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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생과 사 그 비밀을 말한다] 7주차 세미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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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아람 작성일23-12-05 00:32 조회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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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차에는 유가와 도가가 생사를 담론한 내용, 부처님께서 인과윤회를 불신하는 원인을 설하신 것, 업보차별경에 대한 세미나를 했습니다.

 

 

공자는 생사 문제에 대하여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했습니다. , ()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비로소 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공자님께서 죽음에 대해서 잘 모르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지 않습니다. 주역 책의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때까지 읽으셨다고 하는데, 죽음에 대해서 모르셨을 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죽음보다 생에 더 집중해서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도가삶이란 여관에 기숙하고 있는 것이요, 죽음이란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태어나면 죽어가고, 죽어가면 태어난다.” 했습니다. 우리는 마치 여행자로서 여관이든 텐트이든 길바닥이든, 누울 곳이 생기면 잠을 자고 모험하면서 다른 무생물들과 생명체들을 만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 전체를 보면 생명체보다 죽어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극소수의 생명체로 태어나서 잠깐의 시간 동안만 지구에서 살다가 다시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행운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인과윤회를 불신하는 원인을 설하시다

부처님께 견정(見正)이라는 한 비구가 부처님께서는 내생 후세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이 죽고 나서는 돌아와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어떻게 알 수 있나요?’하고 여쭈어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만약 꽃과 열매와 줄기와 마디와 뿌리를 모아서 다시 원래의 씨앗으로 되돌아가게 하려 한다면 가능하겠는가?” “생사윤회 하는 것도 그와 같다. 식신(識神)은 연기하는 법(緣起法)이니, 연기는 무명(無明) 때문이며, 무명은 탐애(貪愛)로 나아간다. 무명은 저 나무의 씨앗과 같다. 씨앗은 작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하나의 무명이지만 갖가지 인연을 생겨나게 하니 갖가지 인연은 본래 무명으로 말미암아 생겨 나온다. 무명 -> () -> () -> 명색(名色) -> 6() -> () -> () -> () -> () -> () -> () -> 노사(老死) : 12 인연이 합하여져 몸이 이루어진다. 식신이 윤회하며 옮겨가는 것은 선악의 행을 따라 변화가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은 업에 얽매여 귀속하고 업에 의존하여 머물며 자기의 업에 따라 전환 변화하여 가고, 그 인연으로 업보에는 상등 중등 하등의 차별이 있어 다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수명, 질병, 외모, 위엄 덕망과 권세, , 업에 따라 다양한 과보를 받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업보차별경을 보니 제1장부터 제43장까지 아주 자세하게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수명이 짧은 과보를 얻는 열 가지 업, 몸에 병이 많은 과보를 얻는 열 가지 업, 외모가 못생긴 과보를 얻는 열 가지 업, 삿된 지혜의 과보를 얻는 열 가지 업.. 등등 읽어보면 너무 무서워서 모든 항목의 도덕을 지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현생에서의 업에 따라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것이 믿기가 어렵고, 사실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다음 생까지 가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지금 생에서 과보를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6장 외모가 못생긴 과보를 얻는 업에 나와 있는 대로, 분노하기 좋아하고, 남에 대하여 혐의와 원한 품기를 좋아하고, 남을 속이고, 못생긴 사람을 보고 헐뜯고 깔보고 천대한다면, 지금 아무리 멋진 외모를 타고났어도, 표정이나 인상이 점점 고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업들이 다음 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바른 지혜를 갖게 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기억하고 싶습니다.

첫째, 바른 견해의 지혜가 있는 사문과 바라문에게 묻기를 잘 할 수 있는 것이요.

둘째, 도리에 따르고 나와 남을 유익하게 하는 바른 일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이요.

셋째, 바른 가르침을 듣고 닦아가는 것이요.

넷째, 남이 바른 선정법을 말하는 것을 보고 좋다고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요.

다섯째, 바른 가르침을 말하기 즐겨하는 것이요.

여섯째, 정견의 지혜가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이요.

일곱째, 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것이요.

여덟째, 부지런히 닦고 많이 듣는 것이요.

아홉째, 삿된 견해를 멀리하는 것이요.

열째, 어리석고 나쁜 사람을 보고 마음에서 깔보고 천대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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