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갑작스런 허무함을 느낀 중년들은 “그동안 나는 너무 세상과 가족들을 위해 살았어, 이제 내 삶을 찾아야지!”라는 각오를 한다. 그리고 친구들도 다시 찾고, 등산도 자주 가고, 악기도 배우고, 시골에 가서 농사도 짓고, 산에서 버섯도 키우고, 때론 인문학 공부도 하고, 때론 글쓰기도 하고, 특히 끝까지 성실한 사람들은 에세이집 한 권 정도는 내고 등등. 그런데 이렇게 하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니체의 답은? 한마디로 아니다. 이러한 활동을 한다고 재미없게 무뎌진 나를 찾을 수 없다. 잠시 활력을 찾는 듯하지만, 결국은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 대부분의 중년들이 겪는 삶의 패턴이다. 그 후 이어지는 체념. “세상은 원래 다 이런 거지!”,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이제 다 내려놓고 절에나 다니면서 봉사나 해야지” 등등으로 결론 난다. 이렇게 우리는 선하게 길러진 삶에서, 자신이 주도하는 삶으로 잠깐, 그러다 다시 체념하는 삶으로 ‘왔다 갔다’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아님 평생 남에 의해 길러진 삶으로 마감하든가. 이것이 니체의 눈에 관찰된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렇게 너무나 가족적으로, 학교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지금껏 내가 살아온 길이었고, 재미없는 남자가 된 과정이었다.
니체는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은 자기 삶에 대한 섬세함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잃어가는 과정으로 읽고 있다. 우리 또한 세상에서 잘 배우고 잘 살아갈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섬세함과 내 삶의 주변에 대한 섬세함은 그만큼 무뎌져 가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하지만 모두가 바라는 것이겠지만 나 또한 이렇게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나의 이 ‘재미없음’ 때문에 지난 5년 동안 나름 재미있게 해온 공부를 여기서 멈추고 싶지도 않다. 다행히 니체를 통해 나의 이 ‘재미없음’의 원인을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 남은 일은 이를 하나씩 스스로 치료해 가는 것이다. 하여 나는 당분간 니체를 읽고 쓰며, 내 몸에서 빼앗긴 삶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회복하고자 한다. 니체와 함께한다면, 나의 이 지긋지긋한 ‘재미없음’이 조금은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