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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화성] 감이당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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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형 작성일21-04-25 22:49 조회1,4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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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당 도전기
                                                                                                                    
                                                                                                                      안형희(화요대중지성)


 
서울행
밤새 잠을 설쳤다. 며칠 전부터 김포행 비행기의 예약시간과, 서울 지하철 노선도, 소요예상 시간 등 여러 차례 확인을 해두었다. 신분증, 현금카드, 휴대용 베터리도 빠짐없이 잘 챙겨 놓았다. 그런데 불안감은 여전하다.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일을 너무 크게 벌린 건 아닌지, 너무 유난 떠는 건 아닌지..., 나 혼자만 갱년기를 겪는 게 아닐 텐데, 나 혼자만 엄마의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닐 텐데, 2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낸 우리 남편은 저리도 꿋꿋이 잘 견디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을 버티어 낼 수 없다고, 아무도 토 달지 말 것이며 불평불만 하지 말라는 듯, 1년 코스의 교육기간, 만만치 않는 교육비, 과정을 모두 마치면 그에 걸 맞는 자격증이나 번듯한 수료증조차 없는, 더욱이 일주일에 한 번씩 그것도 서울까지 날아가야 하는 이 어마무시(?)한 사건을 가족들에게 단 한마디로 통보해 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행이 바로 오늘이다. 그날이 정말 닥쳐오고야 말았다.

 
그 아이와 엄마
한반도 최남단 섬, 한라산이 하나의 섬인 제주도에서, 한라산조차 보이지 않는 바닷가 마을 끝자락 초가 집 한 채, 갓 돌을 넘긴 아들이 죽고, 그래서 그 아비가 따라 죽고, 칭얼대는 세 살배기 딸이 있었고, 어미 뱃속에는 여덟 달이 꽉 찬 생명이 숨을 쉬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기웃거리며 아기의 탄생보다는 태어 날 아이의 성별에 더욱 궁금해 하고, 결국 반갑지 않은 계집애가 태어나고, 젖이 모자라서 아들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태어난 딸이 원망스럽고, 그 원망만큼 미웠던 생명, 이게 엄마와 나의 인연 이었다. 

촌구석에서 딸 둘 키우는 서른 살 중반의 혼자 된 여자는 온갖 소문의 중심에 있어야 했고, 생활은 점점 궁핍해지고, 죽을 용기 내어 시내로 일을 찾아 나섰고, 동네사람들은 결국 바람나서 떠났다고 수군대고, 그렇게 우리 가족의 시내생활은 시작 되었다. 기생관광이 부흥하던 섬에는 남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아가씨들을 거느리는 포주집들이 있었고, 엄마는 그곳에서 밥과 빨래와 모든 허드레 일을 하게 됐고,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인 딸들은 둘만 따로 자취생활을 해야만 했다.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엄마에게 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2부제 수업을 하는 꽉 찬 교실도 싫었고, 말끔한 도시아이들이 주는 당당함에는 기가 눌리고, 내 과거와 내 환경을 들키지 않으려고 점점 명랑해져야 했고,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아야 하는 씩씩한 아이가 되어야 했고, 그럴수록 나는 늘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전화벨이 울린 시간은 새벽 5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작은 딸의 성화에 못 이겨 그렇게 가기 싫다던 노인전문병원에 꾸역꾸역 간 지 백일 만이었다. 엄마는 병원 한쪽 독방 침대에 하얗게 누워있었다. 아직 온 몸은 따뜻했지만, 얼굴의 딱 한 부분, 인중이 싸늘했다. 보.호.자.가 왔으니 임종 선고를 한다 했다. 그렇게 엄마 이마에 마지막 입맞춤하고 작별은 고하던 날은 작년 8월, 그 중에서도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잔인한 말복이었다. 

늘 탈출을 꿈꾸던 고집스런 막내딸은 엄마의 고생에 보답해 줄 번듯한 대학도 못 가고, 그나마 다니던 지방대도 졸업식을 앞두고 꼭 지금처럼 몇 마디의 통보만을 남기고 훌쩍 일본으로 날아 가버리고, 전날 엄마는 밤새 끅끅 울고 계셨고, 안정된 직장도 없이 시집 같은 건 절대 안 가겠다며 늘 겉돌기만 하고, 그러다 이제껏 수고스러움으로 장만하게 된 엄마의 작은 아파트에서 엄마의 소원이던 공무원 사위와 손주 셋이 생기고, 친구분들께 자랑하는 낙으로 사셨는데, 내가 엄마에게 해 준건 안정된 신랑 만나 시집 가 준 것밖에는 없는데, 그런 엄마를 내 손으로 병원에 밀어 넣고 이렇게 쓸쓸한 마지막을 맞이하게 했다. 일주일 전 집에 데려다 달라는 전화가 끝이었다.
 
엄마를 잃어버렸다. 늘 내 옆에 있던 엄마를 잃어버렸다. 어찌해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안절부절 숨도 턱턱 막히고 모든 시간이 허무하고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사람은 결국 이렇게 죽는 것이구나, 우리 엄마도 죽는 것 이였구나.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 뒤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길 찾기

완벽한 천국도 없지만 완벽한 지옥도 없다. 지옥을 방황하다 보면 출구를 찾게 되는 법. 하여, ‘난 누구? 여긴 어디?’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것이 화두가 되고 선문답이 될 때까지. 모든 길이 끊어진 그 허공에서 다시 ‘길’ 찾기를 시도하는 심정으로.(『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지음 199쪽 북드라망)
 
  
왜 철학 공부를 하냐고 친구가 물었다. ‘철학관을 차리려고?’ 우스갯소리도 덧붙인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큰딸은 엄마가 이상한 곳(?)에 빠진 건 아닌가 염려마저 했다. ‘왜 사는지를 알고 싶어서!’ 나의 대답이었다. 감이당을 만나기 전에는 감히 대답하지 못했을 것을, 아니 내 스스로 ‘내가 왜 살고 있는가?’ 수없이 질문만 해대고 있었겠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은 내게 끝없이 질문을 만들어 냈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또한 ’죽음이 닥쳤을 때 내 모습은 어떨까?’ ‘두려움 없이, 후회스러움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등등. 아직은 삶이 무엇인지, 철학이 무엇인지 안개속이기만 하지만, 오늘 친구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할 수 있었으니, 앞으로의 배움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또한 할 수 있겠지. 매주 화요일의 서울행이 엄마에 대한 죄책감에서 시작되었지만 엄마의 고단했던 삶과 더불어 나의 삶도 소중한 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길...   
 
 
삶이란 무엇인가? 내가 오늘 내딛은 수많은 걸음들이다.(『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지음 29쪽 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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