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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몸=우주=정치는 하나다
 글쓴이 : 박장금 | 작성일 : 20-01-25 12:01
조회 : 202  

=우주=정치는 하나다

 

                                                                                                                   박장금 (금요 대중지성)

   

 

. 리셋! 소유에서 소통으로  

. 제국 팽창의 욕망에서 몸과 우주의 비전으로!

   1. 황노학이 탄생하기까지

   2. 황로 정치의 힘, 도덕적 자기 수양

   3. 몸과 우주 통치술의 부활   

. =우주=정치는 하나다

   1. 모두가 길을 잃은 시대

    2. 이익 추구 정치, 탐욕스러운 백성

   3. 무위, 우주적 공감 회복의 길

   4. 열심히! 아니고 때에 맞게!

   5. 몸과 삶의 재발견

 

 

. 리셋! 소유에서 소통으로

 

  나는 회사를 다닐 때 살아남기 위해 달렸다. 잘 살기 위해 열심히 달렸건만 몸과 마음은 갈수록 망가졌다. 멈추고 휴식을 하고자 공부의 장에 접속했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사회가 주입한대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잘 사는 법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그냥 달렸음을 의미한다. 난 자율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속에서 회사생활을 했다.

  잘 생각해 보자. 열심히 돈을 벌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맛있는 거 먹고, 큰 아파트에 살고, 명품을 입고, 외제차를 타고 등등. 더 많은 쾌락을 위해 상품을 사야 한다. 소비 행위는 쾌락 뿐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까지 결정해 버린다. 예컨대 티코와 벤츠는 얼마나 비교 대상이 되었던가. 티코를 구매한 자는 암암리에 열등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소비가 장려되는 것은 경제 성장과 관계가 깊다. 진나라가 팽창한 것처럼 시장은 계속 팽창되어야 하니까. 그것을 위해 과잉 생산과 과소비는 계속 맞물려 돌아간다. 여기에 인간은 없다. 오직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그 이익으로 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돈의 노예만 있을 뿐이다.

  성공한 자들 중에 사이코패스가 많다는 보고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사이코 패쓰하면 사회 부적응자일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일도 잘하고, 리더쉽, 리스크 관리력, 설득력 등 겉으로는 능력자이다. 그렇다면 사이코 패쓰와 능력자의 경계는 무엇일까. 공감을 하지 못한다. 오직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서 난 자유로울까. 이익을 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모든 것은 자기 책임이라는 의식을 나도 모르게 그것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신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난 적어도 나쁜 짓은 하지 않았으니 괜찮은 사람이고, 성공은 못했지만 직장인으로 평범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무의식에는 남을 이겨야 산다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은 상관없다는 사이코 패스적인 검은 마음도 함께 자랐던 것이다. ’열심히 산다는 세상을 위기로 인식해서 남 보다 빨리 달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라는 명령이었던 것!

  정말 충격이었다. 나의 무지가! 벗어나고 싶은 방법을 알고 싶었다. 자유롭기 위해! 그런 마음으로 연구실에 접속한지 10년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다른 문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권력 지향적이다. 오만하다. 몸을 돌보지 않는다.” 등의 평가가 그것이다. 특히 '권력 지향적'이란 평가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정치판도 아닌 공부의 장에서 무슨 권력? 난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해도 변명 밖에 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산책과 주역 암기를 열심히 했다. 평소와 달리 몸이 순환되자 신기하게도 나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많이 공부할수록 좋고, 많은 사람이 나에게 동의할수록 좋아하는 나. 돈을 벌 때와 아이템만 바뀌었지 패턴은 그대로였다. 이런 상태는 병증으로도 드러났는데 평소에는 오버하다가 갑자기 퓨즈가 끊기듯 위가 멈춰 체하기 일쑤였다. 폭주하거나 스톱하거나 속도 조절이 안 되는 고장난 기계! 이것이 나의 몸, 마음, 삶의 상태였고, 이런 상태가 권력 지향적이란 평가로 드러났던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끙끙거리던 중 몸과 우주의 비전이 담긴 통치서 회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통치술이 몸과 우주와 만나다니! 신자유주의가 무의식까지 파고든 암흑천지에서 한줄기 빛을 만난 느낌이었다. 회남자가 쓰인 한나라는 우리 시대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였다. 회남자는 이미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고, 오만과 사치로 흐르는 게 인간의 속성임을 간파했다. 소유는 더 많은 소유를 원하게 되고, 그것은 곧 패망으로 가는 길이다.

  회남자의 해법은 사실 간단한다. 이 소유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 인간은 쾌락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연 순환에 동참하기 위해 태어났음을 사무치게 깨달아야 한다. 개체인 나에서 우주로 시선이 완전히 바뀔 때 소유가 아닌 생명의 삶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뇌 속을 리셋하지 않고는 좋은 삶은 불가능하다.

  하여 회남자에는 천문, 지리, 생물학 등 자연의 원리를 체득하기 위한 동양의 사유가 집대성되어 있다. 거창해 보이지만 나를 둘러싼 관계와 시공간의 모든 사건과 나의 공존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소통의 출발점은 몸이다. 몸에 기와 혈이 돌듯 모든 것은 접속하고 변이한다. 몸이 소통하고, 타자와 관계 맺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하나의 원리인 것이다. 회남자의 지성 훈련 코스를 거치고 나면 생명의 원리는 소유가 아니라 '소통'임을 사무치게 느끼게 된다. 이 때 황제는 천하의 권력을 소유하는 자가 아니라 천하를 소통시키는 소통 제일'인 자가 된다.

  아 우리 시대의 배움과는 너무나 다르다. 공부는 성적이며 성공을 위한 투자가 아니던가. 지성인을 기른다지만 알고 보면 안정적이고 수익률 좋은 블루칩이 되는 게 목표다. 당연히 경쟁을 뚫고 얻은 돈과 명예는 자기 소유로 생각한다. 권력자들은 국민을 위해 일한다지만 누가 그 말을 그대로 믿을까.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속고 속일 뿐! 더 황당한 것은 블루칩의 말로이다. 죽기 살기로 도달한 곳은 온갖 비리, 마약, 성범죄가 기다리고 있다.

  나 또한 심신이 아프고 삶이 망가지면서도 의심하지 않았다. 물질 분배가 정치이고, 다다익선이 잘 사는 거라고. 또한 돈의 장을 떠나 공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 도식에 매여 있었다. 소유욕은 무서울 정도로 곳곳에 편재해 있다. 일상에 들러붙은 무지와 탐욕을 보지 않는 한 타자와의 소통은 물론 자신과도 소통되지 않는다. 몸이 아프고 관계가 불통이면 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 생명답게 살기 위해리셋이다. 소유에서 소통으로!

 

. 제국 팽창의 욕망에서 몸과 우주의 비전으로!

 

  『회남자, 회남 지역의 제후, 유안이 지은 저술이다. 유안은 한나라가 최고로 번성했던 무제 시대를 살았고, 한고조 유방의 손자로 삼대가 모두 모반에 연루되어 자살한 집안의 자손이기도 하다. 비운의 집안으로 안타까워하기에는 그의 이력은 참으로 다채롭다. 그는 회남 지역의 왕이었고 당시 방술가로 대변되는 지식인 그룹을 보유한 총책임이자 수석 문장가였다. 그리고 갈홍이 지은 신선전에 등재될 만큼 중국 대표 신선이고, 우리가 즐겨 먹는 두부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의 종횡무진 행보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지만 굳이 정리하자면 지식인 그룹을 이끌면서 글을 쓰고, 신선이 되고자 했던 왕. 그가 쓴 회남자에는 신선의 비전이 담긴 통치술, 황로학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황로학? 우리는 보통 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한 방술 정도로 생각하지만, 중국의 자부심 한나라의 정치 비전이었다. 보통 유학을 중국 사상의 중심축으로 알고 있지만 그 심층에는 황로학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하여 회남자와 만나려면 황로학의 출현부터 이해해야 한다.

 

1. 황노학이 탄생하기까지

 

중국은 통일되기까지 물고 뜯는 전쟁의 역사였다. 축의 시대를 쓴 카렌 암스트롱에 따르면 사람들은 끝도 없는 싸움에 몰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요순시절 같은 통일된 중국을 만들어낼 만한 강한 통치자를 갈망했다. 평화를 향한 갈망이 어디서나 뚜렷하게 느껴졌다.” 통일은 권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으로 위험한 게임이었지만 중국 백성들은 평화를 위해 통일을 욕망했다. 백성들의 갈망 덕분에 기원전 221, 춘추전국시대(BC 770~ 220)를 지나 전쟁이 종식되고. 진나라에 의해 통일이 되었지만 14년 만에 멸망한다. 진나라는 부국강병을 위해 법가를 정치 이념으로 삼아 백성들을 전쟁을 향해 달려가는 능률적인 전투 기계로 만들었다. 법가의 창시자 상앙은 능력 제일주의를 표방했다. 법가 입장에서 보면 유학의 예 또한 번거로운 격식으로 경쟁에서 밀리는 무용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제국은 유학을 버릴 수는 없었다. 유가의 정치는 하늘의 명을 시행하는 것으로 공자님 덕분에 정치가 영적 행위로 격상되면서 통치자가 천하를 지배할 수 있는 명분을 주었다. 대신 유학은 통치자에게 인의의 실천을 요구했지만, 왕의 자질에 따라 인의는 외면한 채 땅 따먹기에 열중하는 왕이 등장했다. 법가와 다름없이 백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졌고 작은 국가들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소국 중심으로 등장한 게 노자이다. 노자는 인의를 내세워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유가를 비판하면서, 제발 세상의 근원을 탐구해서 도와 하나가 되라고 요청한다. 자연에서 영원한 것은 없고, 흥망도 번갈아 옴을 깨달은 왕은 영토 확장이 살 길이 아니라 소멸로 가는 길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듯 노자는 자연의 이치를 통치술로 가져와서 지배자들의 탐욕을 멈추게 만들었다.

 

2. 황로 정치의 힘, 도덕적 자기 수양

 

  제자백가의 피 튀기는 실험을 거치면서 한고조 유방(BC 247~195)은 통일에 성공한다. 한나라는 진나라에 이어 두 번째 제국이 되었지만 통일의 기쁨 보다는 수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제국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 절실한 질문 속에서 탄생한 통치술이 황로학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의 실험장이었고 황로학은 그 경험을 종합한 통치학이기도 하다. 예컨대 법가로 인해 진나라는 망했지만, 제국을 운영하려면 능률적인 법가 없이는 제국 통치가 불가능했다. 법가만 그런가. 제국 유지는 하나의 사상에 의존할 수 없었다. 결국 제자백가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용법이 중시 되면서 여러 사상이 믹스된 통치학이 요청된 것이다. 황로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제자백가 중 노자와 당시 신화적 존재인 황제가 강하게 결합했다. 무력으로 통일한 제국 유지를 위해 부드럽고 약하고 유연해야 한다는 무위를 통치원리로 삼는 모순된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언뜻 보면 이상적으로 보이는 황로학이 현실에서 적용될까 싶지만 한나라 문경제는 무위지치를 멋지게 실현한다. 무위 정치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 같지만 영토 확장의 욕망을 도덕적 수양으로 방향을 틀어야 가능하다. 실제로 문경제는 자애로움, 검소함, 천하를 위해 나서지 않음을 철저하게 실천했다. 문제의 경우 저고리 하나를 20년간 입었고, 형벌과 조세를 가볍게 했다. 그렇게 30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안정되었고 풍속이 바뀌었다. 솔직히 업적 면에서 보면 문경제가 한 일은 별 게 없다. 하지만 이 행위 안에 담긴 정치적 의미와 윤리적 가치를 읽어내야 무위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문경제는 무위야 말로 백성을 살리는 정치임을 확신했고 무위의 비전을 온 몸으로 체득고자 스스로 수행자 되기를 멈추지 않았다.

 

3. 자연 과학의 발전과 성인 만들기

 

  문경제의 무위 정치 덕분에 전쟁으로 피폐한 백성들은 원기를 회복하였고, 무제는 나라가 안정되자 문경제와 달리 제도와 문물에 대한 정비를 해야 했다. 행정을 관리하기 위해 유자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황로학이 뒤로 밀렸다. 유학은 양날의 칼이다. 무제는 유학의 인의를 내세웠지만 수행보다는 인의를 명분 삼아 부국강병을 추구했다. 백성들조차 원기를 회복하자 오만과 사치로 흘렀다.

  이때 회남왕 유안은 진나라 멸망의 징후를 감지했다. 유안은 지방 제후로 중앙집권화가 가속화되면 제후국은 소멸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유안의 대책은 참으로 흥미롭다. 보통은 전투력 강화에 주력할 것 같은데 천하의 지식인들을 불러 모아 스스로가 총감독이 되어 제자백가의 학설은 물론 천문, 지리, 역법, 수리, 기술 등의 성과들을 집대성한다.

 

“(중략) 천지의 이치가 다 연구되고 인간의 일들이 다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왕의 도가 모두 갖추어졌다. (중략) 지금 대부분 배우는 사람들은 성인의 바탕이 없는데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평생 혼돈 속에서 헤매면서 환히 밝은 도를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천시, 인사, 제왕의 도를 회남자에 담았으니 보통 자질의 인간도 배우고 실천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이 자부심은 그 당시 자연철학의 폭발적인 발전과 관계가 깊다. 태양의 흑점 관측, 역사에 일시 기록, 위치와 거리가 정확한 바둑판식 지도 제작, 나침판, 자석 기술. 의학 등, 과학이 발전했지만 지금 시대와 다른 점은 그 것이 인간의 윤리와 같이 간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석의 밀고 당기는 관찰을 통해 사물들 사이에 흐르는 자기장의 세계를 감지한다. 이런 원리에 대한 자각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겼던 인식을 깨고 사물 또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서로 감응하는 거대한 장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음을 알게 된다. 이것을 회남자에서는 자득(自得)’으로 표현하는데 마음의 작용을 자기장과 다르지 않게 보았다. 그것은 몸과 분리된 정신활동이 아니다. 심신을 아우르는 마음은 정, , 형으로 세분화되어 오장육부를 윤택하게 하고 사지를 움직이게 하고 피와 기운을 돌게 하는 매커니즘과 연결된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그토록 원하는 쾌락과 부귀 등은 생명을 위협하는 활동으로 전락한다. 쾌락을 위한 성행위는 생성하는 자연에 위배되는 것으로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기혈을 막히게 해서 오장을 병들게 한다. 쾌락만 그런가. 힘의 증식인 권력은 자연의 원리를 역행하는 것으로 개인의 몸과 삶뿐 아니라 백성과 국가까지 병들게 만든다. 유안은 자연의 이치 탐구를 통해 인간을 개별자에서 우주적 존재로 이해하는 정신혁명이야말로 인간이 부국강병을 위한 전쟁 기계로 소모되지 않고 생명을 보존하는 몸, 관계, 통치의 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겼던 것이다. 이것이 유안이 추구한 절대 자유의 경지로 대변되는 신선의 세계이기도 하다.

 

4. 몸과 우주 통치술의 부활

 

  유안은 드디어 회남자를 완성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제에게 받쳤다. 무제의 제국 팽창 욕망을 회남자의 몸과 우주의 비전으로 그 방향을 틀 수 있는 역전의 순간이 아니던가. 아쉽게도 무제는 유안의 기대와 달리 부국강병의 욕망을 끝내 접지 못했고, 유안은 모반의 주동자로 낙인 찍혀 자살하고 회남자는 실패와 좌절의 텍스트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의 비전은 폐기되어야 할까. 앞서 문경지치에서 보았듯 황로학은 매뉴얼적인 통치술이 아니라 스스로 우주의 자기장 속으로 녹아드는, 도덕적 수행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치술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본질에 대한 질문, ‘Who am I’?에서 출발한다. 회남자 첫 챕터 원도는 유한한 몸을 끝도 없는 존재로 확장한다. 내 안의 우주적 생명성과 조우하면서 더 이상 소유가 무용해지는 경지를 터득하게 만든다. 그것은 주체의 해체이자 인간 스스로 우주가 되는 체험이다. 유안의 표현에 따르면 오장을 윤택하게 하고 피부를 촉촉이 적시면서 그 법칙을 몸에 체득하여 평생을 함께하면, 온갖 일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고 온갖 변화에 두루 통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손바닥 안에 구슬을 가지고 놀 듯 스스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유안은 드디어 회남자를 완성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제에게 받쳤다. 무제의 제국 팽창 욕망을 회남자의 몸과 우주의 비전으로 그 방향을 틀 수 있는 역전의 순간이 아니던가. 아쉽게도 무제는 유안의 기대와 달리 부국강병의 욕망을 끝내 접지 못했고, 유안은 모반의 주동자로 낙인 찍혀 자살하고 회남자는 실패와 좌절의 텍스트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의 비전은 폐기되어야 할까.

 앞서 문경지치에서 보았듯 황로학은 매뉴얼적인 통치술이 아니라 스스로 우주의 자기장 속으로 녹아드는, 도덕적 수행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치술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본질에 대한 질문, ‘Who am I’?에서 출발한다. 회남자 첫 챕터 원도는 유한한 몸을 끝도 없는 존재로 확장한다. 내 안의 우주적 생명성과 조우하면서 더 이상 소유가 무용해지는 경지를 터득하게 만든다. 그것은 주체의 해체이자 인간 스스로 우주가 되는 체험이다. 유안의 표현에 따르면 오장을 윤택하게 하고 피부를 촉촉이 적시면서 그 법칙을 몸에 체득하여 평생을 함께하면, 온갖 일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고 온갖 변화에 두루 통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손바닥 안에 구슬을 가지고 놀 듯 스스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부국강병을 위해 백성을 전쟁 기계로 만드는 당시의 욕망은 경제 성장을 위해 국민을 노동과 생산의 현장으로 내모는 우리 시대와 너무나 닮아 있다. 또한 우리 시대의 정치는 어떤가.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자본 증식의 욕망은 다르지 않다. 물질 분배를 정치로 여기고 그것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대중은 화폐와 상품이 주는 쾌락을 향해 돌진하여 자기 몸과 삶을 기어코 망친다. 전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중독, 묻지마 살인, 마약, 폭력, 강간, 성 접대, 횡령, 돈세탁 등이 난무한다. 이것은 인간이 악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시선으로 세상과 만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왜 그 원리를 통치와 삶에 적용하지 않는가.

  회남자는 통치자의 책이지만 나에게도 유효하다. 나도 내 몸과 삶의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자연의 원리 탐구를 통해 고립된 신체가 우주적 신체가 되는 길. 그때 나의 일상은 우주의 흐름으로 충만해지면서 실천의 길이 열린다. 이천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물질의 분배 외에 어떤 비전도 부재한 채,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그래서 다시 황로학이다. 유안이 꿈꾸던 몸과 우주의 비전을 다시 실험할 때가 온 것이다.

 

. =우주=정치는 하나다

 

1. 모두가 길을 잃은 시대

  회사를 다닐 때가 생각난다. 이익, 이익 아 난 그것을 위해 계속 회의하고 일하고 피 말리는 그 과정이 정말 싫었다. 그 조건에서 나를 긍정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성과를 못 내면 불안하고 내도 불안했다. 간신히 버티는 것은 오직 월급 뿐! 다른 출구가 없으니 오직 휴일을 기다린다. 불안을 잊기 위해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먹방 순례를 하고 여행을 간다. 아무튼 난 오감 충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돈을 썼다. 그리고 달콤한 휴일이 끝나면 지옥 가는 심정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난 검증된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배웠다. 남들 하는 대로 학교도, 결혼도, 직장 등등 끝없는 레이스. 언젠가는 행복할 거라 믿으며. 40이 됐을 때 몸이 망가지면서 뻥임을 눈치 챘다. 회사에 이익을 내는 댓가로 월급을 받고 그것으로 쾌락을 얻는 구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먹고 살기 위해 달려온 세대라 이 규칙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물질적인 부가 증식되고 사회 복지 제도만 확립되면 천국이 펼쳐질 거라는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 배고프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맹렬히 달리는 조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존 방식대로 산다. 그 정점에 오른 삶을 보면 참혹하다. 연예인이 마약에 중독되는 것은 기본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성과 돈 문제로 무너진다. 이들은 꿈을 이뤘고, 최고의 스펙과 학벌을 자랑하고, 심지어 금수저까지.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도 기존 공식대로 살면 모두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행진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삶일까.


2. 이익 추구 정치, 탐욕스러운 백성

 

회남자에는 우리 시대와 비슷한 세상이 등장한다.

 

어지러운 세상의 법은 이렇다. 도달하기 힘든 높은 표준을 설정해 놓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벌주고,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임무를 부여해 놓고 그것을 완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며, 수행하기 힘든 위태로운 일을 정해 놓고 그것을 용감히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 죽인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고통에 시달리게 되면 백성들은 잔꾀를 부려 윗사람을 속이고,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까지 괴로움을 면하려고 든다. 그러므로 아무리 법이 가혹하고 형벌이 엄해도 세상의 간사함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제속, 회남자1, 소명출판, 661, 662)

  ‘어지러운 세상은 당시 법가를 정치 이념으로 삼은 진나라의 리얼 풍경이다. 진시황은 더 많은 땅, 부국강병을 목표로 정치를 펼쳤다. 통일이라는 목표가 정해졌으니 백성의 삶은 무시되고 수량과 속도가 중시된다. 승리를 위한 능력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배제된다. 하여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벌을 주고, 임무를 완수 못하면 처벌하고, 심지어 행하지 못하면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난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무조건 노력하면 된다거나 꿈을 가지라고 외치는 우리 시대가 오버랩 되었다.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아이돌이 아닌가 싶다. ‘프로듀스 101’만 해도 조작으로 문제가 됐지만 무한 경쟁을 시키고 탈락되면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스타가 되어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바로 추락. 연예인만 그런가. 성공을 위해 달린 그들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실패자라는 오명 뿐! 아 이것이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의 맨 얼굴인 것이다.

  진나라는 근대문명에서 출발하여 극단에 이른 신자유주의를 연상시킨다. 진나라가 오직 통일을 위해 달려갔다면 신자유주의는 화폐 증식을 위해 달려간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 경제 불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축출하고 오직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모든 것을 맡겨 경쟁을 추구하는 경쟁질서이다. 예컨대 이익을 빼 먹을 수 있는 나라에 가서 저가 비용으로 제조한 후 더 유리한 조건이 생기면 바로 튄다. 우리도 이제 다국적기업이란 말이 낯설지가 않다. 진나라의 환생인가 싶을 정도로 세상은 돈으로 통합되는 중이다. 이 레이스에 들어가면 이익 외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또한 착각한다. 경제적 분배를 잘 하면 좋은 정치라고. 매년 경제 성장률로 평가하는 걸 의심한 적이 있었던가.

  경제가 성장하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데 무슨 문제냐고 질문할 수 있다. 맞다. 경제 성장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경제만 특화될 때 문제가 생긴다. 유안은 이익을 목표로 한 정치를 하면 단순히 경제 질서나 정책 기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선에 의해 교화할 수 없는 탐욕스러운 개인이 배출된다고 지적한다.

 

()나라의 풍속은 탐욕스럽고 사나웠으며 의리보다는 이익을 추구하였다. 때문에 형벌에 의해 위협할 수는 있지만 선()에 의해 교화시킬 수는 없었고, 상에 의해 권장할 수는 있어도 명예에 의해 힘쓰게 할 수는 없었다.”

 

  정치가 이익을 향하게 되면 백성들을 선으로 교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이익을 탐하는 백성을 양산하게 된다는 것. 이처럼 정치적 비전과 개인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무릇 물이 흐리면 물고기가 자주 입을 벌름거리듯이, 정치가 가혹하면 백성이 어지러워진다. 호랑이 표범 물소 코끼리 등을 사육하는 사람은 이들을 우리에 가두고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제공하고 배고픔과 배부름을 적절하게 조절해 주며 그들이 성내는 행위를 피한다. 그러나 이렇게 배려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형체가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기교가 많으면 아래에서도 속임수가 많아지고, 위에서 일을 많이 벌이면 아래에서는 시늉만 늘어나며, 위에서 어지러우면 아래에서는 안정이 되지 않고, 위에서 요구 사항이 많으면 아래에서는 서로 다투게 된다. 그러므로 근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서 말단에만 힘쓰면, 마치 흙덩어리를 던지면서 먼지가 그치기를 바라고 땔감을 안고서 불을 끄려는 행위와 같다.” (주술, 회남자1, 소명출판, 471)

 

  선한 백성, 악한 백성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치가 가혹하면 백성은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를 우리 시대에 적용해 보자.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자유주는 경쟁을 삶의 논리로 내면화된 개인을 양산한다. 그렇다. 나도 회사를 다닐 때 얼마나 자기계발에 목을 매었던가. 당장 경제적 어려움이 닥친 것도 아니었건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아 불안했다. 겉만 보면 열심히 사는 듯 보이지만 그 화력의 동력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경쟁심. 그리고 이 모든 스트레스를 소비를 통해 풀려고 한다. 아무튼 유안은 정치가 승리한 자,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자를 부추기한 개인의 삶은 여기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상이 잘 다스려지면 어리석은 자 혼자 세상을 어지럽힐 수 없고, (반대로) 세상이 어지러우면 지혜로운 자 혼자 세상을 바르게 만들 수 없다.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을 한탄한다면, 이는 마치 천리마의 두 다리를 묶어 놓고서 천 리를 달려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또한) 원숭이를 우리에 가두어두면 돼지와 별 다름이 없는데, 그것은 원숭이가 민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는) 그 재주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농사짓고 도자기 굽던 시절에는 자신이 살던 마을 하나도 이롭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그의 덕이 온 천하에 베풀어졌다. 이는 그의 어짊이 더욱 성숙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지위가 형세와 덕을 베풀기에 편리해졌기 때문이다.” (숙진, 회남자1, 소명출판, 158)

 

 그러니 내가 아무리 잘 사려고 해도 정치적 비전이 바뀌지 않는 한 혼탁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무위 정치인 것이다.

 

3. 무위, 우주적 공감 회복의 길

 

오직 음양조화의 이치를 통달하고 자연계의 감응현상을 파악한 사람만이 나라를 온전히 다스리고 유지할 수 있다.”(남명, 회남자1, 소명출판, 358)

하물며 천지를 집으로 삼고 만물을 가슴에 품으며, 조물주를 친구로 삼고 내면에는 지극한 화기(和氣)를 머금으며, 단지 사람의 형체를 빌리고 있을 뿐 무수한 현상 속에서 핵심을 꿰뚫어 보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까지 알며, 일찍이 마음이 죽은 적이 없는 사람은 어떠하겠는가!”(남명, 회남자1, 소명출판, 350)

 

  무위 정치를 한마디로 말하면 자연 운행의 이치를 지도로 삼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무위를 이해하려면 동양의 독특한 자연관인 도를 알아야 한다. 회남자 역시 원도로 시작한다. 도란 만물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이 세계를 생성시키는 활동이다. 도는 일음일양, 한 번 낮이 되면 한 번 밤 되는 시공간의 율동이다. 이 세계는 현대 과학이 밝혀낸 파동 모델에 가깝다. 모든 만물은 기라는 에너지 장에서 출렁이는 파동이다. 이 세계에서는 같은 기끼리 감응하고 공명한다. 이것은 인과론이 아니다. 낮이 밤의 원인이 아니듯 밤도 낮의 원인이 아니다. 낮이 오고 밤이 오듯, 한 번 숨을 들이쉬면 숨을 내 쉬듯 세상은 그렇게 율동할 뿐이다.

  당시 중국은 자석을 만들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 힘들이 잡아당기고 밀어내는 자기장 원리를 발견했다. 달과 바다의 조수간만의 영향력 등 중국은 우주공간의 장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흐름에 주목하여, 우주 운행이나 자연의 작용을 보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위, 자연과 우주의 이치인 도를 따르는 정치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이제 보이지 않는 장으로 연결된 세계는 장벽 없이 이질적인 것들이 종횡무진 연결된다.

하나의 실마리로부터 출발하여 무한대로 흩어져 우주 구석구석을 두루 돌다가 다시 하나로 모아지는 것, 이것을 가리켜 마음이라 한다. 근본을 보면 말단을 알고, 가리키는 바를 보면 궁극적인 종착지를 알며, 하나를 잡으면 만 가지에 적절히 대응하고, 핵심을 파악하면 구체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것, 이것을 ’()이라 한다. 머물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고, 갈 때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며, 일을 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움직일 때는 무엇에 근거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이것을 ’()라고 한다.” (주술, 회남자1, 소명출판, 484)

 

  이들도 우리 시대의 과학처럼 자연 관찰에서 시작했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달랐다. 도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현대 과학은 우주를 탐구해도 정복의 대상일 뿐이지만, 도의 세계에서는 우주를 사유하는 순간 자아가 해체되면서 곧바로 마음과 연결된다. 우주가 마음이고, 이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면 ()’이 되고 이것은 곧 바로 ()’로 연결되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시공간의 장이 열린다.

 

나는 살아 있을 때는 7척 정도의 형체로 존재하고, 죽으면 한 개의 관에 담긴 흙으로 존재한다. 나는 살아 있을 때는 형체를 지닌 일반 사물과 같지만, 죽으면 한낱 무형의 사물로 사라진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있다고 해서 사물이 더 늘어나는 게 아니고, 죽는다고 해서 흙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알겠는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들 중 어느 것이 나를 이롭게 하고 해롭게 하는지를.”(정신, 회남자1, 소명출판, 394)

 

무릇 천지자연은 형체를 줌으로써 나를 생겨나게 하고, 삶을 줌으로써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을 줌으로써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줌으로써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나의 삶이 좋은 것이라면, 나의 죽음 또한 좋은 것이다.”(숙진, 회남자1, 소명출판, 115)

 

  도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세계로 인간과 사물의 경계는 물론이고, 생사를 가뿐히 넘고, 요순시대조차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다. 무위 정치란 우주적 공감 속에서 생명의 흐름을 타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하여 내 것만 챙기는 소유욕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탈 영토화의 경지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4. 열심히! 아니고 때에 맞게!

 

  도대체 무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위의 통치자이자 치수의 아이콘 우임금의 사례로 접근해 보자. 우는 치수를 위해 정강이 털이 다 빠질 정도의 워크 홀릭 왕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정말 워크 홀릭이었을까.

 

()는 시간을 다퉈 바삐 움직이면서 신발이 벗겨져도 줍지 않았고 관이 나무에 걸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남보다 앞서고자 애썼기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때를 얻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원도, 회남자1, 소명출판, 81)

 

  우가 도랑을 낸 것은 사대 강 사업과는 다르다. 물의 본성을 돕기 위함이다. 여기서 차이가 나는 지점은 에 있다. ”때의 변화는 매우 빠르기에 잠시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앞서면 너무 지나쳐 가게 되고, 뒤서면 따라잡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무릇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세월은 흐르는데, 때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한 자 길이의 보옥보다 일 초의 시간을 더 귀하게 여긴다. 때는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기 때문이다.“ (원도, 회남자1, 소명출판, 81) 그렇다. 우임금은 자신을 태양과 달과 같은 존재로 설정했다. 그가 바쁘게 움직인 것은 도의 세계가 율동하듯 그 흐름에 따라 행하기 위함이지 이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무릇 한 시대의 변화에 의해 모든 시대의 변화와 시세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은, 마치 겨울에 베옷을 입고 여름에 가죽옷을 입는 것과 같다. 무릇 하나의 과녁으로는 백 발의 화살을 다 받아 낼 수 없고, 한 벌의 옷으로는 한 해를 다 지낼 수 없다. 과녁은 반드시 높고 낮은 것에 다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옷은 반드시 추위와 더위에 모두 적합해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이 달라지면 일도 변해야 하고, 시대가 바뀌면 풍속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세상의 상황을 고려해서 법을 세우고, 시대에 맞추어서 일을 실행한다. 상고(上古) 시대의 왕들 가운데 태산(泰山)에서 봉()제사를 지내고 양보(梁父)에서 선()제사를 지낸 이가 70여 성현이나 되었지만 그들의 법도는 서로 달랐다. 이는 그들이 힘쓴 바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세상이 달랐기 때문이다.“(제속, 회남자1, 소명출판, 643~644)

 

  때를 읽는 자는 변화를 아는 자이다. 사계절은 시시각각 변하고, 생명은 변화에 맞게 모드를 전환한다. 아무리 베옷이 좋은들 겨울에 입을 수 없고, 가죽옷이 따듯하지만 여름에는 무용하다. 오직 자연의 변화를 읽어내듯, 시대마다 변화를 읽어내면서 다른 삶의 양식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변화!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대가 있을까. 기술은 발전해서 이제 인터넷을 넘어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삶을 통째로 변화시켰다. 정보도 쉽게, 상품도, 쾌락도, 영성도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모든 것과 접속할 수 있고,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 시대 조건이다. 하지만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를 괴로워하면서 스트레스를 자초한다. 여기서 빠져 나오기는 쉽지 않다.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이익 우선주의가 소비의 이름으로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광고가 소비하지 않고는 행복은 없다고 끊임없이 주입하지 않는가. 오감을 충족해 줄 상품을 구매할 때 뇌 내 보상체계를 자극시킨다. 상품에 중독된 삶이 우리를 지배하는 세상인 것이다. 경제성장이 비전인 시대에 이익을 얻으려면 소비 욕망이 필요하고, 이익을 창출하려면 멈추지 않는 소비가 필요하다. 모두를 탐욕의 화신으로 만드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열심히는 바로 이 욕망을 충실하게 사는 삶이다. 때에 맞는다는 것은 우임금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우주적 스텝을 밟는 삶을 말한다. 이런 삶은 매뉴얼이 통하지 않는다. 자연의 리듬은 하나지만 그것을 읽는 인간은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여 얼마나 자신을 비운 상태인가가 관건이다. 이렇게 하려면 자연의 이치를 꿰뚫어야 한다. 시간 자체가 생명을 변화시키는 에너지를 품고 있으며, 공간은 그것을 수용하는 장이라는 것을. 이 원리를 사무치게 깨닫게 되면 시공간의 변화에 맞는 활동을 계속 구성하게 되는데 그때 행해지는 모든 것이 무위가 될 수 있다.

  하여 때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모델이 있을 수 없다. 각자 타고난 기질이 다르듯 때와 만나서 그 적절 지점을 찾아야 한다. 이 때 어디에도 막히지 않고, 권세나 이익도 유혹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이 탄생한다. 통치자는 그 역동적인 변주 속에서 중심이나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시간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요임금이 이렇게 한 것은 어찌 아랫사람들의 봉양 받는 것을 즐겨하지 않아서였겠는가? 온 천하를 다 들어서 국가를 위할 뿐 자기 개인의 이익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나이가 들어 정신이 혼미해지자 요임금은 천하를 순()에게 넘겨주었는데, 마치 뒷걸음 쳐 신을 벗어 던지듯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았다.“ (주술, 회남자1, 소명출판, 507)

 

 우리는 요임금을 본 투비 성인으로 생각하지만 도에 합당한 정치 과정 중 매 순간 유혹이 있었고 그 것을 덜어냈음을 알 수 있다. 도의 이치를 터득했기에 때에 맞게 행했고, 임기가 끝나자 요는 미련 없이 순에게 토스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몸과 삶의 재발견

 

  무위 정치에서 몸은 중요하다. 몸은 그 자체로 자연이자 우주며 도가 실현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여 몸은 자연의 형상과 오버 랩된 소우주이므로 무위의 통치자는 나라의 통치자인 동시에 내 몸의 통치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몸을 가진 우리 모두는 무위정치의 주체가 된다.

  회남자는 세상을 다스리는 핵심은 상대방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고, 남에게 있는 게 아니라 몸에 있다고 말한다. 몸을 우주로 여기는 자여야 백성들이 따를 수 있는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다. 회남자는 몸을 말하면서 세상을 소유한다는 것을 자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득이란 무엇인가? 자득은 몸을 온전히 하는것이다. 결국 천하 소유란 몸이 막히지 않고 잘 통하게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몸은 형기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체는 생명이 머무는 것이고, ‘는 생명을 채우는 것이며 은 생명을 통솔하는 것으로 이들이 자연과 우주처럼 통하는 게 하는 게 핵심이다. 정과 신은 하늘에 속하고 형체는 땅에 속하므로 사람이 죽으면 정과 신은 하늘과 땅으로 흩어진다. 회남자는 질문한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거냐고? 당연히 고정된 주체로 존재할 리 만무하다. 이 원리를 터득한 자는 하늘을 본받고 만물의 실정을 따르기 때문에 인간적인 욕망에 유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천하에 집착하지 않고, 명예를 지닐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일부러 쫓아다니며 구하지 않는다. 성인은 이런 이치에 대한 깨달음이 있으니, 깨달음이 있으면 욕망이 사라지게 된다.(중략) 만약 정신이 무엇에 의해 가려지는 바가 없고 마음이 무엇에 이끌리는 바가 없다면, 그리하여 사리에 두루 통달하고 고요히 무위하며 그 어디에도 막히는 바가 없고 적막한 자세로 사물을 기다린다면, 권세나 이익도 유혹할 수 없고 말 잘하는 사람도 설득할 수 없으며 좋은 음악이나 현란한 색깔도 쾌락으로 이끌 수 없고 아름다운 여인도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 엇으며 지식인도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없고 용감한 자도 무섭게 할 수 없다. 이런 것이 바로 진인(眞人)의 도다. 이런 사람은 만물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조물주와 벗이 된다. (때문에) 천지 사이 우주 안에 아무것도 그의 일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다.“(숙진, 회남자1, 소명출판, 148)

 

  이렇게 살면 몸의 피와 기가 오장에 집중되며 마음이 도를 따르게 된다. 회남자에서 마음은 중요한데 이유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음은 오장의 주인이고 사지를 부리는 주체이며 피와 기운을 흐르게 하고 옮고 그름을 판단하며, 온갖 일들에 관여하는 중심이다.“ 만약 이치를 터득하지 못해 욕심을 부린다면 권세와 이익을 얻더라도 정신이 날마다 소모되어 형체가 닫히고 내면이 막히게 되고,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갈 길이 없어진다고 말한다. 마음 or 정신은 그 자체로 물질인 것이다.

  몸의 구멍은 정과 신이 드나드는 문이고, 기혈은 오장의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 귀와 눈이 소리와 색의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져들면 오장이 동요하여 안정되지 않는다. 오장이 동요하여 안정되지 않으면, 혈기가 들끓어 휴식하지 못한다. 혈기가 들끓어 휴식하지 못하면 정과 신이 밖으로 치달려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화나 복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리에 더해 생각은 사람의 생명을 기르는데 필요한 것이지만 과하게 되면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 , 현란한 색은 , 시끄러운 소리는 , 갖가지 맛은 , 복잡한 생각은 마음을 어지럽히고 행동을 경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왜 아픈지가 다 드러나는 대목이다. 너무 과하게 보고 듣고 먹고 생각하는 존재가 현대인 아닌가. 욕망은 사람의 기를 흩뜨리는 것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사람의 마음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이들을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기지(氣志)가 날마다 소모될 것이다. 무릇 사람이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중간에 일찍 죽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인간이 지나치게 잘 먹고 잘 살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풍요로운 삶에 집착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장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정신, 회남자1, 소명출판, 391)

 

 회남자의 쿨한, 어찌보면 뻔한 결론으로 읽힌다. 잘 살려면 지나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 풍요로운 삶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것을 실천하려면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고 생명을 중심에 둔 자기 수양 하는 삶을 창조해야 한다. 우주를 사유하는 순간 우주가 되는 경지.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마음의 흐름을 견지해야 한다.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제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뇌 과학은 우리의 몸과 의식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몸이라고 지각하는 것은 뇌 속에서 신체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뇌에는 거울 뉴런이 있는데 주체와 대상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경험한 것이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거나 타인의 일에 공감하는 것도 실제 신체가 반응하기 때문이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통증을 느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몸이 통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과거 몸의 이미지가 뇌에 남아있어라고 한다. 뇌는 엄청나게 가소성이 높은 생체 시스템으로 내가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따라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몸은 고깃덩이에 불과하다. 이제 몸을 소유의 화신으로 지각할 것인가. 우주적 신체로 지각할 것인가는 나에게 달린 일이다. 이 모든 원리를 터득한 요임금은 무엇을 했을까.

 

()임금이 천하를 소유한 것은 백성의 재물을 탐내서이거나 제왕의 지위가 안락하게 보여서가 아니다. 백성들이 서로 힘으로 다투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능멸하며 다수가 소수를 괴롭히는 상황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요임금은 근검절약하는 행위를 몸소 실천하고 서로 사랑하는 도리를 밝혀서, 사람들이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요임금은 띠풀로 이은 지붕을 가지런히 자르지도 않았고, 지붕의 서까래는 들쑥날쑥한 채로 놔두었으며, 천자의 수레는 장식하지 않았고, 부들로 만든 자리는 가장자리를 마름질하지 않았으며, 국에는 간을 맞추지 않았고, 밥은 거친 곡식으로 지었다. 이렇게 전국을 순행하면서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펼쳤으니, 그 수고로운 발길이 온 세상 심지어 험한 산악지대까지 두루 미쳤다.“ (주술, 회남자1, 소명출판, 507)

 

  이제 요임금의 삶을 가이드 삼아 우리 시대에 적용할 일만이 남았다.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긴다는 발상은 거두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 삶의 정치가이자 우주이며 몸의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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