋은 시기 아닌가? 주지하듯이, 인류 지성사의 모든 영역, 종교와 철학, 그리고 과학과 예술 등은 죽음을 이해하려는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문명을 이끌어 온 동력이기도 하다. 하긴 당연하지 않은가. 죽음을 모르면 삶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분리될 수 없는 법, 고로 생사는 하나다! 동서양의 고전이 수천 년간 전승해 온 진리다. 그 지혜와 방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가 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8인의 현자들이 그 최고의 전령사가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
, 장자, 간디, 아인슈타인, 연암과 다산, 사리뿟따와 붓다.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생사의 관문을 지극히 경쾌하게 통과했다는 것!

보통 우리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대할 때면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피할 수 없기 마련이다.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그리고 뭔가 결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없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 외면하고 싶은 죽음을 현자들이라 불리며 지금까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여기에 대한 그들의 지혜를 빌리면 우리도 좀 더 다른 자세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고, 그 죽음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독자들은 이 책을 펼쳐서 읽는 순간부터 닫기까지 이토록 죽음을 경쾌하게 대할 수 있다는 시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직설적이지만 상황에 딱 떨어지는 언어로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작가의 질문인 듯 아닌 듯한 물음과 거기에 간결하게 내놓는 답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엔 이들은 시대도, 문명권도, 인생 경로도 다 다르지만 우리는 이들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삶의 지혜와 비전을 온몸으로 구현해 낸 위대한 스승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생사의 관문을 지극히 경쾌하게 통과했다는 것.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크나큰 휴식이며 평화이자 지복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떻게 이런 반전이 가능한가? 무엇보다 그들에게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니었다. 죽음은 벗이었고, 동반자였으며, 생의 이면이었다. 하여 그들은 언제든 어디서든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갔다.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 참 멋진 패러독스다. 이 역설이 가능해지려면 무엇보다 삶에 대한 통찰이 심오해야 한다. 삶이 심오할수록 죽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래서인가. 죽음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명랑하다! 덕분에 알게 되었다. 심오해야 명랑할 수 있고, 명랑함은 심오함의 원천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리고 죽음은 오직 자신의 힘으로 건너가야 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죽음만큼 공평무사한 사건이 또 있을까. 20세기엔 이런 원리를 깨우칠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누구나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죽음을 비장하고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명랑하게 심오하게! 죽음이 해방되어야 삶 또한 충만할 수 있으므로!

죽는 법을 배우라
! 그러면 사는 법을 알게 되리라!

죽음을 피하는 한 우리는 죽는 법을 배울 수 없고 그 두려움 때문에 더더욱 삶에 매달리게 된다
. 그것 자체가 이미 구속이요, 억압이다. 죽음의 구속을 피하려다 삶 자체가 감옥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그 죽음을 홀로 통과해야 한다. 잘 통과하기 위해서는 길은 하나다. 죽는 법을 탐구하면 된다.
현자들은 인류의 스승들이다. 이들은 많은 것을 알려 주었지만, 그 무엇보다 잘 죽는 법을 알려 주었다. 이런 죽음의 형식이 있다고.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면 된다고. 그러면 죽음을 통해 자유와 해방을 만끽할 수 있다고.

독자들은 이 책과 함께 이들이 어떻게 죽음을 아득한 나락 혹은 깜깜한 어둠으로의 침몰이 아니라
빛 혹은 평화로의 비상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 그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책은 서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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