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우 뜻밖의 임신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던 업무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 뿐 아니라 출산과 육아 휴직 기간의 업무 공백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했고, 당장 뱃속의 생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매일 아침 마시던 커피 등 태아에게 해가 될 만한 일상도 떠나야했다. 임신과 출산은 기존에 내가 기대하고 있던 사회적 성취나 목표로부터 물러남과 동시에 일상적으로 제어하지 않던 감각적인 욕망들로부터의 물러남도 의미했던 것이다.
둔괘는 물러남에도 다양한 상황과 마음의 상태가 있음을 보여준다. 물러나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나 여전히 떠나온 상황에 마음이 묶여있는 계둔(係遯), 좋아하는 것에서도 기꺼이 물러날 수 있는 군자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소인의 호둔(好遯) 그리고 여유 있게 물러나는 비둔(肥遯)까지. 임신과 출산이라는 둔의 시기를 거치는 여성의 마음은 여성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각기 다 다를 것이다.
내가 나 자신과 주위 여성들의 경험에 비추어 둔괘로부터 배우고 싶은 지혜는 구오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물러남, 가둔(嘉遯)이다. 어떻게 물러남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상전에 따르면 그것은 뜻을 바르게 함으로써 올바름을 굳게 지키기 때문이다. (象曰, 嘉遯, 貞吉, 以正志也.) 그렇다면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통해 생명을 품고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뜻을 바르게 하며 올바름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디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이란 자연의 지혜와 연결되는 일종의 통과 의례이자 자연지를 터득하게 해주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때로는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대의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경험된다. 내가 전해들은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홍콩에서 기업의 간부로 일하는 한 여성이 자신의 바쁜 스케줄을 쪼개어 대기 환자가 많은 유명 산부인과 의사에게 제왕절개를 받기 위해 미리 예약을 잡고 그에 맞추어 임신을 시도한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