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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수성] 자신의 품성에 맞는 수행방법 찾기
 글쓴이 : 지향 | 작성일 : 21-10-18 09:13
조회 : 334  

 자신의 품성에 맞는 수행방법 찾기

 

신해선 (수요대중지성)

 

  퇴사하기 전까지는 회사가 내 인생의 전부인줄 알았다. 회사가 주는 돈과 관리자로써의 지위가 주는 힘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소유욕과 지배욕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나 내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욕망은 대신 건강을 앗아가고 말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손오공이 오행산에 갇히듯 몸이 아파 집에 갇혀있게 되었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나는 내 마음과 몸을 돌보지 않은 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에게 주어진 깊은 배려라는 느낌도 받았다. 더 이상 폭주하지 말라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따스한 마음이 느껴져서 이 멈춤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한편 위로가 되기도 했다.

  강하고 멋진 손오공에 대해 감탄하고 동경하면서도 한심스럽다고 비웃었던 멍텅구리 저팔계의 빈틈이 더 편안하게 다가왔으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저팔계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관세음보살을 만나 발심을 내고 서역으로 경전을 가지러 가겠다는 저팔계가 대견하여 그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식욕과 성욕,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함과 나태함, 팀웍을 깨뜨리는 시기와 이간질은 종종 차마 봐주기 힘들었고 정나미가 떨어지곤 했다. 결국 힘든 고난을 헤치며 멋지게 활약하고 부처가 된 손오공과 달리, 같은 81난을 겪고도 저팔계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의 행실을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겠지만 저팔계를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81난을 겪고도 깨닫지 못한 저팔계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저팔계를 닮은 나는 어떻게 해야 다시 건강해 질 수 있을까?

 

플랜B가 아닌 지금 여기

 

  요괴를 만나 고난에 처했을 때 하늘과 바다, 서천과 저승을 넘나들며 도움을 청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끝까지 싸우려는 손오공과 달리 저팔계는 쉽게 포기하고는 그만 각자의 길로 갈라서자고 말한다. 삼장법사가 파계했거나 죽었다고 잘못 알았을 때도 끝까지 확인하고 대처하려는 손오공과 달리 저팔계는 여전히 소극적인 자세다. 왜냐하면 손오공과 달리 그에게는 플랜B가 있기 때문이다. 삼장법사의 제자가 되어 불경을 가지러 떠나기 전부터 저팔계는 장인어른, 제 마누라 잘 돌봐주세요. 만약 우리가 불경을 구하지 못하면 바로 환속해서 예전처럼 사위 노릇 해드릴께요.”(오승은, 서유기, 솔 출판사,2, 260) 라고 말하며 이미 딴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시작도하기 전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의심과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둔 자에게 깨달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동기부여가 있을 리 만무하다. 힘은 좋으나 혐오스러운 외모로 인해 저팔계가 요괴로써가 아닌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운잔동에서 묘이저의 데릴사위가 되고 고로장에서 고태공의 데릴사위가 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수명을 생각하면 무한한 삶을 사는 저팔계에게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떠돌이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플랜B는 그래서 허무하고 허술하다.

저팔계에게 데릴사위가 플랜B였다면 나에게는 남편이 그랬다. 회사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들 때마다 그래도 조금 마음이 가벼웠던건 남편의 생활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직장일에 번아웃된 나만큼 남편도 조직생활을 힘겨워했다. 일요일부터 시작되는 월요일 출근걱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마음이 두렵고 복잡했다. 그것은 나의 플랜B가 얼마나 위태롭고 이기적인지를 말해준다.

  플랜B란 플랜A를 보완해주는 대안으로써 존재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회피를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팔계나 나의 플랜B는 임시적이고 도피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에도 충실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저팔계가 쉽게 포기하는 것, 내가 남편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것이 그 반증이다. 우리는 플랜B가 아닌 우리 앞에 놓인 지금 여기의 삶에 집중했어야 했다.

 

저팔계의 냄새나는 공() 그리고 새로운 시작

 

  조력자 역할만 하던 저팔계가 주인공이 되어 멋진 공을 세운 거의 유일한 기회가 있었으니 바로 희시동 사건이다. 타라장에서 요괴를 물리쳐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고 난 후, 썩은 감나무로 가득한 팔백리길 희시동을 지나야만 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변소를 퍼내는 것 보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오물로 가득한 그 길을 건널 수 있는 것은 바로 저팔계뿐이다.

 

비웃지들 마십쇼. 이 몸이 냄새나는 공을 한 번 세워보지요.” 멋진 멍텅구리! 그가 손가락을 구부려 결을 맺고 몸을 한 번 흔들자 정말로 큼직한 돼지 한 마리로 변했어요...... “팔계야, 멈추고 이 밥을 먹고 다시 힘을 내라.” 멍텅구리는 이틀을 꼬박 땅을 파헤친 터라 마침 아주 시장하던 참이었어요...... 저팔계는 쌀밥이고 국수고 간에 모조리 쌓아 한 입에 털어 넣었어요. 이렇게 한 끼를 배부르게 먹고 나자 또 앞으로 길을 파헤쳐 앞으로 나갔지요. (같은 책, 7, 213~214)

 

  멍텅구리가 멋진 멍텅구리!’가 된 순간이다. 쾌락으로써의 식욕이 아닌 타인을 돕고자 하는 에너지로 변환된 식욕은 마침내 폭식으로 인한 혐오감 대신 냄새나는 공()을 이루어 낸 것이다. 서유기의 81난은 손오공의 수행을 위해 최적화된 구도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요괴와 싸우며 난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손오공이 힘을 쓰면서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반면 식욕과 탐욕을 극복해야 하는 저팔계에게 있어 탁발승으로 서천으로 가는 길은 굶주림과 허기를 참고 견뎌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다. 사람마다 성격과 품성이 다른 만큼 무조건 참고 인내하는 방법이 모두에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 보다는 각자의 특성에 맞는 수련방법을 찾는 것도 구도의 중요한 방편일 것이다. 희시동 사건은 저팔계에게 적합한 수행의 방식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하나의 실마리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마침내 석가여래의 혜안에 의해 완성된다. 석가여래는 서천에서 불경을 가지고 온 공로로 저팔계를 불사가 있을 때 제단을 정돈하는 정단사자로 책봉한다. 제단을 정리하는 공덕을 쌓으며 식욕도 채울 수 있는 이렇게 안성맞춤의 자리가 있을까? 손오공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품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수행하라는 따뜻한 배려가 느껴져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에야말로 저팔계가 딴눈 팔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며 정진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응원해 본다.

  나는 내가 오행산에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반성하며 얼른 건강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아픈 시간이 생각보다 꽤 길어지면서 그동안 갈망했던 건강은 잘못된 욕심일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허약한 체질에 잔병치레가 많았고 지금은 50살이 넘은 장년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나자 이미지화된 건강한 육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그동안의 생활방식을 나의 체력에 맞게 느리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볍고 검소한 삶은 내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올바른 해법이며 나의 품성에도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며 이제야 나의 길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든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길을 떠난 나에게도 힘찬 격려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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