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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2] 크게 길할 수 있는 다툼의 길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9-11 09:23
조회 : 409  
송형진(감이당 장자스쿨)

天水 訟 

訟, 有孚, 窒, 惕, 中吉, 終凶. 利見大人, 不利涉大川.

송괘는 진실한 믿음이 있으나 막혀서 두려우니, 중도를 지키면 길하고 끝까지 가면 흉하다. 대인을 만나면 이롭고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지 않다.

初六, 不永所事, 小有言, 終吉.

초육효, 다투는 일을 끝까지 하지 않으면 약간 구설수가 있으나 결국에는 길하리라.

九二, 不克訟, 歸而逋, 其邑人三百戶, 无眚.

구이효, 다툼을 이기지 못하여, 돌아가 도망가니, 그 마을 사람이 3백호 정도이면, 화를 자초하지 않으리라

六三, 食舊德, 貞厲, 終吉, 或從王事, 无成.

육삼효, 예전부터 해오던 일을 하며 먹고살아 가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위태로우나, 결국에는 길하다. 혹 나랏일에 종사하여도, 공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없다.

九四, 不克訟, 復卽命, 渝, 安貞吉.

구사효, 다툼을 감당하지 못하니, 돌아와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에 나아가고, 마음을 바꾸어 편안하게 여기고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다.

九五元吉.

구오효다툼에 크게 길하다.

上九, 或錫之鞶帶, 終朝三褫之.

상구효, 혹 큰 띠를 하사받더라도, 하루아침이 끝나기도 전에 세 번 빼앗기리라

나는 다툼이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렇지가 않다. 각자의 욕망이 있고,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로 인해 다툼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내 생각처럼 움직이고 반응해주기를 기대하면서 다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망상이다. 그러므로 다툼이 없기를 바라기 보다는 생길 수밖에 없는 다툼을 어떻게 잘 다스릴 것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일 것이다. 주역 64괘에서 이 다툼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 풀어쓴 괘가 천수송(天水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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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든 것이 다 내 생각처럼 움직이고 반응해주기를 기대하면서 다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망상이다.

이 괘의 상은 위에는 건(乾)괘, 아래에는 감(坎)괘로 이루어졌다. 위에 있는 하늘[天]은 강건하고 강폭하며, 올라가려는 성질이고, 아래에 있는 물[水]은 험난하고 막히며, 내려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서 다투는 모습이다. 험난함과 강건함의 만남이니 다툼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어 보인다.

괘사에서는 다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풀고 있다. 먼저, 다툼은 내면의 진실한 믿음[有孚]을 전제로 한다. 누구나 스스로가 믿고 있는 생각이나 입장, 가치가 있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수용하고 공감하게 되면 다툼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고 다른 생각과 입장에 의해 막히게[窒] 되면 다툼이 생기게 된다. 그 다툼을 두려워하면서[惕] 적절한[中] 순간에 그만두면 길하지만[吉], 갈 때까지[終] 가게 되면 흉하게[凶]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툼의 잘잘못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고[利見大人], 큰 강을 건너는 것처럼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이롭지 않다[不利涉大川]고 한다.

이처럼 송괘가 다툼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다툼에서 승리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다툼의 끝에서 이기게 되어 상을 받게 되면[或錫之鞶帶], 하루아침이 끝나기도 전에 다뺏기게 되는[終朝三褫之]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상구효는 가르쳐주고 있다. 여기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다툼의 도는 이기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툼의 승패가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 맞게 다툼을 길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것에 있음을 효사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초육효는 다툼을 오래 끌지 않아야[不永所事] 길하고, 구이효는 의리상 다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피해야[歸而逋] 화를 자초하지 않을 수 있으며, 육삼효는 분수에 맞게 올바름을 굳게 지켜 다툼을 위태롭게 여겨야[食舊德貞厲] 길하고, 구사효는 다툴 수 있는 힘은 있지만 다투려는 마음을 바꾸어서 편하고 곧게 하면[渝安貞] 길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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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의 승패가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 맞게 다툼을 길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것에 있음을 효사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구오효는 다툼에서 크게 길하다[訟 元吉]고 한다. 다툼이 있을 때 점을 쳐서 이 구오효가 나오면 다툼에서 무조건 이긴다는 식으로 해석하기 쉽지만, 상구효를 보면 그런 해석이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다툼을 끝까지 밀고 나가 상(賞)을 받은 자가 재앙을 입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툼에서 크게 길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우선, 구오효가 중정(中正)의 도()로 존귀한 자리에서 다툼을 다스릴 수 있는 자(『주역』, 194쪽, 글항아리)라는 점을 주목해보자. 공자의 설명도 다툼에서 길한 것은 중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象曰, 訟元吉, 以中正也] 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정은 무엇인가? 중정은 기본적으로 각 괘에서 효의 위치와 관련된다. 양의 자리(초효,삼효,오효)에 양효가 오고, 음의 자리(이효,사효,상효)에 음효가 오면 정(正)이라고 한다. 중(中)은 내괘와 외괘의 각각의 가운데인 이효와 오효의 자리이다. 중정의 개념에는 이러한 위치적인 것 이외에 특정한 상황에 알맞게 실천하는 의미도 함께 가진다. 다시 말하면 중정은 때에 알맞은 적절함[中]과 올바름[正]이라고 할 수 있다. 송괘의 구오효는 중하고 정한 자리이고, 다툼에서 적절함과 올바름을 실천할 수 있는 자이기에 다툼이 깊은 연못에 들어가는[入于淵] 것처럼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다툼을 크게 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사소한 다툼이 주먹다짐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다툼에서 암묵적인 규칙이 하나 있었다. ‘먼저 코피가 나는 사람이 진다’는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훌륭한 규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사소한 다툼이 주먹다짐으로 까지 커지면 구경하는 아이들이 둘러싸기 시작한다. 그들은 구경꾼이자 그 싸움의 심판관이 된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어 누군가의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둘러싸고 있던 한 아이가 ‘코피가 난다’고 소리를 지르고, 그 순간 싸움의 승패는 결정이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싸움이 진행되지 않게 싸운 둘을 구경꾼이자 심판관인 아이들이 갈라놓는다. 코피로 인해서 주먹다짐까지 간 싸움을 적절한 순간에 그만두게 한 것이다. 아마 그 규칙이 없었다면, 그래서 싸움이 격해진다면 싸우는 아이들은 뼈가 부러진다든지 살이 찢어진다든지 등등… 더 심한 상처가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툼을 잘 다스려서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중정한 자리의 구오효 역할을 한 것은 그 규칙과 그것을 지키는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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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크고 작은 많은 다툼들이 있다. 그 중에서 현재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다툼은 일상을 무너뜨리고, 생존을 위협하며, 문명의 대전환을 야기하고 있는 코로나19와 관련된 것일 게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을 보면, 인류는 이미 코피가 터진 정도가 아니라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진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다툼을 크게 길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중정한 구오효는 무엇일까? 바이러스를 종식시킬 수 있는 치료제일까? 세계적인 석학인 제레미 리프킨은 코로나19를 가리켜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된 모든 생물이 대대적인 이주를 하고 있는 증거이고, 바이러스는 이 동물의 몸을 타고 인간에게 왔다”고 설명한다. 또한 반다나 시바는 “지난 30년 동안 300여개의 전염병이 숲에서 나왔다”는 과학적 진실을 지적하고 있다.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 2020.6.25. 경향신문기사 참조) 이러한 석학들의 말을 참고해보면,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은 당장의 문제를 해소하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바이러스로부터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다툼을 크게 길하게 할 수 있는 중정한 구오효는 아닌 듯하다. 이 다툼을 크게 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금의 엄중한 상황이 생태계 파괴와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가 부른 인간문명의 위기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그동안의 환경파괴와 물질숭배의 습관적 사고와 행동을 그만두려고 하는 실천에서 찾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스스로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코로나19와의 다툼은 크게 길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점에서 창궐하는 코로나19와의 다툼에서의 중정한 구오효는 인식을 전환하고 가치를 창조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고 하는 ‘우리’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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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다툼이 없을 수 없는 세상사이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움은 다툼의 끝에서 이기려고 하기 보다는 시기와 상황에 맞는 적절함과 올바름을 도모하여 다툼을 잘 다스리는데 있다. 크게 길할 수 있는 다툼의 길도 그 지혜에 있음을 천수송괘는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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