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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목요대중지성] 문제의 핵심은 자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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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ess 작성일22-10-13 15:49 조회4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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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핵심은 자만이었어

그는 헛된 특권을 바란다. 수행승 가운데 존경을, 처소에서는 권위를, 다른 사람의 가정에서는 공양을 바란다.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 ‘오로지 내가 행한 것이다.’라고 여기고 어떤 일이든 해야 할 일이나 하면 안 될 일도 ‘오로지 나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생각하니 그에게 욕망과 자만이 늘어만 간다.  (어리석은 자의 품 p.368-370)


스펙콜렉터 

  장로 쑤담마는 ‘수행승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에게만 질문하며, 나와 함께 다니길!’이라며 인 기와 존경을 원했다. 공양을 받을 때는 ‘오직 나에게만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시하지 말기를!’이라며 특별한 대접을 바랬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볼 때, 많이 배웠고 부지런하며 믿음이 확고하고, 계행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바라 봐주기를 원했다. 쑤담마는 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 볼 지 신경 썼고, 권위와 명예 등 허구적인 특권에 집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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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쑤담마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지 신경 쓰며 모범생, 팔방미인과 같은 완벽한 모습을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전공을 3개나 하면서 러시아로 교환학생도 가고, 미국으로 인턴쉽도 다녀왔다. 여러 개의 자격증을 따며 열정적으로 스펙을 쌓으면 친구들로부터 인기와 존경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졸업 후에는 교사가 사회적으로 선망 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영어선생이 되었다. 이 직업은 나에게 명예를 가져다 줄 것이 라고 기대했다. 결혼을 한 뒤에도 일과 집안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희연이는 못하는 게 없네” 라고 바라 봐주기를 바랬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좋게 보이는 스펙들을 하나 둘 씩 모으고 그걸 보여줌으로써 내 존재가치가 높아진다고 믿었다. 


나를 내세우려는 패턴의 힘

  나는 마치 명품을 하나 둘 씩 사듯 스펙을 모으면서, 마음만 먹으면 인생은 계획한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이상적인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결혼 후엔, 아이가 있어야 완벽한 가정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이를 가지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생명을 만드는 일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난임 시기가 길어지니, 내가 삶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생각이 와장창 깨졌다. 간절히 원하고,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나타나자, 나는 방향성을 잃고 어찌 할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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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기적처럼 임신이 되었지만 유산이 반복되자, 나는 내가 가임 능력이 없는 몸이라며 어마어마한 열등감을 느꼈다. 내가 쌓은 스펙이 이렇게나 많음에도, 정작 여자 노릇은 못한다며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나는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이 열등감이 어디 서 왔는지 바라보고, 고통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하기 보다 나를 내세울 수 있는 또 다른 스펙을 만드는데 열중했다. 그렇게 내 열등감을 남들이 보았을 때 좋아 보이는 것으로 덮으려 했다. 그래서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따고, 운동과 식단을 철저히 해 탄탄해 보이는 몸을 가지려 노력했다. 심리적으론 ‘나에겐 귀여운 딸 강아지가 있어’라며 아이의 대체품으로 반려견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나를 소진시키기만 할 뿐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진 못했다. 

  이처럼 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이를 다른 스펙을 만들어 덮으려는 패턴을 계속 유지했다. 그 결과 나는 유산 후에 온 고통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이것이 아이를 잃은 상실감에서 오는 것인지 완벽한 가정이란 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서 오는 패배감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만덩어리 쑤담마를 통해 찾은 핵심: 자만

  고통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작년부터 감이당에 와 유산과 관련해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음에도 늘 같은 주제로 돌아갔다. 그럴 때면, 마치 소용돌이가 있는 늪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고, 스스로도 이런 내가 답답해 자책하는 날을 보냈다. ‘이 정도 했으면 놓 아질 만도 한데, 나는 왜 자꾸 유산과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영원히 이 문 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려나..’ 라며 우울해 한 날도 있다. 

  그런 와중 어리석은 자의 품에서 쑤담마의 모습을 보고, 문제의 핵심을 찾았다. 장로 쑤담 마는 자신이 쌓아온 공덕이 모두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행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대접 받기를 바랬고, 보시도 자신만 받기를 원했다. 그런데 승원에 있는 장자 찟따가 두 제자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자 이를 보고, 질투에 휩싸인 쑤담마는 그 길로 승원을 떠나버렸다. 부처님은 이런 쑤담마를 꾸짖고, 찟따에게 가서 사과하라 말씀하셨다. 이 에 쑤담마는 찟따에게 가 용서를 청하지만, 찟따는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장로가 아직 자만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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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쑤담마와 마찬가지로 내가 쌓은 스펙이 오로지 나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믿었고, 스스로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인생을 내 지배하에 두고 살던 나는 임신조차 내가 원하는 시기에 뜻대로 되길 바랬다. 그렇게 아이를 수단으로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했으며, 내가 가임력이 있는 몸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이토록 시선이 계속 외부로 향했다는 것은 ‘내가 있다’라는 자만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는 아이를 낳았어도 계속해서 고통을 받았을 것이 훤히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계속해서 ‘나는 잘났어, 뭐든 좋아 보이는 것은 취해야 해’ 라고 생각한 자만과 욕망에 있다. 나는 임신도 하나의 스펙으로 보았으며, 아이와 반려견이 함께 하는 예쁜 가족사진과 같은 이미지, 즉 허상을 쫓았다. 그리고 이것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열등감이 느껴질 때면, 이를 채울 수 있는 다른 대체제를 만들어 우월한 위치를 점유하려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런 어리석은 상태로는 쑤담마가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처님은 나와 같이 자만과 욕망을 지닌 어리석은 자에게는 통찰과 길, 경지는 열리지 않는 다고 말씀하신다. 이번만큼 나의 어리석음과 자만이 크게 와 닿은 적이 없다. 나는 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자 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여기서 큰 고통을 받았다. 문제의 핵심인 자만을 내려놓지 못하면, 나는 도돌이표 마냥 늘 같은 문제로 계속해 괴로워할 것이 자명하다. 그런 나에겐 절대로 통찰과 길이 보이지 않을 거란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진정한 핵심은 내가 있다는 자만, 내가 원하는 일은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자만을 내려놓는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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