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64괘의 다양한 국면 중에서 ‘막힘’의 상황을 보여주는 괘는 여럿이다. 그래서 막힘의 종류도 다양하다. 64괘는 어떤 괘든지 앞의 괘와 인과적으로 연결이 되는 서사구조이니, 그 인과의 맥락을 보면 막힘의 이치도 알 수 있다. 屯괘의 경우는 천지(天地)가 생기고 나서 만물이 생성되려고 기가 꽉~ 차서 막혔다고 했고, 困괘의 경우는 올라가기만(升) 하고 그치지 않으면 곤경을 당한다는 의미이다. 그럼 否괘는 어쩌다 막혔을까? 泰 뒤에 온 否는 泰의 시대가 극한에 이르면 否의 시대가 온다는 의미다. 계사전의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의 확장 버전이다. 한번 양이 오면 한번 음이 오는 것이 천지운행의 이치니, 한번 태평성세면 한번은 국난의 시기가 오는 것은 당연지사란 말씀!?
비괘의 효들은 막힘의 시대를 통과하는 소인과 대인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군자는 동지들과 함께 숨죽이며 때를 기다려야 하며(初六), 출세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형통한 일이란다(六二). 시대를 잘못 만나 찌그러져 있는 군자들에게 이토록 용기를 주다니! 그래, 이 시대는 지나가게 되어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3효를 지나 4효에 다다르면 否의 시대가 중반을 넘긴다. 그래서 이제 슬슬 이 시대를 어떻게 뚫어볼 것인가를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대인들은 각자의 역할을 하며 변환을 꾀해야 한다. 그런데 否괘의 특이한 점은 5의 자리에서 이미 막힘의 시대가 그친다(休否)는 말이 나오고, 마지막 상구에서는 판세가 완전히 뒤집어지니 기쁘다는 말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가히 지천태의 初九부터 시작하여 천지비의 上九로 마무리되는 흥망성쇠 순환의 드라마와 같다고 하겠다.
이 중 내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구오효의 ‘其亡其亡 繫于苞桑’이다. 이미 뒤집어진 상황이라는 상구효의 전 단계로서, 오효는 막힘을 그치게 할 대인이다. 그는 ‘망할지도 몰라, 망할지도 몰라’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 중차대한 시기의 태세 전환을 이끈다.
주역에서는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허물이 없다는, 다소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 군자상을 종종 제시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존위의 자리에서 망할 것을 걱정하며 뽕나무 뿌리에 자신을 단단히 묶어 놓는 모습은 참으로 놀랍다. 그것도 한 그루가 아니고 뿌리 무더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