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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목성] 참을 수 없는 공치사의 변
 글쓴이 : 희자 | 작성일 : 21-07-14 21:26
조회 : 535  

 

참을 수 없는 공치사의 변

 

 

진희수(목요 대중지성)

 

 

 

내가 도와준 공을 너무 모르네

 

올 한해 건강상의 이유로 돌봄 휴가를 신청해 주3일 일한다. 작년에 병가를 냈을 때 6개월간 팀장 대행을 했던 후배가 이번에도 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난주 그가 승급 심사 대상이라고 연락을 받아 같이 심사 준비를 했다. 예전에 다른 병원에서 일하던 그를 오라고 했고 또 한동안 병원에 약사가 뽑히지 않아 어려웠던 시기를 함께 보냈기에 기존에 내가 썼던 자료들을 주면서 진심으로 도와주었다.

 

그런데 심사가 끝난 이후 스멀스멀 마음 한 귀퉁이에서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밤에 잠을 청하려 하는데도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도와준 공을 너무 모르네.’ 내가 느끼는 서운함과 불편함을 표현하는 문장이었다. 어떻게든 내가 도와줬다는 걸 알게 하고 싶은 마음이 넘쳐흘렀다. 왜 이렇게 공치사를 하고 싶은 걸까? 여기에는 어떤 인지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지 풀어 보고 싶다.

 

 

누가 무엇을 돕는 걸까

 

사실 1년간 돌봄 휴가를 낼 때 내년 복직에 대해 확실히 결정을 한 건 아니었다. 일하면서 자꾸 무리하게 되는 몸을 돌보는 게 우선이었다. 직장에 가면 나도 모르게 그 속도에 휩쓸려 자동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30년간 일하면서 몸에 밴 관성대로 복직을 결정하지 말고 공부를 하면서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다. 병원 입장에서 보면 불확실한 나보다 확실하게 하고 싶단 의지를 표명하는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을 것이다.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그에게 서운함을 넘어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드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발표가 끝나고 난 뒷얘기를 들은 이후부터이다. ‘발표를 잘 하더라’, ‘당신을 위해 마련된 자리인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그가 나에게 전하는데 거기에 내게 고맙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러자 지난 시간들이 펼쳐지면서 그가 팀장의 역할에 잘 안착할 수 있게 내가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가 낱낱이 떠올랐다. 그걸 자꾸 까먹는 그가 얄미워졌다. 이런 생각이 반복되자 급기야 잠자기 전에도 그 생각으로 불편했다. 에세이 주제는 자동으로 온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이러한 말 속에서 인간 언어의 본질에 대한 특정한 그림을 얻는다. , 언어의 낱말들은 대상들을 명명하며, 문장들은 그러한 명칭들의 결합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 언어에 대한 이러한 그림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의 뿌리들을 발견한다. : 모든 낱말은 각각 어떤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 이 의미는 낱말에 짝지어진다. 그것은 낱말이 나타내는 대상이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책세상, 23)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대상을 지시하는 낱말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 대상이 실재하며 하나의 의미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고 한다. ‘여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 보면 연결된 시간의 흐름 속에 여름이라는 절단된 대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여름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도 생긴다.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세계가 구축되고, 이제 언어에 의해 세계가 구축된 게 아니라 그 세계가 이미 존재했다고 착각하게 된다.

 

나에게 괴로움을 일으킨 그 문장을 살펴보면 그는 도와준 공을 모른다.’고 생각하자 그 생각은 그를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마구 떠올랐다. 단숨에 그는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고 나는 번뇌에 휩싸였다.

 

과연 내가 도와준것은 무엇일까? 내가 썼던 자료를 주고, 그가 작성한 내용을 검토하고, PPT 발표에서의 포인트를 알려준 것이다. 나름 내겐 노하우라고 생각했던 정보들을 아낌없이 주었다. 그런데 막상 써 놓고 보니 나도 이렇게까지 직접적이진 않았어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작업을 했었다. 그리고 다른 병원 팀장들에게 수시로 도움을 청하고 자료를 받아 현안들을 해결했다. 이 글도 내가 쓰고는 있지만 채운샘의 강의, 학인들과의 토론, 뒤풀이에서의 수다에서 주고받은 말들로 채워지고 있지 않은가. ‘내가 도왔다라는 생각에는 마치 혼자 이룬 내 것을 그에게 주었다는 마음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아까운 걸 주었는데 고맙다고 표현을 안 하니 서운하지만 실은 그건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Übersicht, 연관을 보다

 

첫 문단에 쓴 것처럼 그는 나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어려웠던 시기를 함께 지냈고, 또 지금도 어려운 문제를 만난 내게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그와 언제나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다.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고 직설적인 그는 상대를 생각해 말을 고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시원스레 지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불편함을 얘기하면 수정하고 다르게 행동했다.

 

우리의 몰이해의 한 가지 주요 원천은, 우리가 우리의 낱말들의 쓰임을 일목요연하게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 우리의 문법에는 일목요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 일목요연한 묘사가 이해를 성사시키며, 이해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연관들을 본다는 데 있다. 그런 까닭에 중간 고리들의 발견과 발명이 중요한 것이다.(같은 책, 104)

 

비트겐슈타인이 얘기하는 일목요연성은 높은 곳에서 조망하듯 연관들을 보는 것이다. 눈앞에 놓인 하나의 관점만이 아니라 높이 올라가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사방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 연관들은 중간 고리들을 통해 볼 수 있다. 그와 같이 보낸 시간들, 책임자의 자리가 주는 외로움, 전임자인 나와의 비교로 인해 그가 느낄 부담의 가중을 생각하는 게 중간 고리들의 발견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든다.

사실 그가 전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건 아닐 게다. 잘 기억나진 않으나 표정으로 눈빛으로 혹은 말로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복직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더 돋보이는 게 싫은 마음도 작동했을 거다. 그러니 어떻게든 나의 공을 더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오락가락 하는 나의 마음이 보인다.

 

그렇게 보면 내가 원했던 고맙다는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이번에 내게 도움이 되었으니 기억했다가 다음에 나도 잘해 줄게를 기대한 건 아니었을까. “한 낱말의 의미는 언어에서의 그것의 쓰임(같은 책, 56)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고맙다란 말의 의미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된다.

 

 

내 것이라는 오해로 인한 공치사

 

우리 안에 해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은 무지라고 달라이라마는 말한다. 무지는 단순히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무수한 인연으로 상호 의존하여 변한다. 거기에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독립된 자아는 없다고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말한다. 하지만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고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몸과 마음을 변하지 않는 하나의 덩어리로 느낀다. 그 연속된 느낌이 가 이뤄낸 내 것이라는 오해를 만들어 공치사는 계속 그렇게 머리를 드는 거 같다.

 

내게 불편함을 일으킨 그 문장을 도와준 공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나라고 바꿔보았다. 느낌이 다르다. 초점이 그에게서 나의 행위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는 일시적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생각을 일으키는 조건과 그 조건에 따라 생각 역시 계속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내 생각으로 고정해 놓고 있는 그대로가 아닌 눈에 보이는 대로보려고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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