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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목성] 분별함으로써 분별을 없애다
 글쓴이 : 땅콩 | 작성일 : 21-10-14 10:34
조회 : 252  


분별함으로써 분별을 없애다

 

정혜윤(목요대중지성)

 

 

 

분별심을 강화하는 공부

 

  올 한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기대했던 것이 있었다. 나름 빡세게 나를 몰아세웠던 기존의 공부 방식에서 벗어나 조금은 편하게 공부하고 싶었다. 때마침 불교대중지성을 만났고 나는 이참에 쉬엄쉬엄 공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맘이 쉬질 못했다. 뭔가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안달복달, 안절부절, 불안했다. 내가 나의 감시자 같았다. 차라리 할 게 많아 정신없었던 작년, 재작년이 더 낫다 싶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나를 잊을 수 있었다.

 

  어영부영 3학기 접어들어 유식을 공부하는데, 식을 체계화하여 마음을 8개로 설명하고, 마음 작용을 51심소로 구분하는 등 복잡하게 분류해 놓은 불교이론에 놀랐다. 근데 왜 불교는 마음을 이렇게 세세하게 구분하고 분석하는 걸까. 그냥 좋은 말씀, 편안한 말씀을 통해 맘을 편안하게 다스리면 되는데 말이다. 정화스님의 책을 보면 온통 분별의식을 문제 삼고 있는데, 불교 언어는 분별의 언어로써 우리를 더 분별하게 만들고 있는 거 같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하는 이 공부도 분별적인 언어를 수단으로 묻고 따지는 방식이다. 이 공부는 자칫 분별심을 강화해서 나를 더 내세우고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종종 자의식이 팽배해지면서 과연 이런 공부가 나에게 도움이 될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서 공부하는 내 속내는 무엇일까. 올해 불교공부를 만나 더 치열하게 나의 마음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부득이나누다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책에서는 부득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분별의 나눌 수 없는 세계라고 정화스님은 누차 설명하시면서도, 그렇지만 부득이 나눈다.’라고 하시며 유식에 대해 설하신다. 나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이미 명언종자의 업력으로 분별심이 세팅되어 있는 중생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구분하고 분류해서 설명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의도는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하듯이, 불교의 좋은 말씀이나, 이 곳 공부의 좋은 취지가 오히려 분별을 강화하는 쪽으로 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무분별의 세계를 나누고 쪼개는 이 분별의 작업이 과연 나의 분별심을 완화시킬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익혀 온 삶의 내용은 분별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그래서 무분별을 분별로써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 있습니다이 관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무분별에서 분별을 보아야 합니다참된 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무분별의 분별이 있기 때문입니다5678식을 각각 분리시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무분별에서 분별이 되었을 때이 네 가지 모습들이 같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부분의 시각이 아니라한 생각이 일어나고한 동작이 일어날 때 무분별에 대해서 명료해야 합니다.

(정화 풀어씀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법공양, p225)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든 걸 분별한다. 우리의 생각은 항상 근원적인 분별을 바탕으로 하여 나와 너를 분리시키고 삶에 대한 분별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 분별은 주로 삶을 분별시키는 가장 결정적인 힘인 언어에서 비롯된다.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분별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은 무분별의 열린 세계이다. 인식주관과 인식객관이 만나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변화하며 흘러간다. 그 속에는 나와 너는 없고 관계의 연속된 흐름만이 존재한다. 유식에서는 이를 무엇이 먼저 있고, 그것을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앎의 흐름만이 존재한다.’ 라고 얘기한다.

 

  우리의 의식은 분별의식에 의해 쉽게 고정되어 관계속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매순간의 유사한 바뀜의 흐름을 고정된 틀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 중생이다. 개미가 줄을 지어 기어가는 것을 멀리서 보면 우리는 보통 한 줄로 인식하지만, 자세히 보면 각각의 개미가 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이처럼 의식은 습관적으로 전후의 흐름이 항상 똑같다고 인식한다. 마음도 만찬가지이다. 언뜻 보면 하나같은 마음도 그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혼재되어 있고, 순간순간 마음의 크기와 세기도 다르다.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양과 질이 변해가는 흐름만이 존재할 뿐이다. 거기에는 주도적으로 이끄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한 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까이 보고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만 할 뿐, 실체는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를 지켜보는 것뿐이다.

 

  나는 매번 다른 나를 꿈꾸며 방향을 틀어왔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저곳으로 옮겨갔고, 이 사람 생각을 따르다 아니다 싶으면 멀리했다. 이곳 감이당에 온 것도 그런 과정 속에 있었다. 근데 딱히 큰 변화가 없다. 장소도, 어울리는 사람도, 시간의 쓰임도 많이 변했는데 맘은 여전히 불안하다. 그건 아마 견해A가 견해B로만 바뀌었을 뿐, 나의 견해에 대한 소유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세상 아래 새로운 생각은 없다. 나만의 것도 없다. 나를 통해 드러난 앎조차 만남의 조건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잊게 되는 순간 새로운 견해에 집착하게 되고, 삶의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게 된다.”

 

  나는 분별을 무기삼아, 나의 분별력을 강화하기에 급급했다. 그 분별력이 나를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해주리라 기대했다. 공부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특별한 무엇이었다. ‘공부하는 나는 이젠 남과 달랐고, 그전의 나와도 달랐다. 나는 그렇게 나와 너를 분별하고, 나의 우월함을 내세우려 했다. 점점 몸에는 힘이 들어갔다. 공부는 나의 몸을 더 굳게 만들었다. 결국 부득이분별해야 했던 것은 내 마음장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촘촘히 분별하며 봐야하나 보다. 무분별의 마음장을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지 분별해보니 이제야 분별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는 분별할 수 없는 수많은 관계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장은 그냥 저절로 모든 것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순간의 앎이 삶의 전부인 것이다.

 

앎이 삶이다, 아니 삶이 앎이다

  

  공부의 장에선 가끔 이런 얘기가 오간다. “아는데 잘 안 된다.” “그건 네가 아는 게 아니다, 모르는 거다.” 알면 저절로 실천하게 된다는 뜻일 거다. 안만큼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는데 잘 안 돼라고 얘기하면 핑계인거다. 근데 보통 우리가 다 그렇지 않은가. 나도 안다, 내가 뭐가 문제이며,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근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하라고 하면 잘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한 생각 일으키고 한 동작하는 순간순간이 의 대표이며 전체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 한 부분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그와 같은 는 없습니다순간순간의 모든 활동이 그대로 전체이며 입니다나의 활동이 아니라 활동만이 입니다.

                                                             (정화 풀어씀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법공양, p37)

 

  무엇이 먼저 있고, 그것을 내가 아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뭘 알아야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동시적이다. 인과관계가 아니다. 그 둘은 만나 변화하며 다른 무언가로 생겨났다 사라질 뿐, 그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없다. 나의 행동은 수많은 것들의 만남 속에서 저절로 드러난 것이다. 활동하는 것이 삶의 전부이다. 나는 내가 뭘 알아야지만 나의 인생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앎이 먼저 선행되고 축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에 대한 의지가 박약해질 때마다 나를 질책했다. 활동은 오간데 없고 온통 내 의식 속에는 나만 있었다. 분명 나는 매순간을 살아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앎이 삶이다라고 얘기하면 이라는 단어가 우월하게 느껴진다. 앎이 먼저인 거 같다. ‘삶이 앎이다라고 말하니 다르게 느껴진다. 활동이 나이며, 나의 전부라고 느껴진다. 이 분별의 언어는 나의 분별심을 더 강화하는 것은 맞는 거 같다.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나의 분별심을 더는데 효과적일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나의 인식을 훈련할 수밖에 없다. 분별의 언어를 수단으로, 나의 분별심을 명확히 살펴서, 분별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공부 중이다. 그게 나를 절대 긍정하는 길로 인도해 주리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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