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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3교시 세미나 발제_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9,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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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늘NowHere 작성일22-08-18 18:47 조회2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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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랭귀지 스쿨 / 3교시 세미나 / 발제문 / 220819 / 1조 오!늘~

9장. 「민주주의자로서 비상사태를 상대하기」(『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중)

‘비상사태시 민주주의가 족쇄로 작용한다’는 논변이 있다. 이 말이 옳다면 비상사태시 민주주의를 잠시 쇠퇴시켜야 하나? 이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 나라 코로나19 초기(2020년) 사례를 보자. 신천지의 슈퍼 전파자로 지목 받았던 31번 확진자 혐오, 이태원클럽발 집단감염 사태시 성소수자 혐오 등의 국면에서 중앙방역대책본부의 태도는 분명했다. 중대본은 특정 환자/지역/집단에 대한 혐오는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일관된 태도를 견지했다. 이러한 태도와 지침은 확진 의심자들이 안심하고 보건소로 올 수 있도록 했고, 추가 감염을 막았다. 인권을 보호하며 민주적으로 대응해 나간 중대본 사례는 비상사태시 민주주의가 ‘족쇄’로 작용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긴급행동은 권위주의를 요청한다’는 논변도 있다. 비상시라고 해서 어느 한 부분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권위주의는 현실화될 수 없다. 정부의 비상대응 실행 구조를 보자. 조사-연구-의사결정-실행으로 연결된 순차형 구조이기 때문에 한곳의 집중된 권력은 전체를 실행시킬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권력 집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다수 민중들이 비상시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훈련을 습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생각하기] 우리는 비상사태시에도 민주주의를 지켜갈 수 있을까?

코로나19 초반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자유를 외치며 집회하는 다른 나라 모습과 대비해서, 방역에 적극 참여하는 우리 국민의 태도는 대조적이었다. 우리는 참 ‘착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체제에 너무 순응적이지 않나, 혹시라도 잘못된 리더쉽의 횡포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렵게 일궈온 민주주의를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지,하는 불안함이 깔려 있었다. 내가 디스토피아적 암울한 SF 영화를 많이 본 탓일까?

「민주주의자로서 비상사태를 상대하기」는 불안한 내 심리를 알고 있었던 듯. 비상사태시에 민주주의가 쇠퇴할지, 또는 권력 집중으로 새로운 전체주의가 발생하는건 아닌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비상시국이지만 민주적으로 잘 대응해갈 수 있는 희망적 사례들을 보여줌으로써 민주 절차의 안정성과 타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이 조금 찜찜한 것은 왜일까? 민주주의가 파괴되지 않을 것이며, 전체주의적 권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10장. 「바이러스의 문화적 기원과 한국의 모더니티」(김정환)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중)

한국의 현대는 민주적 헌정 체제와 시민사회를 성장시켜왔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바로 이 체제를 위협하고 경악시키는 낯설고 두려운 타자를 마치 쌍생아처럼 길러왔다. 1980년대도 그랬다.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올림픽의 감격도 있었다. 신흥종교인 오대양(81년), 영생교(81년), 신천지(84년) 등의 집단자살, 휴거 소동, 폐쇄적 집단생활이 폭로되기도 했었다. 폭풍 같았던 우리의 현대사와 그 문화들은 누가 만들었나? 바로 우리다.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주인 행세하며 살아 보겠다는 욕구가 우리 속에 있다, 이것이 낯설고 경악스런 미래를 배양시키고 있는 무서운 숙주다. 우리를 위협하는 괴물과 기생충을 자라게 한 숙주는 바로 우리였던 것이다. 우리가 숙주였음을 바로 알아챌 때 코로나19와 같은 위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함께 생각하기] 인류가 멸종하는 것도 자연(自然)스러운 변화인가?

본문의 한국 모더니티 관점을 세계로 펼쳐 본다. 코로나19로 전세계 사망자 644만명, 확진자 5.9억명(22.8.18)이다. 엄청난 숫자다. 그 숫자 뒤에는 우리 모두의 아픔과 일상의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이 예전보다 더 명확해졌다. 우선 인류가 이제 거의 동일한 면역 체계로 이루어져 왔고, 동일한 운명에 처해진 생명체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동일 커뮤니티 속에서 서롷 연결되어 있음을 SNS, 뉴스 등로로 매시간 확인하며 살고 있다.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는 감염병 앞에 그 의미가 희미해졌다.

인류가 이제 하나 되었으니 힘을 합쳐 바이러스와 싸우자는 것인가?(바이러스는 싸울 대상이 아니다). 아니면 앞으로 나타날 바이러스들에 대비한 체계를 갖추어 인류의 ‘영원한’ 안전을 도모해야 하나?

인류는 영원히 존재를 이어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우리 안에 스며 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 수도 있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류가 멸종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진화 속에서 공룡이 사려졌고, 네안데르탈인도 멸종했다. 지금은 북극곰, 우영우의 대왕고래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동물, 식물들이 쇠퇴해가고, 우주의 행성들도 사라지고 있는데 말이다.

호모사피엔스 역시 바이러스에 의해서, 또는 행성과의 충돌로, 아니면 핵전쟁으로 순식간에 멸종될 수 있다. 생명 흐름 과정 중 얼마 전 진화한 인류의 ‘의식(意識)’이 이러한 국면을 타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 ‘의식’, 그리고 인류의 미숙한 ‘지성’이 사피엔스 멸종 트리거(trigger)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정해진 방향은 없다. 흐르는 변화만이 있다. 우주가 138억년 동안 탄생과 소멸을 파도처럼 오르고 내렸던 그 변화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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