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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열심히!’에 대한 오해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1-29 14:46
조회 : 622  



‘열심히!’에 대한 오해


이한주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雷山 小過    ䷽

 

小過, 亨, 利貞, 可小事, 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

初六, 飛鳥以凶.

六二, 過其祖, 遇其妣, 不及其君, 遇其臣, 无咎.

九三, 弗 過防之, 從或戕之, 凶.

九四, 无咎, 弗過 遇之, 往厲必戒, 勿用永貞.

六五, 密雲不雨, 自我西郊, 公弋取彼在穴.

上六, 弗遇 過之, 飛鳥離之, 凶, 是謂災眚.

“열심히 살지 말라!” 처음 동의보감 공부를 시작했을 때 가장 놀랍게 다가왔던 말이었다. 이 말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그동안 ‘열심히!’를 삶의 미덕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열심(熱心)’이라는 한자어를 우리의 몸에 적용해 해석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열심히!’는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히 힘씀, 즉, 무슨 일이든 심장이 뜨거워질 정도로 힘쓴다는 뜻이다. 이 의미는 양생의 측면에서 두 가지 함정을 품고 있다.

첫째, 심장을 나타내는 괘는 리괘(☲)이다. 리괘는 양이 음을 싸고 있는 모습이다. 겉은 불이지만 안은 물이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불 조절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심장이 계속 뜨거운 상태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안에 있는 음이 모두 말라버려 불이 망동하게 된다. 음허화동의 상태이다. 즉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은 음허화동의 지름길이다. 둘째, 심장이 뜨거워질 정도로 일을 한다는 것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넘치게 한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넘치는 것을 태과라고 한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있는 것을 덜어내는 것이 모자람을 채우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살을 찌우는 것보다 빼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이치와 같다.

그런데 어떻게 “열심히!”는 일상의 미덕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가지면 가지수록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자본주의적 도덕관에 익숙해졌기 때문 아니었을까? 음허화동과 태과의 함정이 일상에 늘 도사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런데 주역에서도 이에 대해 말해주는 괘가 있다. 바로 뇌산소과 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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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열심히!”는 일상의 미덕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일까?

소과는 작은 일의 과도함을 뜻한다. 풍택중부 다음에 오는 괘이다. 중부 괘 다음에 소과 괘가 오는 이유는 신념이 확고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일상을 과도하게, 즉 넘치게 행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도(常道)의 측면에서 과도, 또는 과욕은 어떤 경우에도 올바른 행동으로 보기 힘들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소과의 괘사에서는 가끔 어떤 일의 경우에는 과도하게 행하는 것이 형통할 수 있다고 한다. 과도함으로 행해도 되는 마땅한 때가 있다는 것이다.(小過, 亨, 利貞) 상전에서 밝히는 구체적 예를 보면, “공손함을 과도하게 하고, 상례를 치르는데 슬픔을 과도하게 하고, 재물을 사용하는 데 검소함을 과도하게 하는 것이다.” 군자는 이러한 경우를 작은 일의 과도함, 즉 소과로 본다. 이때만은 열심히 힘써 행해도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소과의 경우가 아니라 큰일을 과도하게 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과도해야 할 경우가 아닌데도 과도하게 하는 것은 과도한 과실”(정이천)로 남게 된다. 소과의 때는 상전에서 말하는 작은 일의 과도함으로 멈추어야 한다. 그런데 가속도가 붙은 과욕의 질주는 멈추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큰일도 해낼 수 있으리라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되고 결국 과도한 과실을 범하게 되어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괘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날아가는 새에 빗대어 좀 더 자세히 말해준다. 괘사에서는 날아가는 새가 소리를 남기고 위로 더 올라가는 것을 상도에서 벗어난 인간의 과도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날고 있는 새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이미 올라가 있는 상태이다. 그 능력은 새의 날개짓 소리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새의 날개짓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를 괘사에서는 나는 새의 과도함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새는 자신의 능력이 상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땅에서 너무 멀리 멀어지면 안 된다. 그런데 소과의 시기, 나는 새가 된 사람들은 계속 하늘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하지만 그 마음이 마땅한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괘사에서는 새가 날면서 소리를 남기고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마땅하게 여길 줄 안다면 크게 길할 것이라고 한다.(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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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늘 위에서 날고 있는 인간의 마음은 내려오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상도를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인가? 소과의 효사들은 대부분 흉하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겨우 허물이 없는 정도에서 그친다. 결국, 과욕은 금물이다. 따라서 내려오는 것을 마땅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크게 길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경계함에도 불구하고 만약 계속 위로 날아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

마지막 효인 상육효는 말한다. “적당하지 않아 과도하니, 나는 새가 멀리 떠나가는 듯해서 흉하다. 이를 재앙과 인재라고 한다”(上六, 弗遇 過之, 飛鳥離之, 凶, 是謂災眚) 하늘 위로 계속 올라가는 새는 그 과도함이 상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버렸다. 이것은 재앙이다. 나는 새에게 재앙은 어떤 상황일까? 그것은 추락이 아닐까? 그런데 정이천은 그것을 새의 재앙이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해석한다.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재앙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추락의 재앙은 새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듯하다. 계속 위로만 날아오르는 새가 있을까? 새의 본성상 반생명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새의 본성보다도 인간의 더 무지해질 때가 있다. 그것은 탐욕이 일어날 때이다. 승승장구하며 계속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과욕 말이다. 그 끝은 결국 재앙이다.

열심히 사는 것이 재앙으로 향한다는 논리는 너무 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미덕으로 알고 매 순간 상도(常道)를 무시하고 일상을 산다면 어떻게 될까? 날아가는 새들은 반드시 땅과의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 언제든 내려와 먹이를 잡아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는 인간의 과욕은 어떠한가? 열심히, 열심히 사는데 오히려 현실의 지반과는 점점 멀어지는 삶의 모습들. 거기에서 파생되는 탐욕, 부정적 감정들, 망상들, 갈등들……. 그렇기에, 소과 괘에서는 과도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는 오히려 과도하게 방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 하루는 ‘열심히’가 아니라 ‘무심히’ 살아보면 어떨까? 열심히 올라가기만 하는 새가 아니라 무심히 날다가 언제든 땅 위로 내려올 줄 아는 새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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