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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사용 설명서]한가와 여유, 철학적 삶의 시작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9-23 11:15
조회 : 275  
안상헌(감이당 금요대중지성)

휴식은 부끄러운 것이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지구촌 전체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 19’라는 신종 전염병을 앓고 있다. 이 신종 전염병으로 인해 일상이 예전보다 훨씬 바빠진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그야말로 한가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지난 2월 코로나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기에 이곳이 생활 기반인 나로서는 강제적으로 모든 일상을 멈추게 되었다. 매주 서울을 오가며 하던 세미나, 수업, 강의는 물론 대구에서 하던 강의도 멈추었다. 내 일상의 반경은 내가 사는 아파트와 아파트 앞에 있는 산을 잠시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2개월 이상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내 마음은 하루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나마 한가지 위로할 것이 있다면 그때까지 초고 상태에 있었던 글이 마무리되어 6월에 『내 인생의 주역』(8인 공저)이란 책으로 출판된 것이었다. 이 성과가 없었다면 지난 몇 개월은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당시 나는 해야 할 일들, 하기로 계획되어 있는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렇게 나는 한가와 여유가 삶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왔다. 하지만 니체는 나의 이런 삶의 패턴이 가지는 왜소함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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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서울을 오가며 하던 세미나, 수업, 강의는 물론 대구에서 하던 강의도 멈추었다.

이제 사람들은 휴식을 부끄러워하며오랜 사색에 대해서는 거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까지 한다생각하면서 시계를 손에 들고 있고점심을 먹으면서 주식 신문을 본다.언제나 무언가를 놓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니체즐거운 학문책세상, 297-298)

현대인들은 딱 이렇게 산다. 나 또한 이렇게 살았다. 실제로 바쁘기도 하고, 안 바빠도 바쁜 척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잘 살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불안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현대인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한가함 없이 바쁘게 사는 걸 잘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다 간혹 한가한 시간이 있게 되면 이를 어찌하지 못하고 금방 우울해하고 괴로운 시간으로 생각한다. 간혹 ‘사색하는 삶’이니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짧게 금방 지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 시간이 길어질 경우 휴식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더 길어질 경우 불안하고 초조해 한다. 지난 첫 번째 코로나 유행기에 내가 경험한 것도 이렇다. 나의 일상은 우울과 불안의 반복이었고, 억지로 스스로를 달래면서,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다시 강제된 한가와 여유

그런데 그 동안 ‘불안 불안’했던 코로나는 8월이 되어 전국을, 그것도 이번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확산되었다. 나의 일상은 다시 멈추었다. 두 번째라 더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이번의 멈춤은 첫 번째의 멈춤과는 약간 다르게 경험하고 있다. 물론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고, 또 줌(Zoom)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세미나나 강좌를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지속하게 해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 이 사태를 받아들이는 약간의 내성이 생긴 점과 새로운 기술을 함께 익히며 세미나와 강좌를 지속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나에게 강제로 주어진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니체와 함께!

니체는 20대 시절,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니체는 낙마로 인한 큰 부상과 몹쓸 병까지 앓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에도 심한 두통, 시력의 약화 등 많은 병을 심하게 앓았다. 바젤 대학의 교수직을 10년 남짓하고 그만둘 정도로 그의 병력은 심하고 화려했다. 이렇듯 ‘니체와 병’은 언제나 함께 따라다니는 수식어이다. 하지만 훗날 니체는 자신의 병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병은 내게 나의 모든 습관으로 완전히 되돌아갈 권리를 주었다 내 병은 망각을 허락했고망각하라고 명령했다 내 병은 내게 조용히 누워 있는 것한가로움기다림과 인내의 필요를 선사했다 ……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눈이 홀로 온갖 책벌레들에 안녕을 고했다꾸미지 않고 말하자면 문헌학에 안녕을 고했다 나는 에서 구제되었으며몇 년간 더 이상 독서하지 않았다이것이 내가 자신에게 베푼 최고의 은혜였다!(니체이 사람을 보라책세상, 409)

 

병에 따른 고통이야 누구에게나 비슷하겠지만, 병과 고통을 사유한 방식은 니체와 우리가 매우 다르다. 니체는 자신의 병 때문에 일상이 마비된 삶을 살지 않았으며, 자신의 병을 빨리 지나가야만 하는 것으로도 인식하지 않았다. 니체는 자신에게 다가온 병을 자신의 습관을 바꾸는 것으로 사유하고 그렇게 활용했다. 습관! 바꿔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습관이다. 2020년 봄, 우리에게 강제로 주어진 2개월 이상의 시간 동안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을 겪으면서 전과는 다른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참에 좀 쉬어야지!’, ‘아이들 학원도 이렇게까지 보낼 필요가 없네!’, ‘굳이 학교를 매일 가지 않아도 되네! ’ ‘회사 일도 집에서 가능하네’ ‘아빠도 요리 실력이 좋네!’ ‘나라에서 생활비를 주기도 하네!’ 등등. 이렇게 우리는 제도에 대해서, 각자의 삶에 대해서, 꼭 지금과 같은 방식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도 성과라면 중요한 성과이다. 하지만 이 약간의 다른 생각들이 각자의 습관을 바꾸는 것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직도 우리는 불안의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의 시기를 가장 불행한 시기로 각인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니, ‘코로나 앵그리’, 혹은 ‘가장 불운한 세대’ 등등의 말이 우리의 의식에 떠다니는 한 이 시간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전히 우리는 이 시간을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심리 상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비록 강제로 주어지긴 했지만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우리도 니체처럼 자신의 습관을 바꾸는 기회로 삼아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습관을 잊는 연습부터 시작하자. 그 첫 번째로 바쁘다는 습관적인 말을 멈추고, 바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을 억지로라도 해보자. 니체는 병이 ‘조용히 누워 있는 것, 한가로움, 기다림과 인내의 필요’를 자신에게 선사했다고 받아들였으며 이것이야말로 ‘생각하는 삶’을 가능하게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안 하느니 차라리 무슨 일이라도 한다”(니체즐거운 학문책세상, 298)는 말을 금언처럼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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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강제로 주어지긴 했지만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우리도 니체처럼 자신의 습관을 바꾸는 기회로 삼아 보자.

 

나로의 귀환

코로나가 아니어도 우리는 한가하게 쉬는 사람이 많은 시대를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가와 여유’를 다르게 사유할 수는 없을까? 아니! 우리는 반드시 이 시대를 다르게 사유해야만 한다! 지금의 사태가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사유의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과거의 습관으로 또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의 사태를 낳은 우리의 문명 패턴은 점점 더 강화될 것이고, 더 큰 위험이 닥쳐올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우울하고 불안해하면서, 자기 삶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습관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 습관을 버려보자. 이 습관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에게, 아이들에게, 또 주변을 향해 그동안 다그쳤던 행위를 멈춰 보자.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사냐고? 또 이런 걱정과 불안을 말할 것이다. 맞다.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국가가 한번 제대로 먹여 살려 보자. 해방 후 70년 동안, 우리는 쉬지 않고 국가와 경제 발전을 위해 달려왔다. 그 성과를 축적한 사람들은 그 축적된 것을 가지고 당분간 각자 살아가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전하는 ‘기본 소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기본적 삶이 흔들리지 않는 사회를 지금 아니면 언제 실험해 볼 수 있겠는가! 나라가 돈이 부족하다면 기업도 어떤 형태로든 축적된 것들을 새로운 사회의 실험을 위해 기꺼이 내놓을 필요가 있다.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 고난의 시기에도 소수의 축적이 계속되고 특정 지역의 부동산이 오르고 수천조의 여유 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세상이 미래의 비전이 있는지, 아니면 70년간 축적된 자산의 흐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사회를 만들어보는 것이 나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이다. 물론 나는 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러한 큰 사유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훗날 지금의 어려움은 니체의 고백만큼 큰 행복이었고, 이를 통해 최상의 회복이 가능했다고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일이니 나로서는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으로 시대적 소명을 다한다. 하지만 이러한 바램과 함께 각자 자신에게 해야할 일이 더욱 중요하다.

나의 삶에서 가장 아팠고 고통스러웠던 그 시절에 내가 느꼈던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나는 결코 가져보지 못했다 이러한 나로의 귀환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면 아침놀이나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를 보면 된다 그것은 최상의 회복 그 자체이다!……다른 것들은 여기서 파생되는 것들일 뿐이다.

(니체이 사람을 보라책세상, 410)

 

니체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팠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다르게 겪었다. 그는 그 시절을 빨리 지나가야만 하는 시간이라고 조급해하지 않았다. 니체는 고통스러운 시대와 개인사를 살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며 마냥 견디지 않았다. 니체는 이 시기를 ‘나로의 귀환’이 이루어진 시기로 사유하고 활용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겪게 되는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 나는 어떻게 사유하고 일상을 살아가면 좋을까? 지금 나는 ‘니체 사용 설명서’를 연재하고 있다. ‘니체 사용 설명서’의 기획이 그렇기도 했지만, 나의 글쓰기는 ‘나로의 귀환’ 과정이고, 그 과정은 곧 나의 명랑성 회복 그 자체이다. 훗날 내게 누군가 2020년의 암울한 시기를 어떻게 보냈느냐고 물을 때, 첫 번째 한가한 시간에 세상에 나왔던 『내 인생의 주역』과 두 번째로 맞은 한가한 시기에 연재했던 『니체 사용 설명서』를 보여주면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로 귀환’하는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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