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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 타고 천일야화로]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1-10-20 00:13
조회 : 284  
김희진(감이당)

『천일야화』의 대표 종교는 이슬람인데, 이야기에는 오히려 다른 이교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떤 왕자는 왕국 전체에서 혼자만 이슬람을 믿었기 때문에, 왕국 전체가 하늘의 벌을 받아 돌처럼 굳어버렸을 때 혼자만 살 수 있었다. 이슬람이 전파될 초기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슬람은 다른 종교를 인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유대교와 기독교도들은 이야기 속에서 이웃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유독 ‘불의 숭배자’라는 이교도들만은 아주 못되고 음흉하고 해로운 제의를 지내는 걸로 묘사된다. 왜일까? 아마도 이슬람이 쳐들어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믿어오던 다양한 종교가 있었을 것이고, 그 중 ‘불의 숭배자들’의 세력이 가장 크고 저항이 격렬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온갖 종교적 분쟁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종교가 발달한 페르시아 땅은 영적으로 매우 충만한 곳이다. 페르시아는 8세기, 이슬람을 앞세운 아랍인들이 정복해오기 전까지 페르시아만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조로아스터교다. 조로아스터교는 어디선가 들어만 보았지 생소한 종교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 최대 30만명 정도의 신자가 있다고 한다. 퀸의 프레디머큐리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그가 독실한 조로아스터교 집안 출신임이 나왔다. 영화 속에서 그가 그토록 지겨워하던 아버지의 잔소리가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실천윤리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이었다. 이렇게 ‘좋은’(!) 종교인데 『천일야화』 안에서는 왜 그토록 악마화 되었을까?

‘악’을 징치하는 ‘선’의 폭력

3권에 <암지아드 왕자와 아사드 왕자 이야기>에 아주 무시무시한 조로아스터교도들이 나온다. 그들은 사람을 납치해서 제물로 바친다. 낯선 나라에서 길을 헤매는 아사드 왕자를 속여서 데리고 간 늙은이는 그를 지하실에 가두고선 두 딸로 하여금 매일 때리게 했다. 이슬람교도를 증오하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보스탄과 카밤은 아비의 명을 받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고, 그녀들은 당장에 뇌옥으로 뛰어 내려가더니만 아사드의 옷을 벗긴 다음 몽둥이를 들어…”(3, 971그를 흠씬 때렸다. 그녀들은 그들의 중요한 제의가 열리는 날까지 매일 왕자를 때렸다. 그런데 그녀들은 사실 증오 때문에 때리는 것이 아니라, 때려야 하는 의무 때문에 때린다. 딸 중 한 명은 아사드 왕자에게 점차 연민을 느끼게 되었지만 계속해서 때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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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녀들은 사실 증오 때문에 때리는 것이 아니라, 때려야 하는 의무 때문에 때린다.

이렇게 의무의 매질을 하는 장면은 다른 이야기에도 종종 나온다. 1권에서 칼리프의 왕비가 되는 조베이드도 매일 밤 개를 채찍질하는 의식을 치르는데, ‘자, 이제 우리의 의무를 행하도록 하자’라며 두 검둥개를 때리고 나서는 안아주며 슬피 운다. 두 검둥개는 조베이드의 두 언니인데, 어떤 착한 정령이 조베이드를 위해 못된 두 언니를 개로 만들어버렸다. 두 언니가 막내인 조베이드를 질투하고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정령이 조베이드에게 매일 채찍 100대씩 때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사라진 후, 조베이드는 연민의 마음을 꾹 참고서 매일 에누리 없는 채찍질을 해야만 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의무의 매질의 비밀은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알고 나서 풀렸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성년식 때 성년의 징표로 허리띠를 준다. 성년이 된 그들은 의례 때마다 이 허리띠를 풀어서 양 손에 잡고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마지막으로 한 쪽 끝으로 다른 쪽 끝을 때리고서 다시 허리에 묶는다. 한 쪽은 아후라 마즈다가 상징하는 ‘선’, 다른 한 쪽은 앙그리 마이뉴가 상징하는 ‘악’이다. 이들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선함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앎을 실천윤리로써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은 투쟁의 과정일 것이며, 거기에서 타협과 물러섬 없이 오로지 ‘선’만을 추구할 것을 다짐한다. 그런데 이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에 악을 없앨 수는 없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선은 악을 끊임없이 징치(懲治)해야 한다. 언제나 선의 승리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신들의 신, 아후라 마즈다

조로아스터의 교리에선 선악의 이분법으로 세계를 본다. 그렇지만 악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뿐, 조로아스터는 오로지 선만을 추구하고 ‘아후라 마즈다’만을 신들의 신으로 보기 때문에 이원론적 일신교라고 볼 수 있다. 조로아스터의 역사로 보건대, 이후 발생하는 모든 일신교적인 사고 전환에 영향을 미친 최초의 일신교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조로아스터가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으나, 많은 학자들이 기원전 1000년 전 사람으로 본다.(최대 BC1400년까지 추정) 교리를 전승하던 방식과 언어가 북쪽으로부터 이란·인도인이 내려와서 정착할 시기의 언어와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는 그리스식 발음이고, 그들의 ‘아베스타’언어로는 자라투쉬트라(Zarathustra)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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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인도인들은 북방의 유목민족이었다. 이들이 바로 아리얀 민족이다. 덥고 습한 인도로 내려가 정착한 아리얀들과 달리 이란에 정착한 아리얀들은 춥고 거친 기후조건 때문에 자신들의 관습과 종교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의 다신교적인 전통을 보면 신기한 것이 있다. 자연물을 신적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머리속에 생겨나는 수많은 관념들까지도 모두 ‘영’적인 신의 활동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신은 물론 ‘거짓’이라는 신이다. 사실 ‘거짓’이란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관념이고, 거기서 수많은 나쁜 덕목이 파생된다. 그 자잘한 감정이나 덕목 모두 ‘영’의 활동이다.

아베스타는 다신교도 이란인들이 고대 인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세계가 신보다 작은 수많은 영들이 사는 곳이며일부 영들은 친절하지만 다수가 사악하다고 생각했음을 보여준다이런 악의 세력 중 일부는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그를 직접 해코지하려 했다. (…) 그리고 그 너머원시의 숲과 평원은 위협으로 가득 차 있었다악의 세력은 어디든지 위협했지만금지 주문이나 달래는 선물 등의 적절한 예방책을 통해 격퇴할 수 있었다.(메리 보이스조로아스터교의 역사민음사, 124)

다신교 전통에서 만물에 깃든 영과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에겐 ‘자기’가 없다. 자아의 개념도 없으니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도 개인의 일이 아니라 집단의 일이 된다. 한 개인이 저지른 일도 그 개인의 의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나쁜 감정과 행위들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 발현을 감지할 수 있는 모든 힘들을 살아 있는 실재로 인식하는 것이 실제로 인도·이란의 일반적 관습이라 말해진다이리하여 정의용기진실 등 지금은 하나의 추상으로 간주되는 것들이 고대에는 힘으로 여겨졌다.”(같은 책, 53)

조로아스터가 한 일은 수많은 신들 중 아후라 마즈다에게 최고의 힘을 부여하고, 그의 승리를 응원하고 대리하는 인간의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제 인간은 아후라 마즈다가 탄생시킨 육체를 가진 자로서, 그 육체로 나쁜 영이 깃든 육체에 맞서 싸우고 그들을 끝장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인간에게 개인의 윤리가 부여된다. 다신교 신앙이라는 조건에서 ‘신들의 신’을 추상해내고, 그 초월적 힘과 인간의 도덕을 연결한 것이다.

하지만 이란인들은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다시 다신교 전통과 결부시켜서 토착신앙으로서의 조로아스터교를 이어갔다. 일신교 사상은 유목민족의 특성에 맞게 변형되어갔다. 이슬람이 쳐들어 왔을 때, 조로아스터교를 가장 혐오하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은 이유는, 조로아스터교가 페르시아 사람들의 민족적 특징과 문화를 가장 잘 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악’과 대항하려는 그들의 투쟁의지가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조로아스터를 알고 나니, 『천일야화』에 한 걸음 쑥 들어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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