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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씨나 지중해] 바르셀로나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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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11-11 09:14 조회7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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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 오다
김 해 완

10개월 간 멈췄던 MVQ 연재를 다시 시작한다. 이는 10개월 간 멈췄던 내 ‘방랑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지금 나는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부, 까딸루냐 주의 심장인 바르셀로나에 자리 잡았다.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내 일상의 풍경이 아바나 말레꼰의 카리브해에서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지중해로 바뀌어버렸다. 이렇게 MVQ에 새 거주지를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것도 벌써 세 번째다. 뉴욕의 동쪽 퀸즈, 카리브해의 쿠바, 그리고 서지중해 항구도시 바르셀로나.

카리브해에서 지중해로

아직도 내가 인생의 새 쳅터를 시작하고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때가 있다. 올해 초, 쿠바 생활을 완전히 정리한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 무섭게 여러 일들을 다루면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으나, 마음은 계속해서 붕 뜬 상태였다. 그대로 한국에 정착할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쿠바를 떠남과 동시에 의학의 꿈은 멀어졌지만, 나는 스페인이라는 가능성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다. 쿠바 의대에서 타국으로 편입을 하고 싶다면 스페인은 유일한 선택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올해 상반기 한국에 있는 동안 열 군데가 넘는 곳에 지원서를 넣었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나를 붙여준 곳이 여기 바르셀로나자치대학교(Universidad Autónoma de Barcelona)다. (아직 소식을 주지 않은 학교가 한 군데 남아있는데, 여기는 어찌나 일처리가 느린지 이듬해 삼월에 연락이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ㅋㅋㅋ…)

메디씨나 UAB!

원하는 대로 상황이 풀렸으니 기뻐해야 마땅한다. 그렇지만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워낙 오랫동안 고군분투하다보니, 바르셀로나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희열보다 피로감이 먼저 엄습했다. 앞으로의 행로가 결정되었다는 후련함과 또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는 지친 마음의 교차였다. 스페인에 도착한 첫날, 텅 빈 기숙사에 짐을 풀고는 급하게 이불과 식기를 사러 나가는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속으로 외쳤다. 이번에는 한 곳에서 최소 오 년은 살자. 제발 짐 좀 그만 싸자! 그만 풀자! 살림살이 좀 그만 사자!!!

희한하게 풀리고 있는 내 인생과 마찬가지로, 나는 UAB 의과대학에서 희한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의대는 원래 ‘로컬’이다. 전 세계 유학생들이 모이는 영미권과 적극적으로 유학생들을 유치하는 쿠바는 예외겠지만, 보통 의대는 그 지역 특유의 의료 체계 및 인재들(의사와 교수들, 환자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면서 운영된다. 학생들은 결국 자기 지역에서 의사가 되려고 의대에 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학급 친구들은 대부분 ‘아시아 얼굴’을 보고도 내 국적이 스페인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스페인에 정착한 중국인 이민자의 딸 쯤 된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외국 느낌 물씬 나는 (거기에 쿠바 토착 억양까지 이상하게 섞인) 내 스페인어를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거기에 내 국적(한국)을 확인하고 나면, 그리고 내가 스페인에 정착할 계획이 없다는 사실까지 들으면 그제야 혼란스러워하며 묻는다. “그럼 왜 한국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스토리가 너무 길어서 말하기 귀찮다, 친구들아^^

스페인, ‘오래된 근대’의 나라

어차피 의미는 생성되는 것이고, 바르셀로나에 ‘어쩌다보니’ 오게 되었다 해도 이 우연을 무의미하다 여길 필요는 없다. <돈키호테>를 보라. 이 책에서 바르셀로나는 모험이 마무리되는 종착지다. 사실 돈키호테도 처음부터 바르셀로나에 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원래는 옆 도시인 사라고사에 가려고 했으나, 가짜 돈키호테가 자기 행세를 하면서 이미 사라고사에 들렸다는 소문을 듣고는 마음이 상해서 홧김에 행선지를 바르셀로나로 바꾼 것이다. 이 우연한 결정이 그의 모험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라만차의 고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한 대도시. 이곳에서 돈키호테와 산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본다. 창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대포를 위력을 체감하며, 위작이 인쇄되고 있는 출판소를 발견한다. 이 모든 충격이 누적되면서 돈키호테는 광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오늘날 스페인은 의학계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 아니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최신 의학을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쿠바처럼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초점을 ‘오래된 의학’으로 바꾸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세와 근대의 얼굴을 반반씩 지니고 있는 돈키호테는 스페인의 얼굴이기도 하다. 스페인은 유럽 역사에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다리역할을 했다. (이행이 완전히 이루어진 후에 ‘다리’는 폭파되었지만 말이다.) 이는 의학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의 활약은 무엇이었을까? 현대 의학은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 학파를 자신들의 시원으로 삼는다. 물론 둘 사이에 이론상의 공통점은 이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내가 교실에서 만나는 교수님들은 신체현상을 물리적인 인과관계로 파악하려고 했던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과학적인 사고력과,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는 그들의 윤리적 태도를 기억하라고 여전히 말한다. 헌데 고대 지중해 세계를 이토록 화려하게 장악했던 히포크라테스 의학이 한때 유럽에서 완벽히 잊혀졌다. 바로 중세였다. 이 시기 동안 지중해 의학 지식은 라틴어 서적을 부지런히 번역해두었던 아랍문명권에만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세기가 흐른 후에야 비로소 아랍에서 유럽으로 다시 역변역이 이루어졌다. 이 번역 작업을 주도했던 것은 다름 아닌 스페인이었다. 13세기 스페인 톨레도에 있었던 번역 학교는 당시 지중해에서 지성계의 최고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수많은 학자들이 귀한 번역서를 구하기 위해 톨레도로 몰려들었고, 번역서를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워야 했다. 800년 간 이슬람과 가톨릭이 공존한 이베리아 반도이니, 이 지적 교류가 벌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대 의학은 고대 의학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순환계의 작동원리를 알아낸 윌리엄 하버와 해부학의 아버지 바셀리우스는 히포크라테스의 찬양자인 갈레노스의 이론이 상당부분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과거를 부정하려면 먼저 과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공부는 스페인이 중세 말에 쌓은 번역작업에 빚지고 있다. 결국 의학사에서도 스페인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이런 역사 때문일까, 스페인의 의학사 연구는 상당히 활발한 듯하다. 우리 학교 의학사 수업만 들어도 스케일이 상당히 큰데, 참고 자료의 저자들이 대부분 스페인 출신이다. 이와 같은 의학과 문화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은 스페인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심지어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와 어깨를 견주는 건축가 노우베우스의 아름다운 건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병원으로 활용된다. 병원 이름은 산트 파우(Sant Pau)인데, 이 병원에서는 진료와 별개로 관광객 투어가 진행된다!

이번 겨울 방학에는 제프리와 함께 톨레도와 라만차로 여행을 가려고 한다. 돈키호테와 근대 의학의 시작점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생각만해도 즐겁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있노라면 피로감이 가시는 기분이다. 얼렁뚱땅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즐기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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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B, 바르셀로나자치대학교

내가 새 보금자리를 튼 학교를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바르셀로나자치대학교라는 다소 낯선 이름을 가진 우리 학교는 까딸루냐 주 정부 세금으로 운영된다. ‘자치대’를 ‘주립대’로 바꿔서 읽으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68혁명이 전 세계에 불길처럼 번지던 1968년에 세워졌으며, ‘자치대’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함으로써 당시 프랑코가 독재자로 군림하던 중앙 정부의 간섭을 차단했다. (이런 역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경찰들이 교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현재 UAB는 스페인에서 1~2위를 다투는 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 적극적으로 국제화를 지향하는 덕분에 교내에 외국인들이 드글드글하다. UAB에는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세종학당도 있는데, 이 때문에 작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이 스페인 국빈방문 와중에 UAB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 정도는 인터넷에 치면 다 찾을 수 있는 정보다. 실제로 UAB에 오면 받는 느낌은… 학교가 크다는 것뿐이다. 캠퍼스가 커도 너무 크다! UAB는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교외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는 아무것도 없다. 숲과 산뿐이다. 걸어서 캠퍼스 한 바퀴를 돌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학교 캠퍼스에 있는 기차역만 해도 두 개다.

진짜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경사다. 캠퍼스는 두 개의 작은 산봉우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두 언덕 사이에 중앙 광장이 있고, 대학 건물들이 마치 계단식 논처럼 언덕의 꼭대기부터 차근차근 내려오면서 배치되어 있다. 캠퍼스를 걸어 다녀보면 이 경사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도대체 평지가 없다. 학교 다니는 내내 계속 계단만 오르락내리락 해야 할 판이다. 경사면 위에 지어져서 그런가, 건물 구조도 아리송하다. 앞문으로 들어갈 때는 분명 4층이었는데 뒷문으로 나가면 1층이 된다. 의대 건물은 그 가운데에서도 최악이다. 언덕 꼭대기에서 보면 그냥 단순한 2층짜리 건물 같은데, 중앙광장에서 접근하면 계단의 행렬이 끝나질 않는다. 심지어 건물 안에 들어가도 계속된다. ㅠㅠ.

엄청난 계단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의대..!

최근에 나는 UAB의 독특한 캠퍼스 배치가 인문대를 편애(?)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중이다. 봉우리 사이 골짜기, 즉 중앙광장과 직결되어 있는 명당자리를 인문대가 전부 차지하고 있다. (전부!) 철학과, 문학과, 정치학과, 사학과, 경제학과… 각 과마다 독립된 건물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이 건물들은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거대한 통합체를 이룬다. 따라서 인문대 안을 걸어 다니기만 해도 여기저기서 흥미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동물보호법 세미나나 남미역사 컨퍼런스 같은 것 말이다. 미로 같은 건물들 사이공간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학생들은 잔디밭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토론을 한다. 도서관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외부 정경을 바라볼 수 있다.

반면 이공계는 모두 캠퍼스 가장자리에, 즉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은 없다. 오직 높은 경사와 계단만이 있을 뿐! 그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의대와 수의대다. 그러나 우리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착각하지 마시라. 작고 낡은 의대 건물과는 달리, 수의대는 고즈넉한 숲에 호텔처럼 으리으리하게 지어져 있다. 수의대는 ‘동물 대학 병원’까지 운영한다. 수의대로 가는 길목에는 소와 말을 키우는 농장도 있다. (참고로 UAB는 의대보다 수의대로 훨씬 더 유명하다. 전 세계 탑 20 안에 들어간다. 소담아, 투어 와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UAB가 모든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이다. 각 대학 건물마다 도서관이 따로 있고, 중앙 도서관은 또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학교 건물 곳곳에도 빈 의자와 테이블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장소도 출입증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어느 곳이라도 서슴없이 들어갈 수 있다. 기숙사 안에서도 독서실은 24시간 운영된다.

그렇다면 이곳의 공부 현장은 실제로 어떠할까? 교수들과 학생들은 어떻게 함께 공부하고 있을까? 그건 다음 편에 계속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마치 호텔처럼 으리으리한 수의대^^

이중 장애인가 이중 풍요인가—까딸루냐 적응기

해외생활을 오래한 짬밥 덕분인지 나는 스페인에 오면서 어떤 긴장도 하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여기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비행기에서 내려서 학교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언어 때문이다. 바르셀로나가 있는 까딸루냐는 스페인어와 까딸란어를 동시에 쓴다. 까딸란어는 스페인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개인적으로 소리는 불어에 가깝다고 느낀다.

학교 수업은 스페인어와 까딸란어 반반으로 진행된다. 룰은 없다. 무조건 교수님이 선호하는 언어가 즉흥적으로 선택된다. 그래서 우리는 교수가 입을 열기 전까지 이 수업이 까딸란어일지 스페인어일지 짐작할 수가 없다. 게다가 까딸란어와 스페인을 마구 섞어서 진행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런 이중 현장이 웃기면서도 좀 이상했다. 왜 이런 식으로 대학 수업을 할까? 세상에 다중언어를 쓰는 사회는 많지만, 보통 대학처럼 상위 교육 기관으로 가면 언어를 하나로 통일하는 경향이 있다. 지적 교류를 더 쉽고 빠르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까딸루냐는 반대다. 대학에 갈수록 까딸란어가 더 중요해진다. 학교를 더 오래 다닐수록 스페인어와 까딸란어를 더욱더 자유자재로 쓰기를 기대받는다. 여기에도 까딸루냐 지방이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역사가 있다. 이 이야기 역시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 편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까딸란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 지금으로서는 한 20% 정도 이해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긴장하지 않았다. 어차피 비 까딸루냐 주 출신들은 다 나처럼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그들(스페인인 혹은 포르투갈인)의 모국어는 전부 라틴어 계열이었다. 따로 공부하지 않는데도 두 달 정도 지나자 그들은 벌써 까딸란어의 60~70%를 알아듣고 있었다! 이럴 수가…! 충격과 함께 큰 깨달음이 찾아왔다. 유럽인들이 외국어를 배우는 건 ‘사투리’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구나. 앞으로 어떤 유럽인이 자신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를 한다고 자랑하더라도 전혀 놀라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언어들은 분명 다른 언어지만 정신적으로는 동일한 세계에 속해 있다. 구 로마의 세계, 가톨릭과 지중해의 세계 말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이질적인 시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 언어가 내 모국어와 다르면 다를수록 나는 더 먼 거리를 여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어는 장애인 동시에 풍요다. 힘써 극복해야 할 불편한 장애물이지만, 그 과정은 동시에 나에게 더욱더 개방된 정신과 확장된 상상력을 선물해준다. 나는 하필이면 까딸루냐 주에 와서 이중의 고초를 겪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이중의 풍요로 전환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까딸란어 때문에 번번이 수업에 자신감을 잃지만, 그러다가 종종 갑자기 교수의 까딸란 강의가 ‘직감적으로 이해되면서’ 자신감이 회복되는 불가사의한 경험을 하고 있다.) 어차피 1학기는 듣는 수업도 몇 개 없으니 까딸란어나 공부해야겠다. [끝]

바르셀로나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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