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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온라인 감이당 대중지성] 오른손이 알려준 것_김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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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5-10 20:34 조회7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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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이 알려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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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감이당)

제대로 치셨네요. 음… 골절입니다. 정형외과 의사가 안쓰러운 눈길을 주며 말했다. 제발 금 간 정도이길 바랬는데 여지없이 오른손 바닥 뼈가 부러진 것이다. 당뇨가 있다고 하니 그러면 뼈가 더 약해졌을 수가 있다고 한다. 거기에 갱년기 증상인 골다공증도 진행 중이었을 거다. 

발단은 데이비드 봄의 다큐멘터리를 유튜브로 보던 중 남편의 장난질에 격하게 화가 치밀어 올라 주먹질을 한 것이다. 물론 그간 쌓여온 것이 욱하는 성질을 못 견디고 가장 만만한 남편에게 터져 나온 것이다. 시댁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남편이 주말에 자주 시아버지 목욕도 시켜드리고 시어머니와 장도 보고 하면서 우리 집의 집안일은 나몰라라하며 웹툰에만 빠져 있는 게 불만이었다. 거기에다 신학기엔 수업시수가 늘어나고 학생들도 거친 놈들이 많아 3월은 매일이 전쟁이었다. 그리고 올해 마음공부를 위해 시작한 온라인 영성 공부는 알 듯 말듯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과 알아도 선뜻 실천하기 힘든 부분들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체한 듯한 갑갑함에 눌려 있다 나도 모르게 악다구니를 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시 욱해서 유리컵을 쾅 내려놓다가 오른손 인대가 끊어진 적이 있었고, 역시 욱해서 장롱 문을 확 열다가 장롱 높은 곳에 두었던 물먹는 하마가 떨어져 왼발 네 번째 발가락이 골절되었었다. 이건 명백한 윤회다. 기브스를 감고 있는 손이 불편하긴 한데 낯설지가 않다. 

당뇨는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래. 약사인 친구가 언젠가 말해주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며 불쾌해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 싫어 스트레스가 쌓이면 단 것에 의존해 혼자 해소해 왔고 거기에다 조급한 성격으로 자주 불안해지다 보면 욱하며 탁한 에너지를 빅뱅처럼 한 번에 방출해 버리곤 했던 것이다. 이런 자해의 패턴은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니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받은 분쇄골절 핀박기 수술과 6주의 기브스, 물리치료 그리고 일할 때 왼손의 수고로움 등등 예기치 못했던 불편함을 낳았다.

낭송 전습록 책에서 사물을 뜻이 닿아있는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오른손 주먹에 가 닿은 뜻은 비록 골절이라는 참사를 불렀으나 전달은 되었다. 남편은 멀쩡해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나는 주먹질을 통해 엉킨 스트레스가 어느정도 해소되어 가벼워지고 나니 빨리 마음이 편해지고 싶은 조바심 그득한 욕심이 보였다. “송곳으로 몸을 찔린 뒤에야 바르게 사유할 것인가.”(『낭송아함경』, 최태람 풀어읽음, 북드라망, 150쪽) ‘힘 빼.’라고 오른손이 욱신거렸다. 

빅뱅에서 시작된 우리는 서로와 모든 재료가 같은, 한 점에서 출발한 사이라고 한다. 영성이 있다는 것은 나와 남이 따로 떨어져 있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사랑 받고 싶은 마음에 남에게는 대체로 잘하는데 오히려 나에게 잘하지 못하는 패턴이 있음을 또 다시 알게 되었다. 자신의 상태를 잘 살피고 소중히 보호하는 것.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아래 인용문처럼 나에게 하는 일이 곧 남에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희들 말대로 제각기 자신을 소중히 보호하여라. 중략.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때 그것은 곧 남을 보호하는 것이요, 남을 보호할 때 그것은 곧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니, 마음이 저절로 친근하여 서로 닦아 익혀 보호하는 것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자 남을 보호하는 것이다. (『낭송아함경』, 최태람 풀어읽음, 북드라망, 124쪽)

나를 보호하지 못해 죄송하다.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데이비드 봄이 말한 우주의 어두운 부분에서 안 보이던 수많은 손들(내 오른쪽 팔꿈치, 오른발, 이빨. 학생들, 선생님들, 의사, 간호사샘들, 슈퍼 상인들, 미장원 아줌마 등등)이 내 오른손을 낫게 하려고 부지불식간에 에너지를 보내주고 있음을 느낀다는 거다. 사랑은 갈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열쇠고리에 묶여있는 열쇠들처럼 이미 연결되어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받고 있음에 감사하다. 

열쇠고리에 묶여있는 열쇠들처럼 이미 연결되어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받고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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