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진화에 따라 ‘인류’가 인식하는 세상도 달라져왔다. 21세기 호모 사피엔스들은 ‘신’은 허구고, 과학이 실재를 말하고 있으며, 예술은 상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들 모두 우리의 유동적인 마음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보여줄 뿐이다. 무엇이 ‘있고’, ‘실재하고’, ‘허구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의 문제다. 우리의 의식은 세계를 이렇게 밖에 볼 수 없지만, 또 세계를 이렇게 해석하게 된지는 겨우 6만 년 밖에 안 됐다. 우리의 인식은 역사적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만나는 세계도 역사적이다.
인식의 유동성을 발휘하게 된 6만 년 동안 인간은 유례없이 과열된 시기를 보냈다. 호모 사피엔스의 마음은 필연적으로(구조적으로) 연결하고 창조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농사, 도시, 국가, 제도, 워드프로세서 등등, 사냥한 동물과의 관계에 자연사 지능이 아니라 사회적 지능을 개입시키면서 의례와 신화, 윤리를 생산해내기도 한 반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사회적 지능이 아니라 기술적 지능을 개입시키면서 인종차별과 노예제를 생산해내기도 했다. 이런 것들 모두 호모 사피엔스적인, ‘인간’적인 것이다. 사피엔스의 마음은 오직 연결할 뿐! 사고할 뿐!
신기하게도 우리의 ‘이렇게’ 생긴 마음은 자연선택압에서 잘 살아남았다.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른 호모 종들을 멸종시키고, 지구 위 유일한 ‘인류’로 (슬픈 일이지만) 우뚝 서있다. 지구 곳곳 온갖 환경에 널리 퍼져 살고 있는 단일 종이기도 하다. 우리의 유동적 인식, 연결하고 창조하고, 전체를 사고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자신을 해치는 것들을 창조하기도 했지만, 사피엔스가 이렇게까지 이 지구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마음이야말로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전체’를 사고하려고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의 지구 진화기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이대로 멸종을 향해 나아갈까? 아니면 세계를 하나로 종합하고 연결하려는 마음을 회복하고 새로운 길을 뚫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