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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한서라는 역사책] 왕망, 윤달의 운명을 타고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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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1-27 15:14 조회1,3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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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망, 윤달의 운명을 타고난 자



박장금(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왕망은 생김새가 큰 입에 아래턱이 짧으며, 툭 튀어 나온 눈망울에 눈동자가 붉으며, 굵으나 쉰 목소리였다. 키는 7척 5촌(175cm)였는데 두꺼운 신발을 신고 놓은 관을 즐겨 썼으며, 꼬불꼬불한 털을 옷에 넣고 가슴을 내밀어 고개를 들어 보거나 좌우를 내려 보았다. 이때 잡지로 황문 대조로 있던 자에게 어떤 사람이 왕망의 모습을 묻자, 그 대조가 말했다. 왕망은 부엉이 눈에 호랑이 입그리고 승냥이 목소리를 갖고 있어 사람을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사람에게 잡아먹힐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물었던 사람이 이를 밀고하자, 왕망은 그 대조를 죽이고 밀고자를 제후에 봉했다. 왕망은 이후로는 운모의 병풍으로 얼굴을 가렸기에 측근이 아니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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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망의 모습과 목소리가 느껴지지 않는가. 누군가를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잡아먹힐 수도 있는 자. 인상착의만 말했을 뿐인데, 죽임을 당하다니! 무엇이 왕망을 건드렸기에 대조를 제거했을까. 왕망! 대조의 말대로 누구를 잡아먹었고, 누구에게 잡아먹혔는가? 그것이 궁금하다.

태후의 마음을 잡아라

동현이 죽은 후 태황태후 왕정군은 왕망을 대사마로 삼았다. 애제는 후사가 없었으므로 그와 함께 왕위 계승을 추진했다. 선택할 것도 없었다. 남은 일족은 중산왕 뿐이므로! 중산왕의 이름은 유기자((劉箕子)로 풍태후의 손자이다. 당시 나이 3세. 9세가 되자 왕위에 즉위한다. 하지만 말이 황제지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태후가 병석에 누워 조회에 참석하고 정사는 왕망이 처리했다. 왕태후는 왕망을 절대적으로 신임했다. 왕망은 황후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왕망은 조정외의 지방관들로 하여금 자신의 공덕을 칭송하게 했을 뿐 아니라, 안으로는 태후궁의 시녀들에게 수천수만의 재물을 뿌렸고, 태후의 자매들에게 존칭을 주고, 탕목읍(湯沐邑·천자나 제후의 식읍지)을 주어 인심을 얻었다. 태후가 궁궐에 있는 것을 답답해하는 것을 알고, 계절에 맞춰 수레를 몰아 주변을 둘러보게 했다. 한 마디로 맘껏 놀도록 해 주었는데 명분까지 확실하게 해주었다. 과부나 열녀를 돌보기 위해 다녀야 한다고!

  봄에는 견관에 행차하여 황후와 열후의 부인들을 거느리고 뽕을 따고 패수에 따라가며 불제를 지내게 했으며, 여름철에는 장안성 남쪽의 어숙원과 호현과 두현을 유람하게 하였다. 가을에는 동관과 곤명지와 황산궁에서 모여 놀고, 겨울에는 비우궁에서 잔치를 하고 상림원의 상란관에서 사냥 구경을 하고 장평관과 경수를 둘러보게 하였다. 태후가 둘러보는 속현에서는 여러 은택을 준비하여 백성들에게 금전이나 비단, 소고기나 술을 하사하였는데 이런 일을 해마다 계속 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원후전」, 『한서』10, 명문당, 53쪽)

태후는 왕망이 알아서 효도 관광을 시켜주니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태후가 가고 싶다고 하면 데려다 주고, 태후의 시종이 아프면 친히 가서 챙겨주기까지. 반고는 “그가 태후의 마음에 들려는 노력이 이와 같았다”거나 “왕망은 정사를 바로 잡아 태평을 이룩했다고 날마다 태후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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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망은 절대적인 신임을 얻으면서 기존의 외척 세력을 일망타진한다. 성제의 황후 조비연과 애제의 황후 부씨를 꼬투리 잡아 폐위시켜 자살하게 만들고, 황후의 총애가 다른 사람에게 갈 만한 사람은 모두 제거했다.

은밀하게 교묘하게

왕망은 영리했다. 자신은 절대 나서지 않으면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교묘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태후의 동생이자 왕망의 삼촌인 왕립을 탄핵하게 만들 때도 그는 전혀 나서지 않았다. 천하의 신임을 받을 뿐 아니라 태후조차 공경해서 예를 갖추는 공광을 이용한다. 공광에게 왕망은 내칠 사람이 있으면 그때마다 초고를 만들어 태후의 뜻이라며 넌지시 권해 보고하게 만든다. 공명정대한 공광도 그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왕망이 눈을 흘겨본 사람으로 죽거나 다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태후의 뜻이라고 여겨 행했으나 공광도 공범자가 되어 있는 상황. 왕망은 이렇게 교묘하게 자기 세상을 열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왕망을 따르는 자는 발탁되고 거스르는 자를 죽이거나 제거하였다. 왕순과 왕읍은 심복이 되었고, 견풍과 견한은 탁핵을 주로 담당했으며, 평안은 군국기무를 총괄하고, 유흠은 예법과 제도에 관한 일을 담당했으며, 손건은 호위무사가 되었다. 견풍의 아들 견심, 유흠의 아들 유분, 그리고 탁원의 최발, 남양군의 진숭은 모두 뛰어난 재능으로 왕망의 총애를 받았다. 왕망은 표정이 엄숙하고 조리 있게 말을 하였으며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 표정을 약간 드러내면 그 무리들이 뜻을 받들어 확실하게 상주하였으며왕망은 때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사양하여 위로는 태후를 현혹시켰고 아래로는 백성의 신임을 얻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82쪽)

왕망의 권세는 날로 강해졌고 공광은 두려워 사직을 청했다. 그러자 왕망은 황제의 사부로 만들고, 그 다음에는 태사의 지위에 임명하는 등 더 높은 자리를 주어 자기 옆에 묶어 놓았다. 공광은 최대한 왕망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병을 핑계대면서 대면을 피했다. 왕망의 심기를 건드리면 목숨이 위태로워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의 야심은 끝을 몰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음모는 치밀했다. 이제 본격적인 왕위 찬탈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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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망의 공적은 주의 성왕 때 흰 꿩의 상서로운 길조와 천년을 두고 똑같습니다. 성황의 법도에 신하가 큰 공을 세우면 그에 맞는 훌륭한 칭호를 주었으니 주공은 살아 있을 때 주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왕망은 나라와 한 황실을 안정시킨 대공을 세웠기에 응당 안한공(安漢公)이라고 불러야 하며 식읍을 늘려 그 작읍을 같게 하는 것은 옛 법도에 따른 것이며 당대의 행사와 (곽광의 전례) 같게 하여 하늘 뜻에 순응해야 합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84쪽)

왕망은 공(公)이란 작호를 받고 싶었다. 명분을 위해 흰 꿩 두 마리로 밑밥을 깐 것이다. 신하들은 알아서 칭송하면서 나라를 안정시켰으니 안한공 칭호를 주어야 한다고 태후에게 상소를 올린다. 왕망은 겸양하고, 겸양하고, 겸양하고, 또 겸양하다가 “왕망은 두려워하는 척하며 부득이 일어나 책서를 받”는다. 왕망의 겸양 이유를 들으면 군자가 따로 없다. 백성이 풍족해진 다음에 상을 받겠다는 것. 왕망은 실제 백성과 홀아비나 과부에 혜택을 베풀어 은택을 받게 했다. 포퓰리즘 정치의 선구자인가. 왕망은 백성의 뜻에 영합한 뒤에 정사를 독단할 생각이었다고 한서는 기록하고 있다.

때 마침 태후는 정사를 돌보는 것에 귀차니즘이 발동한다. 노년에 정사를 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왕망은 그 타이밍을 기막히게 눈치 채고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태후가 소소한 일까지 직접 살피는 것은 적합하지 않으니 자신이 정사를 살피겠다는 것. 태후는 왕망의 충심을 믿는다며 모든 것을 맡기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왕망은 무늬만 황제가 아닐 뿐 황제의 권력을 쥐게 된다.

태후는 왕망을 믿고 또 믿었다. 왕망은 태후가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고, 여전히 정치에 참여하도록 배려하는 척 한다. 태후에게 무늬 없는 비단 옷을 입게 하고 반찬 수를 줄여 솔선하라면서 자신도 소식을 행했다. 신하들은 왕망을 칭송했고 태후는 백성들이 심히 걱정하니 때로는 육식도 먹으며 몸을 아끼라고 당부할 정도로 왕망을 신임했다.

해를 가린 달의 등장

최고 권력을 가졌지만 황제의 지위가 없는 왕망은 자신의 야욕을 위해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한다. 자신의 딸을 황후로 만들기! 그 과정도 놀라울 정도로 교묘하고 치밀하다. 왕망은 태후에게 자기 딸을 황후를 시켜달라고 들이대는 게 아니라 정반대의 의사 표현을 한다. 자신의 딸은 덕이 없고 자질도 낮으니 배제해 달라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황후는 그 청을 들어준다. 그러자 백성과 신하들은 들고 일어나 안한공의 딸이 되어야 한다고 난리를 치게 만든다. 왕망은 거절한다. 신하들은 상서를 올린다. 그것도 모자라 점까지 친다. 왕망의 딸과 결혼해야 태평하고 길하다는 결과까지 나오자 태후도 허락한다. 왕망은 자신은 원치 않지만, 모두가 원하니 어쩔 수 없다며 못이기는 척 수락한다. 태후는 황후 맞이 비용으로 3천만 전을 주었는데 그 중 1천만 전을 자신의 구족 중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기까지 한다. 그러자 왕망의 공덕을 칭송하는 글이 줄을 잇는다. 겉만 보면 왕망은 주공을 재현한 듯 보인다. 이렇게 왕망은 태후 주변에서는 늘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만 들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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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평제기에는 평제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해를 가린 달의 등장이라고나 할까. 왕망은 평제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주변을 제거하는 작업을 치밀하게 한다. 왕망은 외척이 나라를 뒤흔든다며 평제의 모친 위희를 중산국에서 장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왕망의 아들 왕우는 위후의 격리가 부당하다며 평제가 성인이 되면 미움을 받게 되니 위후를 들어오게 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왕망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왕우는 스승 오장, 처남 여관과 작전을 짠다. 간언으로는 통하지 않으니 귀신을 좋아하는 왕망의 두려움을 이용하자는 것. 왕우는 여관에게 왕망의 집 대문에 피를 뿌리게 했다. 운명의 신은 왕망의 편인가. 일은 발각되었다. 왕우는 자살했고, 왕망은 위씨 일족을 모조리 멸족시켰다. 왕망은 이 사건을 계기로 평소에 자신을 비난한 자 백 명을 죽게 만들었다. 엄청난 피바람이 분 것이다.

왕망의 찬탈 욕망은 끝을 몰랐다. 평제에게 독약을 먹여 병들게 하고 천연덕스럽게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린다. 평제 대신 자기를 죽여 달라고. 왕망은 평제가 붕어하자 천하에 대 사면령을 내려 인심을 얻는다.

이제 남은 일은 후사를 정하는 일. 왕망의 작업이 또 펼쳐진다. 갑자기 우물에서 글이 써진 흰 돌이 발견된다. 자연의 징조를 ‘부명’이라 하는데, 하늘이 내린 상서로운 징조로 천지가 감응한다고 여겼다. 흰 돌에 쓰인 내용은 이렇다. ‘안한공 왕망에게 황제가 되라고 알려라.’ 이것은 태후에게 보고 됐고, 태후는 고민한다. 아무리 왕망이 대단해도 왕망은 황족이 아니지 않는가. 신하들은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 왕망이 필요하다고 설득했고, 태후는 왕망이 ‘섭정’하는 조건으로 허락하게 된다. 그 후 유숭과 장소가 왕망이 조정의 정사를 독단한다고 거사를 모의했지만 실패로 끝났는데, 그것을 역이용한다. 신하들에게 왕망의 권한이 약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태후에게 고하게 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왕망은 자신을 가황제(假皇帝)로 칭하게 하고, 신하들에게는 섭황제(攝皇帝)로 부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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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망은 대외적인 작업도 치밀했다. 없는 공적도 만들어서 태후에게 보고한다. 예컨대 강족을 돈을 주고 설득해 귀속하게 해서 마치 자신이 그곳을 평정한 것처럼 꾸민다. 이것을 계기로 왕망의 손자 왕종이 제후에 봉한다. 주변을 자기 뜻대로 만드는 작업이 끝나자 이제 왕망은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황제 되기를 처절하게 원한 자의 최후

  하룻밤에 여러 번 꿈을 꾸었는데 ‘나는 하늘의 사자이다. 천공께서 나를 보내 정장에게 말하게 했나니 섭황제는 응당 진(眞)황제가 되어야 한다. 만약 나를 못 믿거든 이곳에 새 우물이 있나 보아라.’ 정장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정말로 새 우물이 생겼는데 땅 속 깊이가 1백여 척이나 되었습니다. 라고 상서하였습니다. (중략) 하늘에서 바람이 일어나며 흙먼지로 캄캄해졌다가 바람이 그치자, 그 우측에 구리로 된 부명과 백도가 있었는데 그 글에는 ‘하늘이 황제의 부명을 전하나니, 이를 전달하는 자는 제후에 봉해질 것이다. 천명을 받고 신의 명령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189쪽)

요약하자면 하늘이 천명을 내려 즉위를 하라고 하니, 정식 황제로 즉위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왕망이 섭정을 한지 6년 만에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평제는 죽었고 태자 유영은 2살이었고, 평제의 황후는 자신의 딸인 상황. 이때 출세하고 싶은 애장이 사건을 일으킨다. 애장은 장안에 와서 유학을 하는 서생인데 허세가 센 자였다. 그는 동으로 된 궤짝을 만들어 그 안에 글을 써 넣었다. 왕망이 천자가 되어야 하고, 황태후는 그 천명을 따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11명의 이름과 관직을 써서 왕망을 보좌해야 한다고 썼다. 왕망은 권력에 눈이 어두워 이 동궤를 진짜라고 밀어 붙였다. 11명의 사람은 떡장수부터 오합지졸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점쟁이과 관상가를 불러 그들이 좋다고 하면 그대로 임명하였다.

이런 가짜 부명을 구실로 왕망은 황위를 찬탈한다. 2백년 한 왕조는 왕망의 대사기극에 의해 종식되고, 신(新)나라가 건국된 것이다. 왕망은 태자 유영에게 다음과 같이 책서를 보낸다.

  “아 너 영(嬰)아, 예전에 하늘은 너의 태조를 도왔지만, 나라가 12대에 걸쳐 210년을 지나니 바뀌는 순서가 나에게 왔도다. <시경> 도 ‘(은의 후손이)제후가 되어 주를 섬기니 천명은 일정하지 않네.’ 라고 하지 않았는가? 너를 정안공에 책봉하나니 영원히 신조의 국빈일지어라. 어희라! 하늘의 뜻에 따라 너의 자리에 가서 내 명을 거역하지 말라.”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196쪽)

왕망은 2살짜리 태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 주공은 섭정으로 있으면서 결국에는 자리를 이은 현명한 군주를 얻었지만, 지금 나는 황천의 큰 명을 따라야 하니 마음대로 할 수가 없구나! 그리고 한 참을 슬피 탄식하였다. 환관이 유자를 안고 전각 아래로 내려가 북쪽을 바라보며 청신하였다. 배석했던 모든 신하가 크게 느끼지 않는 자가 없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197쪽)

태후는 왕망의 본색을 알게 됐지만 너무 늦었다. 왕망이 국새를 달라고 하자 반발을 했지만 결국은 내 주고야 말았다. 가짜 부명으로 확실한 명분을 얻었고, 이제 국새 까지 얻었다. 왕망은 작은 부분도 치밀하게 작업했다. 태자를 보모와 말도 못하게 할 정도로 감시를 했고, 한 왕조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주술적인 기운이 담긴 화폐를 주조하기도 했다. 나라 이름도 처음에는 신(新)에서 심(心)으로, 심에서 신(信)으로 바꾼 것도 그의 불안의 표현일 것이다. 조정은 접수했으나 정치는 그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경솔하고 천박한 신하들로 조정은 넘쳤고, 백성들의 불만은 날로 높아만 갔다. 그럴수록 왕망은 미신에 점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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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망의 천성은 택일의 길흉을 점치거나 사소한 도술을 좋아하였는데 급작 상황에서는 다만 미신행위로 풀어버리려 하였다. 사람을 보내 원제의 능과 성제의 능의 원문 앞의 가림 담장을 헐어버리게 하면서 ‘백성들이 다시는 (한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 또 그 능원을 둘러친 담을 검정색으로 칠하게 하였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397쪽)

이뿐만이 아니다. 장군을 제숙이라고 부르게 하는 등 이름을 바꾸고, 큰 도끼를 잡고 고목을 찍어내어 큰물에 떠내버리고 불을 꺼버리라는 등 주술적인 행위를 하게 했다.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도술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 왕망의 황제 놀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왕망을 잡아서 제후가 되려는 군사 7백 명이 몰려와서 궁에 불을 질렀다. 궁인과 부녀자가 울고불고 궁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때 그는 상황을 수습하는 게 아니라, 괴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때 왕망은 감균복에 국새와 인불을 차고 순의 비수를 들고 있었다. 천문랑은 별 관 앞에 있는데 시간이 가면 왕망은 그에 맞춰 북두칠성 자리에 옮겨 앉으면서 ‘하늘이 나에게 덕행을 주셨거늘 한의 군사가 나를 어찌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왕망은 제때에 먹지 못해 기운이 없고 지쳐있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397쪽)

왕망은 하늘이 자신에게 천명을 주었다고 굳게 믿은 걸까. 황제가 되고 싶어 미쳐버린 걸까. 이처럼 해괴한 행위를 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것이 왕망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제 맨 앞에서 대조가 한 말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왕망은 한나라를 통째로 잡아먹어버렸다. 하지만 맹목적인 미신에 자신을 통째 잡아 먹혀 버렸다. 반고는 이런 왕망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윤달의 운명을 타고난 자

왕망 그는 누구인가? 왕망은 인자한 모습으로 칭송을 받았으나 속은 불인한 자이다. 그는 경전을 줄줄 외웠지만 은밀하게 간사한 주장을 폈다. 그렇다. 그는 악한 자이다. 그가 태평 시대에 태어났다면 겉과 속이 다른 놈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격하게 변화하는 시대, 4대에 걸쳐 쇠약해졌고 3대에 걸쳐 후사가 없었으며 외척인 왕씨 집안이 권력을 장악하는 시대에 하필이면 그가 있었다.

반고는 왕망의 찬탈 위험성을 걸주보다 심하다고 말한다. 왕망 자체가 위험하다기 보다는 그의 간악함과 쇠락한 시대가 만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증폭된다는 것. 어떤 면에서 보면 왕망의 찬탈은 때가 맞았기 때문이지 전적으로 왕망 때문은 아니다. 반고는 이런 조건들이야 말로 천시이므로 인력으로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반고는 왕망의 집권 과정을 윤달로 비유한다.

  올바른 색이나 올바른 음이 아닌 세월의 여분이 모인 윤달과 같은 정통이 아니었기에 결국 광무제에 의해 쫓겨났다는 것… (중략) …이 모두가 항룡의 기수가 다한 것이며 천명을 누릴 수 없는 자의 명운이며, 정색이나 정음이 아니며 세월의 여분이 보인 윤달과 같은 정통이 아니었기에 결국 성왕(광무제)에 의해 쫓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407쪽)

윤달은 가외로 있는 달로 정식 달이 아니기 때문에 정통성을 이을 수는 없다. 즉,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달이지만 정식 달이 될 수 없는 윤달의 아이러니! 왕망이 왜 그렇게 옥새에 집착하고, 마지막에 북두성의 자리를 옮겨 다녔는지가 이해가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통이 될 수 없는 한계를 스스로 알았기에 각고의 노력(?)을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는 황제는 될 수 없었으나 한나라 쇠망의 끝자락에서 걸주 같은 악역의 운명은 타고난 것이다. 그렇다고 반고가 왕망을 마냥 두둔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온 천하가 근심과 걱정 속에 사람들은 살아갈 의지를 잃었으며 안팎에서 모두 분노와 원한이 맺혔고 원근에서 모두 들고 일어났기에 땅을 지킬 수 없었으며 몸체와 지체도 분열되었다. 그리하여 천하의 성읍을 텅 비게 만들었고 무덤이 파헤쳐졌으며, 모든 백성에게 해악을 입혔으며 그 죄악은 죽은 사람에게도 미쳤다. 그리하여 스스로 역사에 난신적자이며 무도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기록에 남게 되었으니 그 재앙과 패망이 왕망보다 더 심한 자가 여태껏 없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왕망전」, 『한서』10, 명문당,  407쪽)

분명 그는 자신의 분(分)을 잊고 황제의 욕심을 부렸다. 위험성을 감지하기는커녕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황제 순과 동일시한다. 왕망은 생각했을 것이다. 유방도 사실 한나라를 건국했으니 나라고 못할 게 뭔가? 하지만 왕망과 유방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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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가 흥기한 이유로 5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요임금의 후손이며, 둘째가 외모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았고, 셋째 신무와 그에 따른 호응이 있었고, 넷째 관대, 명철하고 인자하였으며, 다섯째 사람을 보고 잘 쓸 줄 알았다. 거기에다 성실하면서도 지모가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수용했으며 좋은 일을 잘 베풀면서 용인을 잘 했고, 여러 충고를 잘 따랐으며 시류를 잘 이용하였다. 입안에 든 음식을 토하여서 즉시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였으며, 발을 씻다가도 그만두고 역이기의 말을 경청하였으며, 누경의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포기하였고, 상산사호의 명성을 높이 받들며 자식 사랑을 끊었다. 군사 중에서 한신을 발탁 등용했고 망명한 진평을 받아들였으며, 영웅들이 자기 능력을 발휘하도록 여러 방책을 다 채용하였다… 그리고 신령스러운 조짐이나 징후로도 또한 그 대략을 알 수 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서전하」, 『한서』10, 명문당,  438쪽)

고조가 고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황제가 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고조는 그것을 잘 알았고, 그 운명에 맞게 행동한 게 고조의 능력일 것이다. 그 밖에도 많은 별들의 흥망성쇠를 한서는 보여준다. 어떤 운명도 천명이며 인력으로 그 명을 거스를 수 없음을.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운명을 안자와 알지 못한 자가 있을 뿐!

왕망은 절대 천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천자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하여 고대 악인의 아이콘이 걸주이듯 한의 패망은 왕망으로 귀결되게 된다. 즉, 모든 것이 왕망 탓이 된 것이다. 만약 왕망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한은 달라졌을까. 좀 더 시간은 늦추어졌겠지만 쇠락은 피할 수 없으니 누구라도 악역을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왕망은 누구보다 악역을 잘 수행한 셈이다. 하여 왕망을 윤달로 읽어 낸 게 반고의 놀라운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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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윤달로 비유되는 순간 왕망은 자연의 변화 과정으로 읽히면서 길흉이란 이분법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 고조가 있으면 왕망이 있고, 왕망이 있으니 후한의 광무제가 있는 게 아닌가! 역사와 인간을 자연 운행으로 읽어내기! 한 왕조를 1년으로 보자면 12왕조는 정식 달에 해당한다. 윤달까지 더 해졌으니 한 왕조의 1년이 완성된 셈이다. 하여 우리는 왕망을 악인으로 기억하기 보다는 윤달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여 전한 200년은 왕망 덕분에 생장수장이라는 자연의 순환에 동참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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