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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4주차 세미나 발제-[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389쪽-끝) -1조 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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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심이 작성일23-11-09 19:30 조회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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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대중지성/ 4학기/ 4주차 발제 2023.11.10. 오영숙(389p_)

 

6장 두개의 별, 두 개의 지도

 

그들은 왜 만나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으로 꽤 먼길을 왔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최소한 당파나 가문, 학연의 차이 때문이 아니고 그보다는 더 심오한 영역 즉 각자가 밟아가는 길이 너무 뚜렷해서이다. 하늘의 별처럼,

연암은 한반도에 한문이 들어온 이래로 한문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문장가이고, 다산은 양적 방대함의 차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18세기 조선에 25년의 간격을 두고 탄생한 두 별은 우리의 지도가 되어 길을 내었다. 그러면 우리는 저 두 별이 각자 걸어가며 내었던 지도를 어떻게 우리 삶의 지도로 변환시킬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모더니티와 두 사람

갑신정변의 지주였던 박규수는 연암의 손자로 갑신정변의 주도자들인 박영효, 김옥균 등의 문하생들과 함께 <연암집>을 강독했다한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문명개화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연암의 문장이 평등사상의 원조로 간주되었던 것,

흥미롭게도 갑신정변이 실패한 다음해에 갑신정변이 다산의 사상에 주목하도록 추동했던지 고종은 다산의 저서를 올리라고 명하여 <어람본여유당전서>가 필사되어 바쳐졌다. 그렇지만 세도정치와 민란으로 점철된 19세기 조선왕조는 시운이 다한탓인지 지성사는 더욱 황폐해져 연암과 다산은 조선의 지성사에 한자문화권의 클라이막스이자 대단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조선왕조가 종언을 고했던 1910년 조선왕조는 연암에게 좌천성을, 다산에게는 규장각 제학을 추중하고 둘다에게 문도라는 시호를 내렸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조선왕조의 인재였음을 인정해주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Q 연암의 문장에서 문명개화를 꿈꾸는 갑신정변의 주요인물들이 평등사상을 느꼈다면 현재의 우리들은 무었을 느낄 수 있을까? 가장 와닿는 글과 느낌을 나눠보자.

 

-20세기와 계몽의 빛

20세기 후반, 특히 1970년대는 민족, 국가, 민중이라는 거대한 절단선이 지배한 시대다. 아울러 문명, 화폐, 계몽, 진보등의 모든 것을 하나로 잇는 개념이 민족주의였다. 다산학은 이런 배치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의 경학은 민족적주체성의 발로로, 그의 애민사상과 앙가주망은 민중적 이념으로, 사회시에 담긴 분노와 파토스는 리얼리즘 미학으로, 이 모든 것을 망라하는 저서가 <목민심서>였고 그 대중적 히트작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였다.

열수 정약용이 다산선생으로 <여유당전서>가 다산학의 결정체로 재탄생되는 순간이었다.

다산이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민중적의지로 75년동안 치열하게 살다가 사라져간 역사적 인물이다.....다산학의 선 자리는 반주자학, 반성리학, 반봉건, 반부패의 일관된 이론으로 봉건사회에 대한 비판적 주장......봉건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주체적 노력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박석무,책머리에,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1세기:디지털로 유동한다!

연암도 실학담론의 부상과 더불어 한국학의 중심에 진입하긴 했다. 또 다산과 더불어 실학의 양대산맥으로 호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암집>에서 민족이나 민중, 리얼리즘에 부응할만한 텍스트를 찾기란 참으로 난감하다. <양반전> <호질> <허생전> 등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주체적 측면에서 그나마 이용후생이나 리얼리즘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소설의 부상과 더불어 연암의 전 작품들은 18세기 소설사의 총아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열하일기>는 문,,철 이라는 분류법에 의해 분해되어 <허생전> <호질> 뿐 아니라 <일야구도하기> <상기> 등의 배경으로만 호명될 뿐이다. 물론 연암의 문장에 대한 조명은 쉬지 않고 이루어졌다.

이 어른의 글은 책을 펼치자마자 1만길이나 되는 빛이 뻗쳐나와 사람의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오(<나의아버지 박지원>P254) 죽하 김기서라는 인물이 했다는 평이다. 이런 마음은 20세기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의 정체를 도무지 간파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

21세기는 디지털 파동의 시대다. 중심으로부터 탈주하여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물결의 파동, 그 파동 속에 유머와 패러독스가 탄생한다. 그것이 곧 생동하는 빛깔 혹은 생의 리듬이다. 지성이란 무릇 기운이 생동해야한다. 우리 시대의 지성은 분명 위기다. 정보는 넘치는데 정보들의 나열. 이런 스펙에 갇혀서 지성의 창안을 기대하기 어렵다. 디지털의 유동성, 정보의 범람이라는 시대적 배치를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지도를 그릴 수 있다면 연암의 지성과 문장은 특히 <열하일기>는 아주 멋진 로드맵이 될 것이다.

또한 21세기 지성사를 주도하는건 불교와 양자역학이다. 불교 가운데서도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런데 얼마나 기묘한가. 연암이 열하에서 티베트불교와 판첸라마5세를 만났다는 사실이.

 

-SNS와 콜센터

정보들의 바다와 무수한 이합집산-지상의 정보를 모으고 누가 무엇을 물어도 명쾌하게 답변해주는 중안본부, 다산콜센터! 다산학과 21세기의 만남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반면 연암은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연암에게 물어야 할 것은 길을 찾는 방법, 아니 지도다.정보와 정보 사이그 사이에서 펼쳐질 비젼과 서사이다. 그것도 단 한 스텝뿐이다. 나머지는 오로지 스스로 찾아가야한다 그래서 SNS.

한 가지 더. 다산의 작업은 고독했다. 그의 박람강기는 중앙집중적이고 일방향적이다. 서간집에서도 보여주듯이 타자의 목소리들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고독한 거인다산선생..

그에 비하면 연암의 글쓰기는 쌍방향적이고 다중네트워크다. 연암은 늘 누군가와 함께였다.

다산은 방대하지만 고독하고 어렵지 않으나 방대한 배열에 압도당한다.

연암은 간결하지만 시끌벅적하고 까다롭고 심오하지만 친근해 보인다. 깨알 같은 유머가 있고, 삶의 보편적인 질문들을 담고 있기에 SNS의 원조로 손색이 없다. 아니다. 지금 우리의 SNS는 연암의 수준에 미치는 지성의 네트워크를 창출하지 못하므로 연암은 SNS가 앞으로 가야할 미래이다

우리는 이 개성 넘치는 두 별을 하나의 자리로 연결하려 애썼지만 이제 두개의 별을 각자 빛나게 해주자. 그래서 서로를 비춤으로서 더욱 빛날 수 있으리라~~

 

Q 이 책에서 두 별의 뚜렷하게 대비되는 사주명리와 그에 따라 펼쳐지는 삶을 보면서 내 몸에 새겨져있는 지도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지도를 발견했는지...

그 지도를 따라 자신이 가진 기질을 잘 펼치고 있는지... 아니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신을 보며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이를 헤쳐 나갈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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