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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화성] 코로나와 슬기로운 도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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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유자적백수 작성일20-05-15 14:32 조회2,9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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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슬기로운 도시생활


 강보순(감이당 화요대중지성)


‘환자 한명이 어떻게 한국의 코로나19를 유행병으로 바꿨나’ 한 신문사의 뉴스제목이다. 대체 이 환자가 누구이기에? 처음에 이 환자는 코로나19가 아닌 교통사고로 입원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 허나 이 환자는 자신의 몸 상태를 모른 채, 서울과 대구에 위치한 거래처·교회·호텔을 수차례 오고간다. 이 과정에서 접촉한 사람만 무려 166명.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왜냐하면 이 환자가 그 유명한 31번 확진자였기 때문이다. 대구는 이 31번 확진자를 시작으로 코로나 확산의 중심이 된다. 왜 이 환자는 입원 중에도 자신의 일상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일까.


31번 확진자의 동선을 따라 확산된 바이러스는 전염병의 방향이기 이전에 욕망의 방향이다. 나이롱환자가 될지언정 포기할 수 없던 보험금에, 교회에 가 신앙도 지켜야하고, 예식장에 찾아가 인맥관리까지. 31번 확진자의 번다한 동선은 이러한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이기적인가? 그런데 이 모습은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너뜨리고 온 도시에 바이러스를 불러들인 이태원 클럽에 모인 청춘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고, 벚꽃을 찍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넘는 우리의 일상과도 다르지 않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백신개발이 무슨 소용이며, 손 씻기가 무슨 소용일까. 오히려 우리의 일상과 욕망에 대한 성찰이 더 중요해 보인다.


『장자』에는 밥 짓는 신선, 열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신선이 밥을 짓는다니, 무슨 곡절일까? 열자는 호자를 스승으로 섬기다 어느 날 무당 계함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호자에게선 몇 년간 배워도 특별한 게 없었는데, 계함은 처음 봄에도 생사존망을 정확히 맞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함의 술수는 호자의 깊은 도(道)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주목해야할 건, 이 사건을 계기로 변한 열자의 일상이다. 열자는 배운 게 없음을 깨닫고 3년간 집 밖에 나오지 않았다. 멈춘 것이다. 멈춰서 그 동안 외부로 향했던 번다한 욕망을 거두고,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했다. 배움과 맺는 관계, 음식과 맺는 관계, 아내와 맺는 관계 등 일상의 모든 관계를 되돌아본 것이다.


열자의 일상은 단순해졌다.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채식을 하며, 돼지에게 사람 대하듯 밥을 먹였다. 그가 밥을 지은 건 남녀의 일을 구분하지 않기 위함이고, 채식은 음식에 대한 탐심을 내려놓기 위함이며, 돼지에게 사람처럼 밥을 먹인 건 반려동물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인간임을 내려놓고 만물은 하나라는 걸 깨닫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일상이 자리하자 그에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동안 자신을 묶어두었던 좋고-나쁨과 같은 가치들이 사라진 것이다. 바람을 타고 노니는 신선의 자유가 일상에서 어떤 마음을 내느냐에 달려 있다니. 열자의 자유로움은 외부에 있지 않았다.


전염병이 일상이 되면 우리의 도시적 삶은 분명 다르게 구성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번잡한 욕망과 동선을 자유라 느끼는 방식으론 생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열자의 일상을 떠올려보자. 그의 일상은 단순했다. 허나 그 단순함의 핵심은 불필요한 일을 줄여 다른 활동을 하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그 활동에 얽매이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있었다. 그가 밥 짓기 하나에도 일상이 충만해질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다. 멈춰야 할 상황에서 멈추고, 그 멈춤을 자신의 욕망을 다르게 사유하는 기회로 삼은 열자. 전염병이 일상화 되어가는 지금, 우리의 목표가 신선은 아니더라도 열자가 삶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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