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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수성] 이슈메일에게 배우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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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상례 작성일21-07-10 21:00 조회1,3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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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일에게 배우는 철학

-모비딕을 읽고-

 

박상례(수요 대중지성)

 


바다로 가고 싶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어 식당에서 시간제 알바를 하다가 덜컥 그 곳을 인수하게 된 적이 있었다. 이후 7,8년 동안 명절 며칠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휴일을 정해 쉴 수도 있었지만 하루라도 쉬면 큰일 나는 것처럼 가게 문을 열었다. 주방에서 하루 종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힘들었다. 무엇인가 나를 가둬놓고 짓누르고 있다는 마음에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야 했다. 모비딕의 화자 이슈메일은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 육지에서 사람들은 계산대에 묶여 있거나, 의자에 박혀 있거나, 책상에 붙잡혀 있(같은 책, 32)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삶의 정기가 고갈되는 느낌이 들었다. 출근을 하려고 운전대를 잡을 때면 시야가 확 트이고 격렬하게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가고 싶었다. 모비딕을 읽다보니 이슈메일처럼 나도 바다를 갈망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입 언저리가 일그러질 때, 이슬비 내리는 11월처럼 내 영혼이 을씨년스러워질 때, 관을 파는 가게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거나 장례 행렬을 만나 그 행렬 끝에 붙어서 따라갈 때, 특히 심기증에 짓눌린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보는 족족 후려쳐 날려 보내지 않으려면 대단한 자제심이 필요할 때, 그럴 때면 나는 되도록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허먼 멜빌, 모비딕,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31)

 

이슈메일은 날씨에 따라 감정이 우울해지고 자꾸 죽음의 문턱을 넘고 싶을 때,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바다로 향하는 배를 탄다. 가장 크게 유동하는 존재, 바다만이 그의 혈액 순환을 조절하고 권총과 칼을 대신할 수 있었다. 바다를 그리워할 때의 나의 마음도 삶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았던 듯하다.

 


바다의 상징성

 

나는 아침마다 바다에 가고 싶다는 간절함을 누르면서 시간이 없어서, 식당에 갇혀 있어서 못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잠깐이라도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외로움과 노동의 고단함이 사라지고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번도 바다로 간 적은 없었다. 왜 나는 바다를 찾지 않았을까? 게다가 가게를 그만 두고 시간이 주어졌을 때도 나는 정작 바다에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열망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파도가 넘실대던 내 안의 바다는 무엇이었을까?

가게를 그만두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간 곳은 바다가 아니라 동네 도서관이었다. 한동안 책속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러다가 고미숙샘의 로드 클래식이라는 책에 나오는 작품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작품들 속에서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지극히 이질적인 존재들과 우정을 나누며, 자유롭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길 위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 그 과정에 이입이 되다보니 뭉쳐 있던 것이 풀린 듯 바다로 향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도서관을 헤엄쳐 다니는 것으로 넓은 바다를 항해 하고 싶은 간절함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열망은 실제적인 바다와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자유로움과 역동성, 거친 파도가 분출하는 격렬함 같은, 내가 갖고 있던 바다의 상징성을 향한 것이었다.

 


삶이 나를 가둔다는 착각

 

식당을 처음 시작했을 때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 또한 컸다. 존재가 흔들리는 또 한 번의 걸음을 내딛는 일이었다. 식당은 식구들이 먹을 음식만 만들다가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음식을 판다는 두렵고도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한꺼번에 손님들이 몰려들 때나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손님들을 감당하고, 일하는 직원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했다.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경제적으로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곳, 거친 파도와 맞대면을 하면서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바다와 같은 역동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어느 순간 식당에서의 일상을 나를 가두는 시공간으로 설정해버렸다. 늘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도 나의 자리가 아니라고 착각했다. 식당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도, 남다르게 많은 5남매라는 아이들도 내가 선택했으면서도 결국 나를 억압하는 것들로 여기며 살았다. 빨리 벗어나 정말 내가 원하는 곳, 자유로운 곳으로 가야한다고 보이지 않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하는 곳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도 그리지 못하면서 지금, 여기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상을 감옥으로 만들고 스스로 수인이 되었다. 열망하던 바다의 역동성과 자유로움이 내 삶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잊고 너 왜 바보같이 이러고 살아?’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았다. 정말 안타까운 일 아닌가?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철학이 필요한 시간

 

 

인간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보트에 앉아 있어도 작살이 아니라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같은 책, 354)

 

고기를 잡기위해 만들어진 포경밧줄에 오히려 얽혀 죽을 수도 있는 포경선원의 운명을 얘기하는 대목이다. 이슈메일은 위기에 처했을 때 공포를 느끼지 않고 그 상황 안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철학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한다.

이슈메일은 삶의 현장인 바다에서 마주친 존재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야만인이면서 이교도인 퀴퀘그를 이해하기 위해 우상숭배도 마다하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받아들인다. 상쾌한 파도와 함께 나타나는 만세돌고래에게 이름도 지어준다. 자신의 한쪽 다리를 앗아간 모비 딕을 향한 복수에 온 존재를 바치는 에이해브 선장의 마음을 관찰한다. 포경선의 선원들, 모비 딕을 비롯한 고래들의 모습을 탐구하고 끊임없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고 상황을 분석하고 기록한다. 그 안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겸손이 잠재되어 있다. 그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타자를 끊임없이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며, 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만이 자신의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늘 힘든 상황이 주어지면 이전의 관계와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려 하고, 실체도 없는 다른 것을 바라보던 내게 이러한 이슈메일의 삶의 철학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살 수 있는 시공간은 오로지 이 순간이라는 중요한 명제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요즘 나의 가장 중요한 현장은 감이당이다. ‘읽고 쓴다는 것이 거룩하고 통쾌한일임을 깨닫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이전의 습성대로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슈메일에게서 지금 내게 주어진 공부의 장 안에서 학인들과 그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배웠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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