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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2] 무상(無常)함의 항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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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10-25 22:27 조회1,2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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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함의 항상함

이윤지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雷風恒(뇌풍항) 

恒 亨 无咎 利貞 利有攸往

항은 형통하여 허물이 없으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고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初六 浚恒 貞 凶 无攸利

초육효, 깊이 파고들어 오래 지속하는 것이다. 고수하는 것이라 흉하니 이로울 바가 없다.

九二 悔亡

구이효, 후회가 없어진다.

九三 不恒其德 或承之羞 貞 吝

구삼효, 덕을 오래 지속시키지 못한다. 간혹 수치로 이어질 것이니 그런 자신을 고수하면 부끄럽다.

九四 田无禽

구사효, 사냥하는데 짐승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九五 恒其德 貞 婦人吉 夫子凶

육오효, 그 덕을 오래 지속하여 행하면 올바르다. 부인의 경우는 길하고 장부의 경우는 흉하다.

上六 振恒 凶

상육효, 오래 지속함이 흔들리는 것이니 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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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괘에서 항(恒)이란 오래도록 지속함(久)을 말한다. 뭔가를 오래도록 지속한다고 하면 어떤 것을 목표로 두고 마음을 내어 꾸준히 노력한다든가,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뭔가를 지키며 고수하는 게 떠오른다. 그런데 주역의 항괘가 말하는 항상함이란 이런 상식적인 생각과 매우 다르다.

단전에 의하면 강함과 유함이 만나 서로 호응하고(剛柔皆應) 우레와 바람이 만나 함께 작용하듯이(雷風相與) 끊임없는 운동성과 관계 속에서 상호 교류하며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상태, 그것이 항이다. 마치 태양과 달, 사계절이 지속하는 운동 속에 변화하며 무심하게 만물을 돌보고, 성인이 매 순간의 변화 속에서 도에 충실하지만 애써 어떤 공을 세우려고 하지 않듯이 말이다. (日月得天而能久照 四時變化而能久成 聖人久於其道而天下化成) 즉, 천지자연과 성인이 보여주는 항상함의 도란 다름 아닌 변화, 그 자체인 것이다. 무상함이 항상함이 되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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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도록 지속되는 무상한 변화 자체가 항상함이라면 여기엔 항을 주도하는 주체로서의 ‘나’라든가 항을 추구하는 의도나 목표 따위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항상함에 이른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뭔가를 꾸준히 오래 해나간다고 하면 거기엔 늘 어떤 식의 명분이든 목표든 이런 저런 마음이 끼어들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서 항괘의 효들은 하나같이 길(吉)하기 어려운 상황인 듯하다. 처음부터 조바심을 내어 잘해보려고 한다거나, 고집스럽게 자신을 고수하다가 수치스러워진다거나 혹은 동요하고 흔들리는 마음으로 흉하게 실패하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구사효는 매우 낙심할만한 상황이다. 사냥을 하러 나갔는데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하니 말이다. (九四 田无禽) 구사는 항괘에서 뭔가 행동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 왜일까? 사냥을 나가 새 한 마리라도 잡으려면 고요히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구사는 외괘인 진(震)괘 아래에 들썩거리며 움직이고 있으니 이미 사심이 작동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구사는 음효가 와야 하는 자리에 양효여서 움직이며 헛되이 힘만 쓸 뿐, 아무런 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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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 수영사에 한 획을 그은 조오련이란 선수가 있다. 그는 어려서 선수가 되기 위한 엘리트 훈련 코스를 밟지 않고 오직 불굴의 의지와 피나는 노력으로 국내외 대회에서 수 많은 신기록을 세우며 ‘아시아의 물개’로 이름을 드날린 독특한 이력의 선수다. 그리고 은퇴 후에 대한 해협 횡단, 도버 해협 횡단, 한강 600리 종주, 독도 33바퀴 횡단 등 대회 정식 종목이 아닌 원영(遠泳)에서도 독보적인 기록을 세웠다.

바다나 강물에서 하는 원영은 조건이 통제되는 경기장에서 하는 수영과는 달리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날씨, 파도, 조류에 따른 진로 변경, 물의 온도에 따른 체온 저하, 상어의 습격, 예상치 못한 장애물 등등… 이런 다양한 변수에 끊임없이 대응하며 수십 km에서 수백 km에 이르는 거리를 수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도전이다. 그런데 이런 변수들 속에 장거리 종주를 해낸다는 것은 끊임없는 신체의 운동성 그리고 물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호응하고 교류하며 오래도록 나아가는 항의 상태와도 비슷하다.

조오련은 독도 횡단 후 한 인터뷰에서 이런 속내를 털어놓았다. 비록 독도 횡단에 성공했지만 기쁘지는 않다고. 이유인 즉, 예전에 한강 600리를 도강할 때 어떤 특별한 상태를 경험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생을 했어야 하는데 두 아들과 함께 종주를 하느라 편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나름의 원인을 얘기하며 말이다. 이는 사냥을 갔는데 아무 것도 잡지 못한 항괘의 구사와 비슷하다.

본래 뇌풍항의 구사효는 지천태 (䷊)괘의 맨 아래에 있는 초구효가 위에 있는 사효의 자리로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이 구사는 음의 자리에 양이 온 것이므로 위치가 합당하지 않으면서도 태(泰)의 편안함을 누리려한다. 마땅히 아래로 내려가서 교류해야 할 초육은 만나지 않고 편안하게 위의 두 음들과 교접하면서 움직이려고만 하니 구사는 호응하고 교류하는 변화 속에서 ‘나’를 내려놓고 무심하게 전진하는 항을 이루지 못한다. 조오련도 단독 수영이 아닌 두 아들과 함께 하는 횡단 수영을 하며 두 음효와 교접하며 편안함을 구하는 구사와 같은 마음이었던 게 아닐까? 그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해도 무상한 가운데 어떤 마음을 붙잡아 고수하려고 할 때 항은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

bed-1284238_640그런데 이 구사는 음의 자리에 양이 온 것이므로 위치가 합당하지 않으면서도 태(泰)의 편안함을 누리려한다.

그렇다면 조오련이 독도 횡단 이전에 한강 600리를 홀로 수영하며 경험했다는 특별한 상태란 어떤 것이었을까?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왜 그토록 원영에 몰두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런 답변을 했다.

“젊어서는 이름을 남기겠다는 혈기 때문에 했는데 2003년 한강 도강을 하면서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됐어요. 잠수교에서 여의도까지 마지막 구간에서 갑자기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는 순간을 맞았어요. 한 5분 지난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2시간이 흘렀습디다. 힘들고 권태로운 게 싹 없어지는 무아지경. 올 봄 제주도에서 혼자 훈련하면서도 잠깐 잠깐 그런 현상을 경험했어요.”

(문화 일보, 2005.9.10)

swimmer-3752496_640젊어서는 이름을 남기겠다는 혈기 때문에 했는데 2003년 한강 도강을 하면서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됐어요.

그가 250km나 되는 거리를 홀로 종주하기로 결심했을 당시 그는 이미 50대의 나이로 수영계에서도 일찌감치 은퇴한 원로였다. 그리고 부인을 갑작스럽게 잃고 운영하던 사업마저 모두 정리한 뒤였다. 그가 장거리 수영의 마지막 구간에서 잠시나마 자신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경험을 한 것은 그 오랜 시간 강물을 따라 헤엄을 치면서 어느 순간 마주치는 물살, 바람, 장애물 등 강물의 변화 그 자체와 혼연일체가 되어 나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무상한 변화 속에 오직 끊임없이 움직이며 무심하게 나아가는 것이 항이듯 말이다. 그는 물에 대해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물은 힘으로 누르려하면 안됩니다. 연인같이 안아줄 때 그 물은 내 물이 됩니다. 물을 친구처럼 믿어야 합니다.”

강(剛)과 유(柔)가 교류하고, 뇌(雷)와 풍(風)이 서로 응할 때 서로는 상대를 마주하여 자연스럽게 존립시키는 항구불변한 도가 된다. 조오련도 강물 속에서 그 순간 아무런 목적도 사심도 없이 물과 서로 자연스럽게 통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물과 교류하고 감응하며 ‘나’가 사라지고 다만 지속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항의 상태 말이다. 오래 지속한다고 모두 항한 것은 아니다. 항이란 사심을 내려놓고 스스로 변화 그 자체가 될 때만이 가능하다.

급작스런 죽음으로 비록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30세 때 헤엄쳐 건넜던 대한 해협을 60세 때 다시 한 번 건너기 위해 준비를 하던 조오련은 이런 말을 남겼다. “수영은 힘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무념무상으로 헤엄을 칠 때 물이 친구로 받아줍니다. 물과 정말 친구인지 이번에 마지막으로 알아볼 예정입니다.” 그가 이런 마음으로 생애 마지막으로 대한 해협을 헤엄쳤다면 그는 바닷물과 하나가 되어 오래도록 물살과 함께 전진해 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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