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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 ‘사심’에서 ‘양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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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수리 작성일19-04-30 21:49 조회1,8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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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에서 ‘양지’로


한성준(감이당 장자스쿨)

 

내가 사랑하는 책 『전습록』은 내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책과 진하게 만날 때쯤 나는 남편이 되었고 아빠가 되었다. 아빠가 된다는 사실에 설레고 기뻤지만 동시에 걱정도 함께 찾아왔다. 공부하는 백수였기에 버는 돈도 많지 않았고 모아둔 것도 별로 없었다. 점점 ‘생계’가 고민되기 시작했고 내 글은 걱정으로 채워졌다. 걱정한다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지만 나는 그 문제를 놓지 못했다. 그해 마지막 학기에 『전습록』을 만나서야 내가 왜 놓지 못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습록』은 명나라 시대의 유학자 왕양명과 제자들이 주고받은 문답을 모아놓은 책이다. 양명은 우리의 마음에 이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마음의 본체인 ‘양지’는 배우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사로운 마음이 양지를 가리기 때문에 이 사심을 제거해야만 이치가 드러난다. 사심만 제거하면 된다니 아주 간명하고 쉽다. 그런데 이 사심은 뭐란 말인가? 양지라는 마음과 사심이라는 마음은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마음의 양지와 사심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양명학을 만나고 나니 생계를 걱정하는 글을 쓰던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애를 보고 돈을 벌며 공부까지 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참에 끊임없이 해야 하는 공부와 연구실 활동을 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연구실의 좋은 관계나 생활들은 그대로 누리고 싶었다. 생계라는 핑계를 대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정당화하려 했다. 그렇지만 양지는 스스로도 속일 수 없었다.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그것이 거짓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도 남들에게도 당당할 수 없었다. 그 거짓을 감추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변명하고 눈치 보느라 기력을 다 소진하여 점점 왜소해져갔다. 『전습록』을 공부하니 이런 마음과 태도로 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통쾌한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힘든 척, 못하는 척하던 사심을 내려놓고 일단 해보기로 했다. 매주 힘들게 주역을 외우고 진하게 글을 써야 해서 피하고 싶었던 장자스쿨에 도전했다. 마음이 바로 잡히니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그렇게 힘들지 않았고 먹고사는 문제도 어떻게든 해결이 됐다. 오히려 마음은 경쾌해졌고 일상을 번잡하게 만들던 불필요한 웹서핑이나 아내와의 감정싸움 같은 것들이 훨씬 줄었고 삶의 밀도가 높아졌다. 그러한 마음과 생활은 이전보다 나를 생기 있게 만들었다. 

양명은 항상 제자들에게 “이것은 반드시 자기의 마음으로 체득해 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양지가 무엇인지, 사심이 무엇인지 생각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혼자만이 아는 그 마음, 스스로도 속일 수 없는 그 마음을 기준으로 삼아서 매 사건마다 상황마다 행동해가며 직접 체험하며 알아가라고 한다.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외부의 시선이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이익과 결과에도 연연하지 않으며 단지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을 때, 그 무엇보다 통쾌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어떨까? 여전히 많은 사건과 상황 속에서 작은 틈만 생기면 나의 사심은 작동한다. 그리고 사심은 나를 이전에 살던 방식으로 돌아가게끔 유혹한다. 단지 한 푼의 인욕(人慾)이 사라졌을 뿐 아직도 나의 양지는 훤히 밝게 드러날 때보다 어둡게 가려질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나는 지난번에 느꼈던 ‘통쾌한 마음’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전습록』을 지침서 삼아 내 마음과 사심에 관한 탐구를 해보려 한다. 매 순간 사심으로부터 벗어나 양지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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