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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 타고 천일야화로] 모험은 대칭성을 향한다(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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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09-13 07:51 조회6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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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은 대칭성을 향한다(下)

김희진(감이당)

한 왕자가 있었다. 잘생기고 돈도 많고 좋은 교육을 받았다. 그는 성인이 되자 옆 나라의 공주와 결혼을 해서 나라를 잘 다스리며 훌륭한 왕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라고 이야기하면 정말 김이 샌다. 이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왕자가 왕자로 살아서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가 없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알라딘이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 최고의 영예를 누리기를 원했다. 마찬가지로 왕자가 등장하면 이야기의 방향은 그가 거지가 되는 쪽을 향해야 흥미진진해진다. 「왕자와 거지」의 동화처럼 모든 이야기는 양 극단의 신분과 부귀를 역방향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다. 우리 인간은 대칭성을 원하며, 이야기를 통해 꾸준히 대칭성을 실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 천일야화의 왕자들은 어떤가? 천일야화의 특징은 왕자의 역경이 그냥 역경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마법이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왕자들은 종종 동물이 된다. 개, 원숭이, 새…종류도 참 다양하다. 그들의 모험은 왕자의 신분을 벗는 것 뿐 아니라 인간이 아닌 것까지도 되어야 하는 가혹한 통과의례다.

제빵사가 된 재상

아랍의 작은 왕국들은 술탄이 다스리고 재상이 보조하는 구조로, 이야기에는 왕과 더불어 재상이 최고 권력자로 등장한다. <누레딘 알리와 베드레딘 하산 이야기>는 너무 황당한 두 형제의 싸움으로 시작한다. 사이가 좋던 형제가 나란히 이집트 카이로의 재상으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미래의 일들에 대해 싱거운 농담을 했다. 둘이 같은 날 결혼해서 같은 날 아이를 낳고, 하나는 딸 하나는 아들이 나오면 사촌지간인 둘을 결혼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참금 문제에서 둘의 의견이 갈렸다. 내 아들이 더 훌륭할테니 지참금을 많이 가져오라는 둥, 내 딸을 얻고 싶으면 네 아들이 돈을 마련해야 할 거라는 둥, 농담으로 시작한 자식들 혼사얘기가 돈 문제에서 진심이 되고 만다. 아직 미혼인 두 젊은 재상은 있지도 않은 미래의 아들, 딸 문제로 갈라섰다. 동생은 아예 나라를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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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떠난 동생 누레딘 알리는 발소라에 가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재상이 되고, 그곳에서 결혼해 아들 베드레딘 하산을 낳는다. 이 베드레딘 하산이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베드레딘 하산은 아버지가 죽자 발소라의 재상 자리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왕의 미움을 받아 쫓겨나고, 도망치던 중에 정령들의 장난에 휘말리고 말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던 베드레딘을 본 정령과, 카이로의 형이 결혼해서 낳은 딸의 미모에 감탄한 정령이 만나서 자기들이 감탄한 이 남녀에 대해 칭송을 하다가 둘을 연결해 주자고 한 것이다.

이 발칙한 장난으로 도망자의 신세로 노숙하던 베드레딘은 이 여인의 결혼식으로 옮겨가 그 첫날밤을 가로채고 다시 마법에 의해 다마스쿠스로 옮겨지게 된다. 아니, 왜 정령들은 쓸데없이 남의 인생에 끼어들어서 둘을 결합시키고, 아무 이유없이 그를 다시 멀리 다마스쿠스로 옮겨 놓았을까? 아~무 이유가 없다. 카이로의 두 형제가 시답지 않은 일로 싸우고 나라를 등지기까지 했던 것처럼, 이 정령들은 그냥 선심 쓰듯 이 선남선녀의 하룻밤을 만들어준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에서도 요정들은 인간사에 개입해 쓸데없는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이 쓸데없는 사건들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란 자고로 앞뒤가 딱딱 인과로 맞아 떨어지는 합리성과 논리를 뛰어넘기 마련이다. 여기서 정령은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며 그래서 쓸데없는, ‘재미’를 만들어 내는 역할이다.

이렇게 극적인 하룻밤을 보내고서 또다시 완전히 다른 도시에 뚝 떨어져버린 베드레딘은 미친사람처럼 배회하다가 한 제빵사의 집에 의탁하게 되고, 그로부터 7년간을 다마스쿠스에서 제빵사의 삶을 산다. 처음 다마스쿠스의 사람들이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을 때, 그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루 사이에 발소라에서 카이로로, 카이로에서 다마스쿠스로 날아다녔다. 그는 발소라에서 재상의 아들이었다가 도망자가 되었고, 카이로에선 결혼식의 새신랑이었고, 다마스쿠스에선 떠도는 거지신세로 전락했다. 이 마법에 베드레딘은 넋이 빠질 지경이고, 독자 역시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없이 빠져든다.

의외의 지점은 베드레딘이 너무나 훌륭한 제빵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가 물려받은 제과점은 그의 성실성과 장인정신으로 다마스쿠스의 손꼽히는 맛집(!)이 되었다. 그가 만든 놀랍도록 맛있는 타르트 때문에 그는 7년만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생긴 아들(마법이 이루어진 그날 밤에 아이도 만들어짐)을 만나게 되고, 어머니도 만나게 되고, 딱 하룻밤 자고 헤어진 신부와도 만나게 된다. 이렇게 긴긴 여행 끝에 다시 카이로로 돌아온다. 이 모험은 아버지 누레딘에서 시작되었고, 그 아들 베드레딘이 마법과 역경의 주인공이 되어 쌩 고생을 하다가, 또 그의 아들 아지브에 이끌려 카이로로 돌아오는 복잡하고 긴 내용이다. 통과의례의 모험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가 못 돌아오면 그의 분신인 아들이 돌아온다.

cristian-escobar-abkEAOjnY0s-unsplash우리 삶에도 이런 마법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정령들의 장난처럼 아무 이유 없이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그 수많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다 그런 것들인 셈이다.

우리 삶에도 이런 마법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정령들의 장난처럼 아무 이유 없이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그 수많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다 그런 것들인 셈이다. 베드레딘은 왜 내게 이런 일이? 라고 억울해할 법도 한데 그는 그에게 닥친 일에 어리둥절해 하다가도 그냥 선선히 운명이 이끄는 대로 했다. 남의 신부를 가로채라는 정령들의 주문대로 신부를 취해 결혼을 하고, 다마스쿠스에서는 자기의 양자가 되라는 제빵사에게 의탁해 그의 아들이 되어 제빵 기술을 배운다. 그는 과거의 자기의 신분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재상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예 잊고 이후의 미래는 제빵사로서 승부를 보려고 한 것일까? 얼마나 성실히 배웠으면 그토록 맛있는 빵을 만든단 말인가!^^ 운명의 장난으로 빚어지는 기구한 삶을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카이로에 돌아왔을 때, 장인이자 큰아버지인 재상은 마치 그가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연극적 상황을 만들어서 그를 놀래준다. 재상의 딸과 첫날밤을 보낸 다음날인 듯 착각하게 한 것이다. 정말 꿈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리둥절한 우여곡절을 겪고 돌아온 베드레딘!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의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생기지도 않은 아들딸 이야기로 농담을 하던 바로 그 자리에 예언을 실현하는 아들처럼 돌아왔다. 정말 마법 같은 이야기다.

탁발승이 된 왕자

길 떠난 모험가들이 통과의례를 겪고서 모두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냥 그 길로 먼 길을 떠나 완전히 다른 삶에 안착하는 경우도 많다. 조베이드네 집의 야회에 우연히 들르게 된 세 탁발승들은 모두 왕자였다. 그들은 모두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모험을 겪게 되었는데, 돌아갈 나라가 없어서, 또는 그냥 돌아가지 않아서 떠도는 출가인이 되었다. 그 중 두번째 탁발승의 이야기는 이 왕자가 마법으로 원숭이가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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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육을 받고, 뛰어난 서예솜씨를 지닌 왕자가 세상을 배우고 오겠다며 야심만만하게 길을 나섰다가 곧바로 도둑에게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친다. 그는 어느 마을에 나무꾼으로 정착하게 되는데 어느 날 나무 밑둥에서 지하동굴을 발견하게 된다. 지하동굴엔 뭐가 있었을까? 보물? 신세계? 바로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한 정령에게 잡혀서 그 정령의 정부 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정령의 눈을 피해 이 남자와 사랑을 나누다가 아뿔싸! 딱 걸리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여자는 무참히 살해되고, 남자는 원숭이가 되었다.

보통 옛 이야기에 지하세계가 나올때면 종종 무의식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무의식 세계는 원숙한 여인을 통해 성의 쾌락을 맛보는 단계로 나아간 것일까? 이 왕자는 비겁하게도 여인을 구하지 않고, 또는 같이 죽지도 않은 채, 증거불충분으로 원숭이가 되는 수준에서 응징당한다. 하나의 부끄러운 과오를 남긴 셈이다.

이 왕자는 다른 여인에게 다시 한 번 목숨을 빚지게 되는데 원숭이가 어떤 왕 앞에 불려가 서예 솜씨를 뽐내게 되었을 때, 마침 마법을 할 줄 아는 공주가 이 원숭이의 마법을 풀어주다가 죽은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정령을 죽이긴 했지만, 자기도 마법의 불길에 해를 입어 보이지 않는 불길에 타죽고 말았다. 이 왕자는 그 길로 스스로 탁발승이 되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돈다.

이 왕자는 왜 마법이 풀린 후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왕자의 모험은 도둑을 만나 알거지가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자기의 고귀했던 신분이 ‘0’으로 세팅되면, 거기서부터 겪는 고생이 그의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인과의 쾌락을 취하다가 한 여인으로 하여금 목숨을 잃게 했고, 또 원숭이 마법을 풀어주려는 마법사 공주마저 불에 타죽게 했다. 그가 겪는 모험에서 그는 무엇을 배우고 해내기보다는 다른 여인들을 희생 시키고 말았다. 순전히 자신의 경솔함 때문에.

알라딘이 굴에서 탈출해서 새로 태어났을 때, 베드레딘이 다마스쿠스에서 제빵사가 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이 왕자는 자기 힘으로 뭔가를 한 것이 없고, 계속 위험을 초래하면서 남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통과의례를 통과하지 못한 자가 돌아갈 곳은 없다. 그 위험에 잡아 먹히거나 황야를 떠돌 뿐이다. 왕자가 탁발승이 된 것은 이 대칭성을 향한 모험에서 자기 몸 으로 그 대칭의 세계를 겪어내고 실현하지 못한 채, 그저 여인과의 쾌락에 안주하려 했던 안일함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는 스스로 수염뽑고 머리깎은 후 고행과 참회의 길을 떠났다.

화려한 마법이 난무하는 천일야화의 모험은 왕자건 거지건 모험을 떠난 이들을 리셋하는 통과의례다. 리셋이 되면 자기의 이름도 신분도 잃고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때 겪게 되는 것들은 언제나 자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계의 반대 방향으로 흐르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과의례가 된다. 이런 마법이 우리 삶에도 존재한다. 기존의 내 모습으로 회귀할 것인가? 새로운 삶으로 하나씩 배워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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