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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조설근의 기억법- 현장보존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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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9-07-19 19:55 조회1,6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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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설근의 기억법 – 현장 보존의 미학

 금요대중지성 김희진



동시적인 번영과 몰락

홍루몽은 청나라 건륭 중기에 세상에 나왔다. 건륭연간(1735~1795)은 청나라 초기부터 이어져온 팽창과 번영이 정점을 찍는 시대였다. 대륙의 중심으로 흘러드는 온갖 이질적인 것들! 받아들이고 뒤섞는데 탁월한 재주를 지닌 이 이민족 제국은 마치 꽉 차오른 보름달과 같았다.

북경의 교외, 가난한 문인이었던 조설근은 이 최고의 풍요와 번영을 누리던 시대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이 시대를 지켜본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죽림칠현의 ‘완적(阮籍)’에 비견하곤 했는데, 그것은 그가 완적처럼 술을 마시면 미친 듯 했으며, 호방하지만 쉽게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이 번영의 시대에서 몰락의 그림자를 보았다. 홍루몽에 자주 등장하는 ‘천릿길 가는 잔칫상도 끝나는 날이 있는 법’, ‘달이 차면 기울고 물도 차면 넘친다’라는 속담들이 보여주듯이 조설근은 번영을 보며 패망을 말하고, 화려함을 보면서 쓸쓸함을 노래한다. 
  
과거의 길도 막히고 궁핍에 찌든 조설근은 시대의 번영을 질투했던 것일까? 『홍루몽』은 한 명문거족의 몰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조설근의 눈에 비친 몰락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가문이 망하도록 이끄는 인물들은 번영의 시기에 그 씨앗을 뿌려놓았고, 점점 더 영화를 누리는 과정에도 곳곳에서 균열은 발생한다. 팽창하는 것은 언제나 폭력을 수반하고 그 사이에서 불만이 싹튼다. 약한 고리들이 하나씩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설근이 읽어낸 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다. 희망사항도 불안도 아닌, 그저 번영의 현재를 눈에 보이는 대로 읽어낸 것뿐이다.

몰락과 번영은 동시에 존재한다. 번영을 구가하는 시대에 우리는 맹목이 되기 쉽다. 화려함과 풍요가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설근은 그것 너머를 읽어낸다. 어떻게 그런 예리한 관찰이 가능할까? 조설근, 그 사람이 궁금하다. 



양극단 사이에서
 
조설근은 중국 남경의 손꼽히는 권문세가 부잣집의 자손이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부터 아버지 대(代)까지 3대에 걸쳐서 강남경제를 주름잡는 강녕직조부라는 관리를 세습했다. 조설근은 따뜻한 남쪽지방인 남경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어린시절을 보내며, 부잣집 도련님으로서의 모든 영화를 다 누렸을 것이다. 그의 고조부는 여진족이 침략해올 때 싸우다 투항한 한족 무관으로, 그로부터 그의 집안은 형식상 황실의 노비(포의)가 되었지만, 말이 노비지 황가의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강녕직조부는 황실사람들이 입는 옷을 만들어 공급하는 곳으로 황제의 직속기관이었는데, 조설근의 할아버지는 강희황제와 친구 사이기도 했으므로 조씨집안은 황실과 매우 돈독한 관계였다고 한다.   
 
하지만, 황실의 총애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바로 그 총애 때문에 황제의 남순(南巡)때마다 접대하면서 집안은 거덜나고 빚더미에 앉게 되었던 것이다. 조설근의 집안은 강희제가 죽자 옹정황제의 등극과 함께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었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북경의 교외로 쫓겨났다. 이 때 조설근은 열 살 남짓의 나이였다.

조설근의 이후 삶은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벗들의 몇몇 글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를 닮아 풍류와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났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가 남긴 유일한 작품인 『홍루몽』에 드러난 거대가문의 규모와 그 일상은 그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일 것이다. 나는 상상해본다. 최고의 부귀영화와 최악의 가난이라는 극단적 간극 속에 있는 그의 십대 시절을. 아직 어른들처럼 부양의 책임이 있는 나이가 아니니, 그는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 시간동안 무얼 했을까? 자신에게 닥친 이 거대한 운명을 해석하기 위해 부귀했던 과거와 몰락한 현재를 끊임없이 오락가락 하지 않았을까? 

나는 다시 상상해본다. 그가 떠올렸을 과거를. 그것은 아마 소설 홍루몽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의 실마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과거의 일상을 복원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을 어린 나이였기에, 언젠가 이 운명을 해석할 수 있을 때까지 그저 과거의 현장을 머릿속에 그대로 복원해 놓으려고 끊임없이 기억하고, 또 기억한 것은 아닐까? 한 마디로, 어떤 해석의 잣대를 갖다 대지 않은 질료 그대로의 현장! 

물론 나의 상상이지만 홍루몽이 이런 설정 하에서 그가 과거를 반추한 풍경이라고 볼 때라야, 그 독특한 서술방식이 이해가 간다. 그만큼 특이하다. 모든 장면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내려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일상의 풍경은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세밀하여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조설근은 30대에 홍루몽 집필을 시작했다. 이때 그는 그의 머릿속 풍경에서 무엇이 번영과 몰락의 징후인지를 알아냈던 것일까? 홍루몽은 바깥 세계와 분리된 규방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즐거움 뒤에 드리운 가문의 몰락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감지할 수 있다.  



기억 속의 여인들

이렇게 번영과 몰락의 간극에서 깨달은 삶의 통찰이 담겼음에도 불구하고, 홍루몽은 연애소설이다. 소설의 서두에 나온 작가의 말에 따르면, 조설근은 자기가 본 여인들이 너무나 훌륭해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밝히려고 글을 쓴다고 했다. 자신의 부족한 글솜씨로나마 기록하지 않으면 그녀들의 삶이 정말 이 세상에 없는 것이 될까봐! 이런 기록들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중국엔 이미 열녀전(列女傳)등 다양한 여인의 삶을 기록한 책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가 전(傳)이나 시가 아닌 소설의 형식을 취한 것은 그가 살았던 청나라 초기가 명 후기부터 발전해온 통속소설이 만개한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온갖 소설이 대유행을 했는데, 그 중에는 선정성으로는 어떤 시대도 능가할만한 음란한 소설도 있고, 비현실적 (초!)능력을 갖춘 선남선녀의 연애소설도 있었다. 입신의 길이 막힌 가난한 조설근은 이 대열에 합류하려 한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조설근은 비웃는다. 이런 도식적 형식의 소설들은 천편일률적이며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킬 뿐이라고. 그러면서 자신의 글은 재미난 이야기로 ‘사람들의 안목을 새롭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자기 글의 특징이란 것이 별게 아니다. 그저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에 대해 꾸밈없이 기술하겠다는 것뿐이다. 사람들의 마음, 그 지극함만을 거짓 없이 드러냄으로써 안목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쫄딱 망한 집의 이름 없는 글쟁이가 보여주는 이 커다란 배포! 

아마 그의 자신감은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소환해, 그들과의 우정·사랑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과 감정을 떠올려보건대, 세상의 어떤 소설보다 재미있지 않았을까? 세간의 소설 속의 여성들은 그가 알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아니다. 머릿속에 보존된 현장의 그 생생함은 사람들을 자극시키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일그러지고 뭉뚱그려진 기존 소설 속의 캐릭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우리는 꾸밈없는 진솔함으로 전해지는 감정에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생동하는 철학으로서의 소설

진솔함과 마음을 가장 큰 무기로 내세운 사람. 명나라 판 ‘껍데기는 가라!’를 외친 이탁오가 떠오른다. 그는 모든 인위를 배격하고 사람의 ‘진정’을 그대로 분출하기를 촉구한 양명좌파의 실천적 사상가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우리 본연의 진정이며, 그것을 오염시키는 것은 바로 ‘견문과 도리’라는 파격적 주장을 「동심설」에 담았다. 홍루몽에서 정(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남주인공이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공부를 멀리하고, 남자들이 논하는 경세치국의 담론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탁오의 사상이 오버랩된다. 

사실 명말청초 통속소설의 발달에 사상적 배경으로 날개를 달아준 것이 바로 이탁오 사상이다. 천리가 삶의 지침이 되지 못하고 억압의 도그마가 되었을 때 자신의 마음에서 천리를 찾으라고 했던 양명에서부터 유학자들은 마음의 문제에 집중했고, 무겁게 짓누르는 이념의 학문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이탁오는 그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욕망이야말로 우리 삶을 추동한다고 했다. ‘추위는 아교도 꺾을 수 있지만 저자로 향하는 장사치는 막을 수 없다’(『분서Ⅰ』,한길사, 127쪽)라며 재물과 음식과 같은 일상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을 인정했으며, ‘성인이야말로 큰 욕심꾸러기’라고 하면서 깨달음조차도 기본적으로 욕망이 전제됨을 꼬집었다. 무엇보다 남녀의 정이야말로 가장 진솔한 인간의 정情이고, 천지만물이 부부간의 정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부부론」등에서 수많은 문인들이 연애소설 창작의 명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탁오가 말한 남녀지간의 진정은 천지만물을 낳는 정, 생성의 정이다. 그는 획일적 잣대로 재단되는 삶과 천편일률적으로 모방하는 글쓰기를 가장 경계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탁오의 사상에 고무되어 발달한 통속소설은 그 자체로 모방과 천편일률이었으며, 여성에 대한 시각조차 탁오의 사상과는 정반대로 편견에 사로잡혔다. 

그 시대의 문학적 조류와 유행을 모두 거부한 조설근의 홍루몽은 200년을 건너뛰어 이탁오의 사상을 진실로 실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둘 모두 지극한 ‘정’의 진솔함으로 시작하여, 결국 가 닿는 곳도 불교적 깨달음으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홍루몽에 비점을 단 조설근의 친구인 지연재는 ‘홍루몽은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피눈물’이라고 했다. 온가족이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삭풍이 새들어오는 가운데 십여 년의 시간동안 써내려간 홍루몽은 조설근이 바라본 시대, 그의 기억 속의 풍경, 그리고 그의 깨달음을 담고 있다.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잣대로 파괴하지 않은 조설근의 기억법은 한 시대가 추종하는 맹목적 가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는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새로운 삶의 가치를 길어올리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나는 소망한다. 홍루몽을 통해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새로운 안목을 얻어 그의 깨달음과 접속할 수 있기를!   

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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