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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하이브리드로 살다
 글쓴이 : 한량 | 작성일 : 20-01-29 19:10
조회 : 1,152  
하이브리드로 살다

김영미(금요 대중지성)




  I. 동일성에서 차이로

  II. 삶의 생기를 되찾다
    1. 국면, 주체가 흔들리다
    2. 차이와 동일성의 대결
    3. 열대와 공통 관계(context)를 맺다

  III. 열대에서 서구를 발견하다
    1. ‘진정한’ 야만인은 없다
    2. 동일성은 폭력이다
    3. 역사에서 공간으로
    4. 야생의 구조, 잡스러움의 비밀지
    5. 열대를 품은 서구인

  IV. 브리콜라주의 삶



I. 동일성에서 차이로

탈북민들의 적응을 돕는 일을 20년 가까이 하다가 얼마 전 퇴직하였다. 첫 만남은 이들이 갑작스럽게 대거 입국하던 2001년이었다. 당시 우리 사회는 이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법과 제도가 미비하였다. 특히 홀로 입국한 탈북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었다. 당황한 우리는 급한 대로 함께 살았다. 1년 정도의 동거는 한마디로 좌충우돌이었다. 탈북민들의 부랑자 같은 생활 습관과 불규칙적인 생활패턴은 우리사회 정착에 걸림돌이 되었다. 한국 문화 코드를 교육시켰다. 이들은 거부했다. 도망치듯 달아난 아이들을 붙잡아 다시 앉혀놓기를 반복하며 마찰을 일으켰고, 끝내는 결별을 선언했다. 탈북민에 대한 원망만 커져갔다.
  그러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만났다. 그는 구조주의 인류학자로서 ‘미개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어주었다. 당시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가장 진보한 상태로 비서구 문명의 모범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비서구 사회는 야만이고, 미숙한 세계로서 계몽의 대상이라고 여겼다. 이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남미 여행에서 맛본 럼주들을 비교하며 서구사회의 오만함에 일침을 가한다. 서구인들의 취향에 맞는 럼주의 풍미는 순도 100% 주조 과정을 거친 것보다 ‘불순물’이 만들어내는데, 대부분 불순물의 힘을 간과한 채 말끔히 제거하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찔렸다. 갖가지 나물을 섞어 먹는 비빔밥조차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그의 불순물론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비빔밥은 ‘하질’의 음식이었다. 음식계의 통섭 현상이라 할 수 있는 퓨전 음식도 싫었다. 고유의 맛을 없애버리는, ‘개취’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였다. 그러니 불순물이야말로 고유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위험요소였다. 
  내게 탈북민도 우리 사회의 불순물이었다. ‘이려려고 왔어?’하는 말이 마음에서 튀어나왔다. 탈북민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사선을 넘어서 왔는데 뭐든 다 할 수 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살고 싶다.” 그들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번번히 그들은 자신들의 결심을 스스로 뭉개며 ‘못난’ 선택을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의 인생, 비틀리고 중구난방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엔 기다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 이민자 연구에서 이민자들의 적응은 대개 5~6년 소요된다고 했으니 그들에게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 20년을 지켜본 결과, 그것은 정설이 아니었다. 제각각 달랐다.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싫증났다. 그들이 우리사회의 ‘불순물’로 여겨졌다. 위험요소인 그들에게 ‘국민교육’이 급선무였다.
  ‘국민 되기’는 탈북민들이 우리와 같아지기를 바라는 ‘동일성’이었다. 그들은 결핍된 존재였고, 그 결점을 제거하려는 욕망에서 동일화가 생겼다. 레비스트로스는 동일성을 욕망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차이는 사회를 혼란과 위험으로 몰아가지 않고, 오히려 이전의 흐름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인식과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구조’는 일종의 보편적 무의식으로서 차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그것이 사회를 다양체로 만들어 더욱 풍요롭고 건강하게 한다고. 이 말이 이해하지 못한 나는 탈북민들을 ‘국민’으로 개조하려고 했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규정하였다. 
  레비스트로스는 달랐다. 그는 불안정한 기질을 지닌 남비콰라족의 환심을 사려고 열기구를 띄웠다가 그 집단을 혼란에 빠뜨렸다. 당황한 그는 원주민들과 면담하며 과학적 원리 너머에 있는 그들의 인식, 즉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은 재앙과 종말로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그들이 ‘천국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 선교단을 학살한 사건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이 이 사건을 두고 영예로운 싸움인 것처럼 명랑하게 떠드는 이유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남비콰라족의 세계관을 미신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차이를 서구사회와 동등한 차원에 두고 ‘닮은 차이’를 찾으려 했다. 겉보기에는 달라도, 그 심층에 있는 공통성을 탐구했다. 나는 이런 그의 눈이 궁금했다. 현상에 머물지 않고 그 심층을 꿰뚫는 눈, 차이 너머에 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눈 말이다. 이제 그의 질문을 따라가며 탈북민들과 충돌을 일으킨 내 마음의 심층 구조를 밝히는 통찰력을 배워보고자 한다.

II. 삶의 생기를 되찾다

청년기의 레비스트로스는 철학공부에 싫증을 느껴 방황했다. 철학교수자격시험 준비과정에서 사유 훈련한 변증법이 사달이었다. 변증법은 무슨 문제든 적용하기만 하면 깔끔하게 처리되는 만능 해법이어서 논리적 기교와 지능은 연마되었다. 대신 정신은 고갈되었고, 우울증이 찾아왔다. 자신은 냉기로 꽉 찼다고 토로했다. 한마디로 사는 게 재미없고 생동감이 없었다.
  그 즈음 레비스트로스는 자기사회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낯선 세계로의 여행을 꿈꾸었다. 길 위에서 ‘레알’ 고생을 하다보면 ‘자기’가 느껴질 테고, 자신이 떠나온 세계가 눈에 보일 것이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그 기회가 왔다. 완전 낯선 세계인 원주민 탐사 여행. 오호~ 그의 선택과 결정은 옳았다. 남미의 열대는 배움터였다. 몸으로 배우는 ‘임간학교.’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국면은 다른 지형으로 이행할 때 통과하는 경계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불연속이며 전환기이다. 이때 그는 자기가 속한 세계에 대한 의심과 혼란을 겪었다.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경험과 기존 질서를 뚫고 새로운 지형으로 나가는 힘이 되었다. 그럼 국면을 뚫고 나아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자가 치료법을 따라가보자.

1. 주체가 흔들리다

  그는 청소년기를 포함해 남미 브라질 탐사와 미국 망명 시절 등 3번의 국면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주체는 흔들렸다. 이미 주어진 서구 사유와 사회 체계들에 거리를 두고 방황했다. 그중 남미 브라질의 ‘미개사회’는 그야말로 문명의 충돌이었다. 서구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첫 국면이 정신적 방황이었다면, 두 번째 남미 탐사는 몸으로 경험한 혼돈이었다. 그 결과 문명적 사고 대신 ‘야생의 사고’를 발견했고, 그것을 ‘구조주의’로 체계화했다. 이 이야기는 두 번째, 세 번째 국면들을 전개하면서 설명하겠다. 
  밥벌이로 시작한 철학 교직생활에서도 그의 우울증은 여전했다. 2년 차에 우연히 로버트 로위의 『미개사회』를 읽었다. 가슴이 떨렸다. 지식이 아닌 직접 체험해야만 그 사회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원주민 사회를 여행하고 싶었다. 여행을 싫어한 그였지만 ‘미개사회’ 탐사만큼은 떠나길 바랐다. 시절인연이 닿았다. 지도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파울루 대학에 교수 자리가 비었는데 관심 있냐는 것이었다. 드디어 도전할 기회를 만났다. 상파울루에 체류하는 내내 브라질 내륙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여태껏 소개되지 않은 원주민까지 찾아 나섰다.
  그는 거기서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유럽의 인간중심주의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열대 깊숙이 탐사하면서 목격했다. 인간중심주의는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남미에 생채기를 내었다. ‘미개사회’를 계몽하겠다는 미명 하에 열대에 발을 디딘 서구는 문명 발전에 필요한 자원들을 약탈해갔다. 그것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노예화하였다. 서구에 의해 개방된 남미는 ‘발전’보다 오히려 황폐화되었다. 서구의 인간중심주의가 ‘미신’ 같았다. 
  신과 전제군주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서구는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라고 인식했다. 무지와 몽매에서 벗어난 서구는 사물을 합리적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자기 의지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세계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신 대신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였고, 자연은 인간의 편의와 효용을 위해 개발하였다. 서구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이루었고, 그만큼 물질적 부를 증대시켰다.
  역사의 진보를 이룬 서구는 우월감에 빠졌다. 서구 문명은 비서구의 모범이 될 만하다고 자만했다. 서구는 자신의 ‘문명’과 ‘기술’을 들고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그들의 시선이 외부를 향해 열렸지만 그들의 사유는 여전히 폐쇄적이었다. 어디에든 자기 문명을 복제하려는 태도, 그 동일성의 욕망이 관계를 단절시켰다. 아니, 오히려 주인과 노예의 관계, 식민 지배를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중심주의였다.
  레비스트로스는 폐쇄적인 자기 사회가 답답했다. 그들의 인간중심주의는 자기 사유를 냉랭하게 했다. 이 무렵 레비스트로스는 새로운 국면을 통과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접하며 절대화된 주체를 의심했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을 인식할 수 없으면서 스스로 결정하며 산다고 착각했다. “의식은 자기를 속인다.” 또한 실제 의식할 수 있는 표면이 아닌, 의식이 접근할 수 없는 심층에 의미가 있음을 배웠다. 이를 토대로 남미 ‘미개사회’를 탐사하며 서구 계몽주의의 현실을 목격했다. 훼손되고 망가진 그곳은 그야말로 ‘슬픈’ 열대였다. 이제 그는 1930년대 새로운 철학으로 등장한 인간중심주의에 반대했다. 특히 실존주의와 대척점에 섰다.

2. 차이와 동일성의 대결

2차 세계대전 때 세 번째 국면을 맞았다. 그는 나치 세력을 피해 뉴욕 신사회연구원과 록팰러 재단의 도움을 받아 뉴욕으로 이주했다. 물설고 서먹서먹한 미국 생활은 힘들었다. 우선 말이 통하지 않았다. 생활공간을 마련하고, 생계 수단을 찾으며 곡절도 겪었을 것이다. 대신 초현실주의자 그룹과 미국 인류학의 대가 보아스와 우정을 나누면서 현상 이면에 있는 의미를 탐착하는 일에 힘썼다. 특히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레비스트로스는 그에게 소쉬르의 랑그와 기호체계, 그리고 음운론의 ‘이항대립’ 개념을 배웠다. 이항대립은 사물과 사물 간의, 요소와 요소 간에 대립 관계를 설정한다. 왜? 대립 관계에서 둘 간의 뚜렷한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긴장을 일으키지만 동시에 ‘통합’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다. 그래서 그 차이를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둘 사이의 공통 질서가 있음을 밝힌다. 대립관계에 있는 둘 사이를 연결시키고 통합하려는 ‘무의식’이 바로 ‘구조’였다. 
  음운론의 이항대립을 접하니 친족 문화가 언어활동처럼 구조적임을 간파했다. 그래서 이항대립을 친족 분석에 적용했다. 그 결과 상이한 친족관계와 혼인 형태에는 ‘근친상간 금지’라는 공통성이 있었다. 왜 모든 문화는 근친상간을 금지했을까? 생물학적 이유에서 금지했을까? 근친 간에 혼인을 하면 돌연변이를 낳을 수 있고, 그러면 종족 보존을 할 수 없으니까. 그들도 이러한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틀렸다.
  레비스트로스는 사회학적 이유에서 금지했다고 보았다. 사회학적인 이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타자를 정복하거나 힘의 우위에 서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근친상간을 금지했을까? 타자와 ‘관계’하고 싶어서. 미개사회는 타자와 유대관계를 맺기 위해 여자를 ‘교환’했다.
  그들의 교환은 자본의 물물교환과 달리 ‘증여’에 가깝다. “원시부족들 사이의 증여와 답례 형식을 취하는 교환은 경제적인 것을 넘어 사회총체적인 것이다. 즉 그들은 경제적 필요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 사이의 유대강화, 공동체적 질서 유지를 위해 교환한다는 것이다.”(고병권, 화폐, 마법의 사중주, 174) 증여는 관계의 욕망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으며 내가 필요한 것은 타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생명은 타자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음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여자를 매개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생명이 유동하도록 체계화하였다. 
  이와 달리 “일반화된 교환은 동일화 논리이다. 원시사회가 무엇보다 거부하는 것이 바로 이 동일화 논리이다. 타자와 동일시되는 것에 대한 거부, 자신을 자신으로 구성해 주는 것, 자신의 존재 자체, 자신의 고유성, 스스로를 자율적 ‘우리’로 생각하는 능력 등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거부가 그것이다... 동일화는 죽음을 향한 운동인 반면, 원시사회의 존재는 삶의 긍정이다.(피에르 클라스트, 폭력의 고고학, 울력, 279-280)”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체계를 분석하여 구조주의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구조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친족, 혼인, 신화, 토템에 담겨진 모든 문화 간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질서와 법칙을 탐구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구조’란 무엇일까? 구조는 다양성 너머에 있는 공통성이고 불변의 법칙이다. 즉 일종의 보편적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조는 의식되지 않지만 사물들을 작동시키는 질서이며 개인이 있기 전에 이미 사회 내에 존재했다. 개인은 구조의 산물이며, 구조는 주체보다 선행한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당대 핫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2차 세계대전 후 파리 카페 어딜 가든 실존주의 이야기로 웅성거렸다. 실존주의는 양차 대전 이후 인간성에 대해 의심했던 개인들에게 삶의 목적과 희망을 주었다.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이니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무엇을 해도 괜찮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면 된다. 그리고 항상 결핍된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미래의 나, 새롭게 변화될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자기를 실현하면 된다.’
  사람들은 무한한 자유와 인간에 대한 무한긍정 철학에 열광했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자유는 어찌 보면 ‘저주받은 자유’였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선택하는 것은 도박 같았다. 선택과 결과의 모든 책임은 자기에게 있었다. 무한한 자유는 불안을 야기했다.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중압감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개인들은 존재의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절대 자유를 부정하였다. 선택과 결과에 책임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속였다. 개인들은 안전한 은신처를 찾았다. 그곳이 내면이었다. 자기를 세계로부터 분리시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고독한 공간이었다. 내면에 숨은 개인은 외부를 평가하고 계몽하려고 들었다. 개인은 차이를 제거하고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 ‘무리’를 이루었다. 그러나 타자의 시선 때문에 더욱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1955년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를 출간했다. 실존주의에 지친 개인들은 구조주의에 열광했다. 개인에게 타자는 더 이상 지옥이 아니었다. 오히려 타자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거울이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였다. 개인은 관계를 사유함으로써 개인은 혼자가 아닌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살아감을 깨달았다. 시선을 유럽을 넘어 비서구까지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 다양한 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은 구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었다. 이 질서 속에서 절대적 주체는 사라진다. 
  이제 개인은 절대 자유와 책임의식의 중압감에서 벗어났다. 더 이상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래를 향해 자기를 기투하지 않아도 되었다. 구조주의는 개인의 시선을 미래에서 현재로, 내부에서 관계로 돌렸다. 사람들은 영원한 것을 욕망하지 않고 지금, 여기, 눈앞에 있는 당면 상황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의미 추구에 짓눌린 사람들을 해방시킨 구조주의는 혁명적이었다.

3. 열대와 공통 관계(context)를 맺다 

  레비스트로스는 여러 차례 국면을 통과하면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성찰했다. 마치 신석기인들이 미개척지에서 경작지를 만들려고 불을 내는 것처럼 각 국면마다 이미 주어진 서구의 구조를 의심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어떻게? 체험을 통해서.

내가 그 책에서 맞부딪쳐야 했던 것은 책에서 읽는 즉시 철학적 개념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관찰자의 직업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그 의미를 보존할 수 있는 원주민 사회에서 실제로 겪어야 하는 ‘체험’이었다. 나의 사고는 철학의 사고훈련이 몰아넣는 폐쇄된 항아리에서의 발한 상태를 벗어났다. 밖으로 이끌려 나온 나의 사고는 신선한 바람을 쐬어 생기를 얻은 느낌이었다. 
  
서구 구조에서 얻은 우울감이 원주민 사회에서 겪은 체험으로 치유되었다니. 그래서 삶의 생기를 회복했다는 고백이 내게 도전이 되었다. 그가 말한 ‘체험’이란 게 무엇일까? 나도 탈북민과 충분히 낯선 세계를 체험한 것 같은데 우울감에 빠진 이유는 뭘까? 무슨 병폐가 있었던 것일까? 
  처음엔 그가 체험을 강조한 것은 인류학자로서 문자 없는 사회인 원주민사회를 대신해서 그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기록하고 변론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원주민사회의 억울함이 풀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주민 사회는 문자와 기록에 관심이 없었다. 외부에 자기사회를 이해시키기 위한 대변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문자가 없고, 역사가 없다고 무시하는 서구사회에 일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체험은 시각만이 아닌 오감을 통해서 낯선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었다. 시각에만 의존한 체험을 부분만을 인식할 뿐이다. 하지만 오감은 낯선 세계의 시공간을 겪음으로써 부분이 아닌 전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부분과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맥락’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낯선 세계를 겪음으로써 타자와 나의 시공간이 연결된다. 컨(con)-텍스트(text). 그에게 체험이란 낯선 세계와 하나의 시공간을 갖는 것이고, 그 시공간에 새겨진 이야기를 겪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시공간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사회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난 탈북민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맥락만을 주구장창 설명했다. 그들이 살아온 시공간과 그 속에서 겪은 사건에 감응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주겠다는 과욕을 부렸다. 
  체험은 레비-스트로스의 인식의 지반을 흔들었다. 그것은 서구 구조이기도 했다. 그는 열대에서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와 정면충돌하면서 동일자를 욕망하는 폐쇄성을 보았고, 타자와 유대관계를 맺기를 거부하는 배타성을 직시했다. 이것이 젊은 날 우울증의 원인이었고, 자신의 사유가 냉기로 꽉 찬 이유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가 속한 사회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미개사회’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자기 세계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쐬어 생기를 얻은 것이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진정한 여행은 ‘내 마음속의 황야를 탐색하는 것’임을.
  그는 항상 원시사회를 지칭하는 ‘미개사회’에 작은따옴표를 붙여 사용했다. 이는 서구인들을 향한 경고였다. 자기와 다르다고 무시하고 비하하는 태도를 자각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슬픈 열대』는 ‘미개사회’에 대한 명예회복이기도 하다.

III. 열대에서 서구를 발견하다

한 탈북 여성은 여섯 살 난 아들과 입국했다. 사연은 이랬다. 북한에 있을 때 사촌의 중매로 한 남성과 선을 봤다. 그닥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 남성한테서 연락이 왔다. 근사한 밥을 먹자는 말에 혹해서 다시 만났다. 그날 아들을 임신했고, 남성은 밀수 사건이 당국에 걸려 도망쳤다. 이 남성은 그 길로 한국으로 도피했다. 미혼모로 아들을 키우다가 어느 날 그 남성한테 연락이 왔다. 아들을 한국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자기 핏줄이니 자기가 키우겠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친권을 주장하는 남편에게 여성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들을 붙잡고 있으면 북한에서의 생활고를 해결하고, 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여성은 아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문제는 그 남성이 이미 다른 탈북여성과 결혼한 상태여서 갈 곳이 없었다. 남편(?)이 이미 임대아파트를 받았기 때문에 그 여성에게는 권한이 없었다. 하나원을 퇴소해서 동거녀가 있는 그 남성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 여성의 선택과 결단을 옳다거나 그르다고 평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동의할 수도 없었다. 이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생사를 넘는 위험을 뚫고 한국까지 왔으면 자신들의 결단과 다짐대로 과거를 모두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난잡’했다. “한국에도 이미 사회 불안요소가 많은데, 굳이 탈북민까지 받아들여야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멋대로’ ‘좌충우돌하며’ 사는 이 사람들과 씨름하고 나면 상식이 통하지 않음에 답답했다. ‘구질구질한’ 인생에 진저리가 쳐졌다. 그럴수록 ‘멀쩡한’ 사람들과 근사한 식당에서 수다 떨고 싶었고, 성장한 친구들과 강남 네거리를 활보하고 싶어졌다. 마음에서는 ‘난 너희들과 달라’하는 소리가 일었다. ‘정상적인 삶’이 아닌 그들과 같은 국민으로 취급당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그들의 개인사에 휘말리지 않겠다, 도와줘봤자 소용없으니 그들에게 틈을 주지 말자, 고 했다.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며 찾아오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부지불식 간에 인색하고 완고한 ‘나’, 빈껍데기가 되어버린 ‘나’를 본 순간 화들짝 놀랐다. ‘이건 사람이 아니야’라는 외침이 들렸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이러다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주4일 근무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온 몸이 아팠다. 
  퇴직 후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특이 증상은 없었다. 꾀병이었나? 유리멘탈이라서 견디지 못했나? 건강 문제가 아니었다면 나의 현장과 그간의 체험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했다. 

1. ‘진정한’ 야만인은 없다

  레비-스트로스가 상파울루 주를 탐사한 결과 ‘진정한 야만인’은 없었다. 상파울루 주변에 원주민들이 많이 살 거라던 지도교수의 말과 달리 그곳에는 이주민들이나 혼혈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외부와의 접촉을 기피한 원주민들은 해안지역에서 살기 어려운 환경인 열대우림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내륙지방에서 만난 원주민들은 이미 문명의 세례를 받은 상태여서 고유의 원주민 문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티바지 인디언 보호구역이었다. 그곳에는 에나멜이 칠해진 금속 식기류와 값싼 스푼, 재봉틀을 진열해 놓고 사는 문명화된 인디언만 살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관광 상품’으로 장사하고 있었다.
  첫 원주민 탐사였던 만큼 실망도 컸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원주민들은 사라져버렸고, 사라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전통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작은 쪼가리와 잔해들의 도움을 입어 이국정서를 복원시켜보려고 헛되이 애쓰는 여행자요, 공간의 고고학자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한탄했다. 
  브라질 야만인에 대한 연구는 언제쯤 이루어졌어야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을까, 가장 덜 변질된 상태를 소개하려면 언제쯤이 가장 적절했을까 하는 망상에 빠졌다. 그러나 ‘인간의 손이 가해지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자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224)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현장은 우리의 욕구와 필요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 혐오를 느껴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지만 그에게도 ‘야만인’에 대한 상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서구는 탐험가들의 귀국보고회가 유행이었다. 탐험가들은 열대를 문명의 적으로 여기며 정복하려고 들었다. 그들은 ‘접촉 가능한 미개인들, 얼어붙은 산봉우리, 깊은 동굴과 숲들, 고귀하고도 유익한 계시를 주는 사원들’을 정복하고 돌아왔다. 대중 앞에 정복의 증거물인 총천연색 사진첩을 자랑스럽게 흔들어대며 아마존 삼림 속 야만인들의 위험성, 생사를 넘나들었던 경험들을 리얼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프리젠테이션했다. 탐험가들의 모험담 속에서 원주민들은 ‘미개하고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레비-스트로스에게도 열대 입사자의 통과의례처럼 순수한 원주민을 만나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나도 그런 유혹이 있었다. 탈북민은 의존보다 자립, 경쟁보다는 협동, 방종보다 자율, 배신보다 의리를 지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들과 한 달을 살고 난 후 나의 기대는 와장창 깨졌다. 생사를 넘나든 탈북과정에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테니 잘 먹고 쉬고 나면 그들만의 삶을 회복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생존력과 회복력이 강한 사람들이니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학업을 이어가거나 직장을 구할 것이다, 지금은 정부지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점차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의 인내와 기다림은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켰다. 이런 태도는 그들을 신비화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그들도 원하지 않았다. 
  레비-스트로스도 첫 통과의례에서 깨달았다. 현재는 사라져버린 것의 흔적이 아니라는 것을. 현재는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그때보다 많은 과거를 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현재는 여러 문화가 접촉하면서 생긴 부식과 변형을 파악할 수 있는 다양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런 결론에 도달한 그는 사라져버린 원주민 문화로 인해 마냥 실의에 빠져 있을 순 없었다. 원시 상태의 끝까지 탐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의 탐사 여행을 따라가기 전에 나에게 하나의 질문이 남아있다. 우리는 왜 타자에게 순수함을 기대하는 걸까? 

2. 동일성은 폭력이다

『슬픈 열대』의 1부는 ‘여행의 마감’이란 주제로 펼쳐진다. 의아했다. 여행기의 서론이 ‘마감’이라니. ‘시작, 준비, 출발’ 이런 주제여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1부 첫 장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며,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 독자로서 당황스러웠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으라는 소리인지 말라는 소리인지 애매해진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처음의 불쾌감은 사라지고 그의 ‘말빨’에 빨려든다.
  <1부 여행의 마감>은 레비-스트로스가 열대 여행을 마친 후 여행기를 쓰기까지의 소회가 나온다. 그는 열대 여행의 경험을 마감하고 당시 고민을 직면할 때까지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그의 열대 여행은 여느 여행처럼 힐링을 주지 않았다. 이국적 취향을 만족시키는 낭만도 없었다. 오히려 혼란에 빠뜨렸고, 딜레마에 허덕이게 했다. 열대 구석구석을 누비며 맞닥뜨린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삶을 탐사하면서 슬픔에 젖었다. 15년의 시간은 거리를 두고 그 ‘찐체험’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망각은 절뚝발이 같은 그의 인식에 평형을 유지하게 해 주었다. 도대체 열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고민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바로 2부로 넘어가면 안 된다. 맨 끝의 ‘9부 귀로’와 묶어서 읽어야 한다. 그의 슬픔은 고국인 프랑스와 서구세계에서 비롯된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대혁명의 가치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사회가 힘의 우위에 따라 피아를 구별 짓고, 타자화하고, 지배하려는 태도를 여행 내내 목격했다. 
  나치를 피해 망명길에 오른 미국행 배에는 남미 식민지로 파견된 자국 군대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정복자처럼 원주민을 대하듯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다. 미국으로 망명하는 사람들에게는 배신자라며 적을 대하듯 난폭하게 대했다. 자국 국민들에게 이렇게 행동하는데 식민지나 타국에서는 더할 것이 아니겠는가.
  열대에는 서구에게 착취당한 흔적이 가득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황금을 탐식한 뒤 다이어몬드와 설탕을 갈망했고, 다음에는 커피를 가져갔다. 그만큼 자연은 무참히 파괴된 후 버려졌고, 노예로 전락한 원주민들의 삶 또한 피폐해졌다. 서구인들이 들여왔던 질병과 산업자본 등으로 인해 원주민 인구는 줄어들었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이 위험요소라며 열대 곳곳에 일부러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녔다. 그 결과, 1915년 2만 명으로 추산되던 남비콰라족은 레비-스트로스가 방문했던 1938년 수백 명이었고, 1949년에는 18명밖에 남지 않았다.
  ‘자유, 평등, 박애’의 민낯은 패권이었다. 그는 열대 구석구석을 누비며 서구 문명이 이룬 인류애적 가치가 허구였음을 목격했다. 서구의 인류애는 단일함, 동질적인 것이 전제되었다. 자기와 같아야만 공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동류끼리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질적인 것, 낯선 것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낯선 것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순수함을 욕망한다. 다른 것은 ‘적’이다. 그대로 두면 안 된다. 정복하거나 소멸시키거나.
  서구는 겉으로는 평등을 외쳤지만 남이 남인 채로 자기와 공존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이질성을 소멸시키려고 했다. 그것은 남과의 구별을 없애려는 의지이면서, 동시에 그 이면에는 남과 구별되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었다. 자기와 똑같은 것들끼리 ‘무리’를 이루고 싶어 하고, 나와 다른 타자는 분리하고 배제하면서 자기를 확장시키려고 했다. 서구는 마치 사탕무를 재배하듯 토종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단일재배하였다. 자기문명을 다른 세계에 복제하려고 했다. 동일성은 최종적으로 공존이 아닌 패권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러니 동일성은 폭력이고 야만이었다.
  종교 박해를 피해 브라질로 이주한 프로테스탄트들은 열대에서 제국을 세우고 싶었다. 리우데자네이루에 공동체를 세웠다. 종교의 자유와 풍요로운 생활을 꿈꿨으나 폭력과 대립으로 치달아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흔히 인디언들 때문에 생존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그건 절대 오해다. 오히려 분쟁은 그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신학적 입장 차이는 명분이고 주원인은 고립이었다. 외부와의 차단. 인디언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아주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열대의 자연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공동체 바깥은 낯설고 두려웠다. 그래서 열대와의 관계를 차단하고 유대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니 그 실험은 실패로 끝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균질한 것은 오히려 생명을 위협한다. 
  서구는 세계를 단일 체제 하에 두고 싶었을까? 구별되기 위함이다. 서구는 단일한 척도로 우열을 가리고 서열화했다. 인종 간, 사람-자연 간, 문명 간에 우열을 갈랐다. 주인-노예의 관계를 만들어 착취와 약탈을 일삼았다. 서구는 인류의 면전에 ‘오물’을 던지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서구 문명 속에 숨어있는 논리를 간파한 것일까? 원주민들은 서구 문명의 요구를 거부하며 외부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열대우림이나 아마존으로 이주했다. 혹은 문명과 결합하여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 살아가는 인디언들도 있었다. ‘개화된’ 인디언들은 정부가 준 집과 침대를 버리고 야영과 방랑생활을 즐겼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문명생활을 버리고 여전히 이빨에 줄질을 하고 장식을 새겨 넣었다. 사냥할 때는 총을 쓰지 않고 굳이 활과 화살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서구 문명에 의해 깨진 삶의 불균형 속에서 자기 변형을 이루며 전통과 신념을 지키고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의아했다. 이들은 동일성 욕망에 포획되지 않았다. 오히려 문명의 요구를 받았을 때 그것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고 했다. 그들은 열대에 서구가 출현했을 때 문명적 충돌을 겪었다. 그러나 대처하는 방식은 서구와 달랐다. 서구의 가치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지 않았다. 이로우냐, 해로우냐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 실마리는 열대의 전통과 신념에 있었다. 그는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어떤 전통과 신념에 의해서 과거 생활로 돌아가는가? 그는 서구와 다른 열대가 궁금했다. 열대의 끝까지 여행할 이유가 생겼다. 
  한편 레비-스트로스는 질문을 바꾸면서 관점과 인식에 변화를 일으켰다. 어떻게 외면에서 이면으로. 대항해 시대 사람들이 해우를 보고 인어로, 목화나무를 보고 양나무라고 말하는 닮은 꼴 찾기는 피상적인 인식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착각이나 인식의 오류에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면적 특징만을 포착하고, 그것을 기존의 정보와 연결해서 이해하려는 인식의 관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과 관련지어 이해하지 못해 표면에서 보여진 특성들을 모아서 같다거나 혹은 다르다로 구별 짓는 것이다.
  겉에서 관찰되는 외면적 특성만으로는 열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원주민 사회가 그렇게 행동하는 방식, 그런 삶을 선택하는 이유를 물어야했다. 그는 원주민 사회가 보여주는 것 그대로 따라가 보았다. 그들의 내재적 논리를 따라가면서 그 이면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3. 역사에서 공간으로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내면화한 도시가 바로 상파울루였다. 서구화는 피동이 아니라 능동이었다. 상파울루는 빠른 속도로 변모했다. ‘새로움’만이 그 도시의 존재를 정당화시켜주었다. 낡고 오래된 것은 촌스러운 것이었다. 낡은 것을 부순 자리에는 유럽식 건축물과 동상들이 들어섰다. 유럽보다 더 화려하고 새롭고 웅대하게. 식민지의 열등감이라고나 할까. 오래되면 될수록 더욱 높이 평가하는 유럽에서 산 레비-스트로스에게는 낯설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상파울루 시가 한 시간당 집 한 채의 비율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매주 새로운 지도가 출간될 정도로 빨리 성장하기 때문에 지도를 살 수 없는 형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엘리트들도 마찬가지였다. 힙한 물건을 찾는 사람처럼 최신 이론에 열광했다. 그들은 대중 보급용 저서들과 개론서를 탐독하며 서구의 지적 유산을 따라 잡으려고 애썼다. 그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저명인사들을 배출해냈다. 그들은 빠르게 촌티를 제거하면서 서구처럼 전문성을 갖추려고 애썼다.
  나는 열대의 서구 따라잡기는 속물처럼 느껴졌다. 자기 것을 버리고 스스로 서구화하는 이들이 탈북민과 오버랩 되었다. 하나원을 퇴소한 지 3개월 된 여성이 종편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했을 때 알아보지 못했다. 이들은 빠르게 변신했다. 탈북자임을 숨기기 위해, 때로는 적극적으로 ‘한국인이 되기’ 위해 화장법이나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정착금으로 피부 관리를 받고 성형을 했다. 젊은 친구들 중에는 힙합을 북한 특유의 창법 위에 얹혀서 노래했다.
  이렇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 또한 문제였다. ‘내 먹을 것 내가 먹고, 니 먹을 것 니가 먹는다’는 말을 곧잘 하며 자존심을 부리던 그들이 쉽게 한국인 행세를 하는 모습이 추해보였다. 떠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한국인이 다 된 양 종편에 나와 북한체제를 비난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희화화하는 것을 볼 때마다 역겨웠다. 
  그런데 레비-스트로스는 상파울루가 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시의 퇴락과 황폐에서 오히려 야생성을 느꼈다. 이질적인 것들이 무질서하게 서로 대치하며 공존하고 있는 공간에서 생동감을 느꼈다. 그의 시선이 독특했고 낯설었다. 무엇을 보았길래 야생성을 느꼈는지 좀 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 시절의 유럽과 오늘날의 유럽을 생각해봄으로써, 또 몇 세대를 걸쳐서야 얻어질 걸로 기대해야 할 지적 발달을 지나간 30년 동안에 이루어 놓은 것을 보고서 한 사회가 어떻게 사라지고 태어나는지를’ 알게 되었다. 상파울루는 도시의 생장수장, 즉 순환과정이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게다가 메로빙거 왕조 시대에서 19세기 만국박람회, 20세기 건축양식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즉 상파울루라는 공간에는 서구가 일궈왔던 수십 세기가 압축되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여러 시공간이 중첩되어 있었다.
  여기서 구조주의자로서 그의 시공간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서구는 시간에 초점을 둔 역사학이 대세였다. 시간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동력이며, 공간은 그 변화가 표현되는 물리적인 장일뿐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는 ‘진보’ ‘발전’을 의미했다. 시간의 관점에서 열대는 선사시대쯤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과거이고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보일 것이다. 상파울루가 스스로 서구화하려는 노력은 ‘개발 도상’에 있을 뿐이다.
  이와 달리 레비-스트로스 같은 인류학자는 ‘공간’을 사유한다. 공간은 그 사회의 고유한 가치를 소유하고 있고, 그것을 재현하는 질적인 장이다. 이때 시간은 ‘유동 중에 있는 현재’로서 그 공간을 받쳐주는 물리적 흐름일 뿐이다. 이러한 시공간은 그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구조’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상수로서 그 사회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무의식을 말한다. 그가 공간과 구조에 천착한 것은 시간을 축으로 사유하는 서구의 진보 관점에 균열을 내기 위함이었다. 시간 대신 공간이라는 축을 확 그음으로써 열대를 ‘미개하고 야만적’이라고 평가하는 서구의 편견을 깨부수었다. 그리고 비합리적이라고 치부했던 열대를 ‘야생의 구조’라며 새로이 자리매김했다. 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열대는 열대 나름의 구조가 있고, 서구는 서구 나름의 구조가 있었다. 다만 구조의 차이만 있을 뿐 진보나 미개한 것은 없었다.
  구조주의의 시선으로 보면 상파울루는 ‘발전’한 것이 아니라 ‘변모’하고 있었다. 그것은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다. 물론 서구화로 인한 폐해가 있었을 것이다. 열대의 고유성이 사라진 문화나 퇴폐적이고 타락한 건물들은 자기 변형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히 상파울루가 열대 고유 구조를 버리고 서구 구조에 포섭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다. 상파울루는 열대 아닌 열대였다. 만국박람회장 같아도 그곳은 열대의 기후조건과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열대 구조를 무의식적으로 체득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열대는 서구 구조와 대립하면서 자기변형을 이루어가며 천천히 자기만의 구조를 만들어갔다.  
 
4. 야생의 구조, 그 잡스러움의 비밀지

  레비-스트로스는 본격적으로 원주민 사회를 찾아 브라질 대평원을 가로질러 아마존 가까이 다가갔다. 말과 소떼와 씨름하며 산을 넘었고, 기차와 카누로 강을 건너며 열대 우림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여행과 모험을 싫어한 그에게 이 여행은 혹독했다. 계획은 수시로 변했고 궁핍과 피로감은 쓰리 플러스 원이었다. 산전수전을 겪다보니 나중에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없는 여정이 지루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찐고생’을 하며 드디어 원주민 사회에 당도했다. 
  미개사회는 완전 이질적인 별천지였다. 티바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던 원주민과는 아주 달랐다. 우선 극도의 빈곤 속에 놓여있는 원주민 사회를 보니 당혹스러웠다. 반전은 자기들의 전통에 충실하며, 활발발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삶을 활발발하게 이끄는 전통과 신념은 무엇일까? 
  카두베오족은 이미 서구인들과 빈번하게 접촉했다. 그 탓에 전통과 문화를 많이 잃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안면도식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남아있었다. 이것은 오랜 세월 문명의 접촉에도 변하지 않은 고유함이었다. 그는 밑천을 탈탈 털어서 안면도식을 수집하고, 공들여 분석했다. 그 결과 이원적 구조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야생의 구조’였다.
  이 구조는 보로로족의 둥그런 마을 배치와 계급체계나 장례 풍습(모리)에서도 재현되었다. 벌거벗은 채 땅바닥에 뒹굴며 생활해서 정말로 미개해 보였던 남비콰라족에도 있었다. 서구인에게 한 끼 식사로 족할 음식의 양을 온 가족이 나눠먹는 모습에 있었다. 그리고 특권은 없으면서 가진 것마저 부족원들과 나누고, 무거운 부담과 책임을 때문에 불평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족장체제에도 있었다. 투피-카와이브족에서도 그 구조를 보았다. 사흘 밤에 걸쳐 상연된 ‘자핌새의 소극’이라는 신화 속에 담겨 있었다. 
  문자가 없어서 역사가 없다고 무시당한 그들은 의례, 신화, 종교에 자신들의 고유한 철학과 역사를 새겨두었고, 또 그것을 반복 재현함으로써 야생의 구조를 체현하고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그 문명의 매력에 푹 빠졌다. 야생의 구조에는 모든 생명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타인에 기대어 내가 살아간다는 진리가 새겨져 있었다. 즉 모든 존재는 상보적 관계라는 호혜성의 원리를 실현하고 있었다. 
  원주민 사회는 이 우애의 사상을 제도화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교환-증여시스템이었다. 이것은 여자, 물건, 서비스를 끊임없이 교환하고 증여한다. 흥미로운 것은 자기편이 죽으면 직접 매장하지 않고 상대편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손수 잡은 사냥물이나 밭에서 수확한 채소도 남의 손을 거쳐야 자기가 먹을 수 있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상대편 여자를 취하도록 사회 규범으로 만들어놓았다. 이들은 정말로 호혜성을 사랑했고, 생활 속에서 적극 실천했다. 교환-증여 시스템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타인으로부터 받는 방식으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정의가 담겨있었다. 
  야생의 구조를 실현한 원주민 사회는 겉보기에 매우 복잡해보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심오한 철학이 숨어있었다. 그것은 바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철학이 분명하게 작동하게 된 때가 바로 서구의 출현이 아닐까. 극명하게 드러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사회를 변모시켰다.
  그 결과 원주민 문화는 복잡하고 잡스러워보였다. 차이를 그대로 수용하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들에게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유대감’이 훨씬 중요했다. 타자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느냐, 생명의 힘이 타자와 우리 사이에 순환할 수 있느냐 그것이 중요했다. 동일성에 포획되지 않은 사유!
  그렇다보니 이들에겐 ‘본래’라는 것이 없었다. 족보가 없는 것이다. 대신 현재만 있을 뿐이다. 지금의 현장에 충실할 뿐이었다. 레비-스트로스가 카두베오족에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안면도식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은 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시절인연에 따라 부딪힌 현장에 따라 자기 문화를 변형시켜왔을 뿐이었다. 대신 이웃과 자연환경에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였을까?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원시상태의 끝까지 열광적으로 답파하며 돌아다닌 끝에 공허함이 몰려들었다. 열대를 ‘임간학교’라고 부르며 많은 것을 배웠던 여행의 말미에 허무감에 빠졌다. ‘나의’ 원주민은 너무 미개했고, 그들에게서 수집한 자료는 너무 미미해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들은 이미 놓쳐버렸고, 그의 모든 노력도 그 본질의 표면을 긁는 것밖에는 안되었다.’ 열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은 광기 어린 행동 같았다. 열대는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져갔고 대신 서구가 마음 속에 떠올랐다. 

5. 열대를 품은 서구인

  낯선 세계의 모험은 다시 서구 세계를 맞닥뜨리게 했다.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 야생의 구조를 맞닥뜨리자 갑자기 떠올랐다. 인디언들의 형벌제도를 연구하며 서구의 형벌제도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깨달았다. 인디언들은 죄인의 모든 소유물을 파괴하는 형벌을 내리지만 결코 사회적 유대관계는 끊지 않았다. 그런데 서구는 사형이나 신체를 절단시키지 않은 대신 감옥에 가두는 것을 인도적이라고 착각했다. 인디언들에게 죄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비인간적인 형벌이었다. 야생의 구조와 비교하니 서구 구조가 뚜렷이 보였다. 
  열대에서 만난 서구는 동시에 레비-스트로스의 것이기도 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몸으로 체득한 구조였다. 이것은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구조로 이루어져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만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사회와 그 사회에 하나의 로봇으로서 봉사하는 나의 내체 간의 투쟁에 끊임없이 관여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고향을 떠났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머나먼 열대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그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서구 구조의 영향 속에 있었다. 낯선 열대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자기사회의 구조가 보였다. 그 사회 구조 안에 위치한 자기가 보였다. 
  그럼, 레비-스트로스가 서구로 돌아가면 여느 서구인처럼 서구 우월주의에 빠져 열대를 연구하게 될까? 아니면 열대의 명예회복을 위해 원주민을 무조건 예찬하며 귀국보고회를 할까? 둘 다 아니다. 모두 열대를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두 세계 사이를 표류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열대 속에서 서구 구조를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열대를 품은 서구인으로서 자기사회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결코 자기사회를 벗어나 살 수 없다. 하지만 그 사회를 변형시킬 수는 있다. 자기사회의 구조를 분명히 인식해야 우리는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는 열대에서 온몸으로 생고생을 해가며 서구 구조를 인식했으니 우월감으로 가득 찬 자기만의 공간에서 빠져나와 이질적인 관계의 장으로 나갈 것이다. ‘타인은 감옥이다’라는 외침 대신 타자와 접속하고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하며 살 것이다.

IV. 브리콜라주의 삶

탈북민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생명력에 놀랐다. 난 그들을 타잔이라고 불렀다. 어린 아이가 그 높은 하나원 담을 넘어 건넌 마을에 마실 다녀와서 우리를 경악케 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하나원이라는 닫힌 공간에서도 옷이며 생필품들이랑 달러를 장사하면서 자신들의 필요를 스스로 충당하고 있었다. 
  그 생존력이 궁금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그 삶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었다. 제멋대로이고 엉망진창이고, 엉뚱하고 삐뚤빼뚤했다. ‘이건 뭐지? 얘들은 자기 인생에 책임감이 있는 거야? 언제까지 방황할 거야? 이제는 자립해야하지 않나?’ 별의별 욕이 다 튀어나왔다. ‘그래, 탈북민을 도와주는 건 콩나물시루에 물 붓기야. 보람이 없어.’ 그러고 뒤돌아섰다. 그들을 도와주겠다는 독지가들도 막아 세웠다. 
  그렇게 복잡하고 잡스럽게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정 지었다. 더 이상 그들을 위해 고민하고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고 마음을 닫은 순간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인색해지고 피폐해진 상태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그랬다. 단단히 병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검진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흐르는 게 본성인데 그걸 막았으니 내 몸이 아플 수밖에. 
  난 그 병을 ‘잡종 트라우마’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생명이 빚어낸 잡스러움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데서 생긴 병이었다. 생명은 현재의 과제와 난관에 부딪히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든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호적이지 않은 현재 조건에서 삶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삶이 택한 생존방식은 ‘브리콜라주’였다. 브리콜라주는 원주민이 주어진 조건 하에서 빈약한 재료를 가지고 최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돌, 나무, 뼈들을 가지고 삶에 유용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난 그렇게 얻은 결과물이 후져보였고, 촌스러워보였다.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작품은 가치가 없고, 오리지널이 아니고 야매 같았다. 난 브리콜뢰르의 작품 속에 담겨 있는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했다. 그 맥락을 놓친 순간, 탈북자들과의 관계도 단절되었고 내 몸도 불통의 신체가 되어버렸다. 잡종으로 사는 삶을 거부한 순간 생명력을 잃었다. 그랬다. 생명은 잡종이다. 그것이 생명의 본류였다. 이것이 레비스트로스와 탈북민이 내게 가르쳐 준 생명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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