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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맹자를 만나다] 인(仁)과 의(義)를 따르는 삶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1-10-23 22:34
조회 : 172  
문빈(남산강학원)

지금 나는 고전을 읽고, 쓰면서 산다! 『논어』, 『맹자』 같은 동양고전부터 시작해서 『도덕의 계보』, 『안나 카레니나』…. 등. 서양철학과 문학까지! 어떤 때는 배움의 즐거움에 흥겹고, 또 어떤 때는 책이 어려워 끙끙대면서 공부하고 있다.

나는 가끔 내가 왜 공부하며 살고 있는지 질문한다. ‘나는 왜 공부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종종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막힐 때도 있고, ‘그냥 좋으니까…?’ 라면서 단순하게 넘어갈 때도 있다. 명확하게 답을 내리고 있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로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책을 좀! 멋지게 읽고 싶다,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 글쓰기를 잘해보고 싶다! 이런 욕망을 봤을 때, 나에게 공부란 지적인 능력을 확장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런데 『맹자』를 읽으면서 학문한다는 것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된 구절이 있다. 맹자에게 학문은 단순히 지식을 쌓고,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게 아니었다. 맹자는 훨씬 근본적인 차원에서 학문한다는 것에 대해 말해준다. 그것이 무엇인가? 맹자는 말한다. 학문한다는 것은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맹자가 말하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학문이란 무엇인가?

()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그 길을 내버려 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슬프도다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맹자』 고자 상편 11-11 / 박경환 옮김 홍익 출판사 / p333)

우리는 여기서 ‘잃어버렸다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잃어버렸다는 말은 언제 쓰는가? ‘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내 지갑을 잃어버렸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을 때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잃어버림은 내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렇기에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다고 했을 때, 이 마음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 있는 ‘어떤’ 마음을 되찾는 것이 바로 맹자가 말하는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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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우리가 찾아야 할 마음을 인(仁)과 의(義)라고 말한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배병삼 선생님은 이를 “사람다운 마음”, “사람다운 길”로 번역하셨다. 우리는 이미 사람다운 마음과 사람다운 길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인의(仁義)를 가지고 있다니! 잘 믿기질 않는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 인의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걸까?

맹자는 인(仁)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의(義)를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몸이 아픈 친구를 보거나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친구를 볼 때 ‘저절로’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는 것이 있을 때 ‘저절로’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이 마음은 우리 외부에서 ‘~행동해야 해’와 같이 당위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다. 신기하게도 우리 마음은 어떤 조건과 상황을 만나면 ‘저절로’ 측은해하고, 또 부끄러워한다. 어딘가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어떻게 마음을 쓸지 계속 의식하고 있지도 않아도 그렇다. 우리 마음은 이미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알고 있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그 마음을 따라 살아가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인의(仁義)를 왜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말이다! 맹자는 우리가 마음이 아닌 “귀와 눈”, 즉 “감각 기관”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음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감각 기관은 오직 감각 기관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한다. 눈은 눈이 좋아하는 것만 보려 하고, 귀는 귀가 좋아하는 것만 보려 하고, 입은 입이 좋아하는 것만 먹으려 하는 것이다.

감각 기관은 감각 기관 자신만을 위하기에 외물에 쉽게 끌려다닌다. 유튜브에 있는 재미난 영상에 눈과 귀가 매혹되고, 자극적인 음식에 입이 이끌려가고, 편안한 감각을 바라는 사지 육신은 이불에서 나오기를 귀찮아하는 것이 그렇다! 감각 기관의 만족은 그 순간 눈, 귀, 입, 사지 각 각에 쾌락을 준다. 우리는 그 쾌락이 우리 삶을 즐겁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마음보다 감각 기관의 만족을 따른다. 그렇게 감각 기관을 좇기에 우리가 인의(仁義)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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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기관의 만족은 그 순간 눈, 귀, 입, 사지 각 각에 쾌락을 준다. 우리는 그 쾌락이 우리 삶을 즐겁게 한다고 생각한다.

맹자는 감각 기관을 따르는 것은 소체(小體), 즉 ‘작은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육체 안에 갇힌 나의 기쁨이다. 그런데 그것의 문제는 대체(大體), ‘큰 나’를 해치게 한다는 것이다. 내 한 몸 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어찌 되든 상관없어하고, 눈과 귀의 감각에 이끌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나라는 존재는 육체에 갇혀 있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닿아있는 곳까지 커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마치 내 몸처럼 아끼고, 동물까지도 내 몸처럼 아끼며, 심지어 사물까지도 내 몸처럼 아낄 때가 그렇다. 이 관계를 모두 포함한 게 바로 ‘큰 나’이다. 우리 마음, 인의(仁義)는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알려준다. 그것을 따르는 것이 나에게 진정 좋은 삶이다.

맹자의 공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은 작은 나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큰 나로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이 공부는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던 공부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책을 읽고, 지식을 쌓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맹자에게 공부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매순간 삶에서 펼쳐지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것에서 인(仁)과 의(義)를 실천하기! 그것이 맹자가 생각한 공부이자, 걷고자 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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