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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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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씨앗2 작성일21-06-05 21:11 조회1,1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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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선생님 강연 후기

 

2021528일 저녁 6

안성 새로운 문화의 바람, 독립서점 다즐링북스에 가다.

 

살짝 동료들에게 일이 있다고 말하고 일찍 퇴근하여 달렸다. 택시를 잡아타고 달렸다.

내게 인문학의 지평을 처음 열어준 고미숙 선생님을 가까이서 뵙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수만을 예약하는 데도 기회를 얻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것도 안성에서!!!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2020. 북드라망.을 읽고 오는 것이 숙제다.

 

떡하니 선생님이 자리를 잡고 두셋의 청강생들이 자리하였다.

지난번에 선생님의 강의를 인스타의 라이브로 참여했을 때 선생님은 안성을 처음 왔다고 했다. 예전 내가 안성중앙도서관 강의 오셨을 때 처음 만났던 기억이 강력해 뵙자마자 지난번 왔었다고. 한의사들도 많이 참여한 강의가 있었다는 둥, 수유 너머에 가보았다는 둥 찍은 공간 사진도 보여드리며 (지금은 감이당을 여신지 10년도 넘었다는데 ;;) 처음 가까이 대면하는 선생님께 엄청 가까운 듯 너스레 인사를 건냈다.

 

6시가 되자 바로 말씀을 시작한다.

 

욕망을 쾌락을 낳고 쾌락은 애착까지 가서 괴로운 데도 계속되는 맹목으로까지 간다. 그리고 이것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가지게 된다. 여기 욕망에서 자유롭기 위해 읽고 쓴다. 인간은 자유롭기 위해 걷기를 배우고 말하기를 배운다. 그런데, 말하는 것과 소통하는 것은 다르다. 많은 사람은 말을 하지만 다른 것을 전제하며 말한다. 다양한 욕망을 전제하는 경우는 연애나 자식 양육에서 흔히 본다.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이 도처에 있어 상처를 받고 이것을 수습하는 데 많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래서 부 자유스럽다.

말을 조절하고(말 중에 치성했을 때 말은 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감정을 조절하고 신체가 아플 때 신체를 조절한다. 그러기 위해 공부한다. 공부했으면 실천한다. 공부는 말과 감정과 신체에 대한 탐구, 인간에 대한 탐구를 책을 읽어서 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난다. 사람을 겪어 보면서 수련을 한다.

그런데 읽을 때도 이 전제로 본다. 나에게 딱 맞는 것을 본다. 그래서는 성장이 없다. 어렵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책을 읽는다. 인간에 대한 이해, 나아가는 화학적 즐거움이 일어나다. 내가 좀 더 자유롭게 된다. 건강한데 정신없이 바쁘다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의 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자유롭다는 것이 결과이다. 불편한 사람을 만나도 자유롭다. 언제 어디서고 자유롭다. 영적인 확장! 비슷한 책만 보면 좁아진다. 영성과 생물학 등 분야의 인류 지성 경지의 책을 볼 때 내 삶에 쭉 확장해 들어온다.

욕망의 인식지도를 바꾼다. 그래야 보인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이해로, 자유의 방향으로, 읽고 인식을 확장한다. 사람의 인식은 스펙트럼이 넓다. 1차원에서 10차원으로. 협소하면 괴롭고 부자연스럽다.

우선 나를 이해한다. 내 욕망을 관찰하여 수련한다. 성찰!! 나 자신을 텍스트로 한다. 계속에서 내가 타인과 시공간에 따라 내가 어떻게 변주하는가를 본다. 내 인식의 지평이 변화되는 것에 따라 세계가 변주된다.

 

우리는 창조하기 위해 먹는다. 정보가 소화되어 나가야 한다. 쓴다. 글로 말로 쓴다. 같이 읽고 같이 쓴다.

깨달았으면 유통해야 진리이다!!

자기 삶을 바꾸고 세상과 연결되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읽었으면 소화를 시켜 창조한다. 쓰기 위해서 읽는다. 창조가 나의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언어는 사회적 코드다. 감정을 일으키고 글을 써서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는다. 네트워크의 반응을 통해 다듬는다. 공유하지 않는 내적 독백은 자기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폐쇄되고 단절된 것이다.

나는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다, 삶을 위한 글쓰기가 나의 글쓰기이다.

서양식 논리에 의한 픽션의 글쓰기는 전문가용이 되었다. 이제 삶에 대한 모든 것, 세계에 대한 탐구, 내 삶의 성찰에 대한 인문학의 글쓰기 시대가 되었다.

매일 겪고 있는 삶이 소재가 된다. 창조의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겸손해지고 읽기의 영역이 대폭 확장된다. 존재가 순환된다. 글은 나의 존재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정신의 확장이다. 몸은 움직이고 순환시키기를 원한다. 원리이다. 글을 안 쓴다면 뭉친다. 몰입하면 욕망에 끄달리지 않는다. 글쓰기가 나의 지성을 자극한다.

배움이 없으면 지루하다. 20, 30대는 지식을 40대는 지성을 50대 이후는 영성을 근원적으로 탐구한다. 코로나는 자연과의 근원적 변화 필요성을 말한다. 자연의 변이를 탐구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소 공부를 통해 인지가 개발하며 지성의 영역이 확장한다. 지혜가 깊어진다. 수행은 쓰다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존재가 순환한다는 것이다. 쓰기는 타자와 함께한다.

쓰기는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다. 말하기도 쓰기의 시작이다.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말하고 쓴다. 읽고 쓰고 말하고 의미를 깨닫게 하고. 쓴다는 것은 과정이 필요하다. 배운다. 현장 내부에서 배워서 현장을 움직인다. 외부강사는 한계가 있다.

글쓰기는 영성을 확장한다. 내 삶을 기록하는 글쓰기는 성찰을 일으킨다. 나를 본다. 내가 왜 아픈가. 나를 본다. 그 생각을 공유하고 성찰을 통해 변화를 일으키는 수련을 한다. 투명하고 진솔하게 쓴다. 왜 이런 감정에 휩싸 일까를 알아챈다. 왜 이럴까? 왜 구조화되었을까 질문한다. 단죄하지 않고 살피는 힘, 질문하는 힘이다. 지성이 이 질문하는 힘을 키운다. 이런 성찰은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힌다.

사람을 만날 때 매 순간 밀도를 높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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