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온라인 감이당 대중지성] 영성과 꽃씨 > 감성에세이

감성에세이

홈 > 커뮤니티 > 감성에세이

[2022 온라인 감이당 대중지성] 영성과 꽃씨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6-20 15:39 조회661회 댓글0건

본문

이 연 숙(감이당)

길 나섬 유쾌한 아픔

20년 이상 터전이었던 연구실을 정리했다. 새로운 길 나섬을 위한 채비다. 난 이곳에서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음악을 듣고, 도시락과 간식을 먹었다. 그야말로 내 일상이 녹아 있는 방이다. 또 나의 반려인 책들이 숨쉬는 곳이다. 이 공간은 편하고 안온하다. 이 방은 방문자들의 쉼터이기도 했다. 심신이 지친 학생들이 연구실에 찾아와 웃고 울다, 밝은 표정이 되어 나가는 뒷모습도 이 방에서 지켜보았다.

이제 익숙함과 정겨움을 버리고 미지의 길로 떠난다. 아니 이미 길을 나섰다. 주변 정리는 떠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먼 길 위에서 거치는 하나의 스치는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머물러 있으면서 하는 정리는 재미가 없다. 그것은 청소이지 정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과 책들을 요리조리 보면서, 그 기억에 빨려 들어가, 감상의 우물에 퐁당 빠지기도 했다. 때문인지 출발 준비로 한 정리는 나를 무겁게 했다. 그래서 난 망설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길을 나섰고, 그 길 위에서 하는 정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몸과 마음이 명랑해지고 콧노래까지 나왔다.

길을 나선 이에게 물건은 어떠한 것이든 짐이 된다. 책 또한 짐이다. 길을 위한 나침반이 되는 책 만을 동행하고 다른 책들과는 이별을 했다. 책들과의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별리 만큼이나 가슴이 아려 왔다. 그 이별은 아프지만 그러나 새로운 만남과 인연으로 가는 발판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mantas-hesthaven-_g1WdcKcV3w-unsplash

비움과 꽃씨

인류의 영적인 스승들은 구도의 길에 필수 과목으로 버리기와 비움을 든다. 버리고 비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구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이 통과해야 할 덕목이리라. 버리고 비우는 것은 연구실과 책만이 아니었다. 대학이라는 권위의 우산을 접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은 비바람 속에 떨어진 것과 같은 막막함이 있다고 선배 교수들은 이야기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가끔 그런 감정에 휩싸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나를 고요히 바라본다.그러면 신기하게도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경쾌해지기까지 한다.

버리고 비우고, 나눔이 보태어졌을 때, 삶은 가볍고 맑아진다. 비움과 나눔은 나를 지켜주는 든든하고 귀여운 수호 천사임을 알았다. 나는 책에 마음을 실어서 주변의 학우들에게 나누어 건네 주었다. 책을 <꽃씨>라 부르며, 아름다운 꽃들을 풍성히 피우라는 희망 사항도 전했다. 뿌듯한 시간이었다.

지구행성에서의 삶을 마치고 여행을 떠날 때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아름다운 꽃씨를 나누고 싶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들어온 진부한 대사 대신에, 이름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의 꽃씨를. 참! 이번에 버리고 비우고 나누는 것에는 상당한 체력과 기운이 필요함도 배웠다. 이제부터는 영성과 꽃씨 나눔을 위해서도 허튼 곳에 마음과 기운을 쓰지 않아야겠다.

herbert-goetsch-SGKQh9wNgAk-unsplash지구행성에서의 삶을 마치고 여행을 떠날 때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의 아름다운 꽃씨를 나누고 싶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