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기 칼럼쓰기(최종수정본)] 당기면 사라지는 것 > 금요 감이당 대중지성

금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금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금성.png

[3학기 칼럼쓰기(최종수정본)] 당기면 사라지는 것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오늘NowHere 작성일22-10-13 18:04 조회200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금요 랭귀지 스쿨 / 칼럼쓰기 / 20221013 / 1조 오!늘~

<당기면 사라지는 것>

사람들은 당겨서 살기를 좋아한다. 학생들은 선행 학습을 하고, 영업사원은 매출 목표를 조기 달성하려 애쓴다. 여행할 때는 출발 한참 전부터 ‘여기 어때’, 저기 어때 따져가며 사전 예약한다. 저 멀리 노년 생활을 위해 연금 상품에 가입하는 청년들도 많아졌다. 미리미리 땡겨땡겨! ‘땡기기’ 경쟁 시대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다. 죽음이다. 죽음을 미리미리 당겨서 실행하는 사람은 없다. 별걸 다 예약하는 시대지만 장례식장을 예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장례식장도 사망 진단서 없이는 문의 자체를 받지 않는다). ‘땡기기’를 좋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우리는 죽음을 멀리, 뒤로 미루며 산다. 나 또한 저 멀리 요단강 앞에 죽음을 숨겨 놓고 사는 듯하다.

미뤄져 있었던 죽음이 다가온 것일까? 얼마 전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뇌출혈이었다.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나는 입원하신 어머니 면회 한 번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진다. 왜지? 면회를 못해서?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만이 아니라, 언젠가 들이닥칠 것이라고만 상상했던 내 죽음도 나의 심연에 박혀 있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인생 마지막 병상에 누워서, 들이닥친 그것을 맞닥뜨려 사유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해결될까? 죽음은 미루어 놓았던 방학 숙제가 아니다. 단번에 해결될 리 없다. 그렇다면 죽음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로 당겨 직면해 보자(죽음으로의 선구(先驅)). 사망아 너 어디 있느냐, 이리 오라~. 그러나 곧 알게 된다. 죽음을 대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당연하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인간이 저 멀리에 만들어서 고정해 놓은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치 지도에서 보이는 경도와 위도를 땅에서 찾을 수 없듯. 고기압, 저기압을 표시하는 등압선이 공기 중에는 존재하지 않듯 말이다. 죽음 역시 개념적 이름표가 붙여 놓았을 뿐, 어떤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생각되는 허상이 작동되고 있다.

당겨 보니 없다는 것을 머리로 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실체 없음’을 맛보는 경험, 즉 죽음이 무화(無化)되는 일상 속 경험이 필요하다. 말이 쉽지, 어렵다. 왜냐하면 변화의 움직임이 아닌 고착된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든 구조에 살기 때문이다. 어느 한 편에 고정되어 속해 있어야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정치, 세대, 남녀 등등. 편을 갈라 한쪽에 있어야 내 정체성이 정해지는 시스템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몸이 청년기 신체 상태로 멈춰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헬스장, 식품, 병원들은 노화를 멈춰줄 수 있다는 듯 손을 흔든다.

어떻게 변(變)-화(化)하고, 순환하며 살 것인가?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고전, 경전의 구절 인용은 하지 않겠다. 대신 대조적으로 사는 두 사람의 이야기(<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가 떠오른다. 영화 속 해준(박해일)은 정해진 답을 찾듯 범인 잡기 시스템에서 사는 형사다. 반면 서래(탕웨이)는 살인 용의자의 처지이지만 경계 없이 흐름을 따르며 산다. 그러한 그녀에게 ‘끝’이란 없다. 죽음 또한 헤어짐의 경계가 아니다. 그녀에게 죽음은 순환 속 양태 변화일 뿐. 심지어 그녀는 바닷가에서 영원히 사라져 스스로 미제 사건 용의자가 된다. 서래와 해준과의 관계도 미제(未濟)가 된다. 새로운 것으로의 순환이다. (『주역』 마지막에 놓인 미제(未濟)괘도 같은 뜻이다.)

순환을 따라 사는 서래처럼 나도 어머니와의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가만히 내 감정과 주변을 들여다보자. 감정, 신체, 환경, 무엇 하나 멈추어 서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헤어짐의 경계도 사라져 가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끝_䷿)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