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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성욕의 탄생]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네가 좋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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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1-23 10:48 조회1,1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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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네가 좋아~ (1)


1장 소유욕의 화신, 연두 - 3)

이호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괴로운데도 계속 만나는 이유

질투라는 감정이 내 온몸을 잠식한 때가 있었다. 연두는 힘이 장사였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는 머리를 굴리는 것만으로, 그러니까 망상을 짓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몹시 격렬한 감정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 기간은 꽤 길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그때 평균 이틀에 한번 꼴로 울어댔다. 약간의 망상만으로 눈물이 났고, 그렇게 되는 걸 스스로 제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 정신병 걸린 게 아닐까…?’

물론 울기만 했던 건 아니다. 나는 그 애에게 히스테리를 엄청 부렸다. 때는 추운 한겨울. 공부방에서의 하루 일과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굳은 얼굴과 묵묵부답으로 기어코 함께 걷던 그 애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왜 그래~?” 그러면 이제 조용히 놀이터 쪽으로 향하는 거다. 거기까지 가서도 한참을 뜸을 들인 끝에, 마치 억울하다는 듯 울면서 통보한다. “나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우리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애.” 그 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내가 질투를 느끼느라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것들이다.

그렇게 나는 종종, 여러 가지 방식들로 그 애를 괴롭혔다. 물론 그때는 내가 그 애를 괴롭힌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몹시 괴로웠을 뿐! 삽시간에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감정, 그 감정을 주체 못해 퍼붓는 히스테리. 나는 몸서리치게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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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큼 내가 배우는 것들과 실제 내 삶의 괴리가 컸던 적도 없다. 공부하면서 읽게 되는 책, 듣게 되는 말들은 하나같이 다 ‘소유욕을 내려놓으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죽어도 그렇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좋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의 몸을 부정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거야~!! 도대췌~!!!’

나는 분명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질투를 그만두지 않았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빠져 매일 매일이 괴로운데, 이걸 딱 그만두면 세상 편해질 것 같은데! 이게 아닌 걸 아는데도!! 나는 계속해서 질투하며, 그 괴로움 속에 지냈다.

‘중독’이 바로 이런 원리 아닐까? ‘질투 중독’이라고 하면 좀 우습게 느껴지지만, 이건 정말이지 중독과 비슷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게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멈출 수 없는 상태. 중독을 끊기가 어려운 것은, 거기서 얻는 괴로움보다 쾌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나는 질투 때문에 몹시 괴로우면서도 그 안에서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걸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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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관계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끈적함

내가 느낀 쾌감의 정체, 그건 유독 그 애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 애에게 집착했다. 그건 일종의 ‘끈적함’이었는데, 그걸 얻기 위해 내가 한 행동들을 보면 참 웃기다.

몇 차례 언급했듯이 나는 잘 ‘삐졌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삐져서 그 애에게 말도 안하고 쳐다보지도 않으면, 그 애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쫄래쫄래 다가온다. 몇 번 톡톡 건드려보고는 내가 삐진 걸 알아챈다. 그때부터 그 애는 나를 풀어주기 위해 손짓, 발짓, 안면근육 등 자신의 온갖 신체 부위를 활용한다. 그래도 나는 싸늘하게 돌아서지만, 몇 번 더하면 먹히기도 한다.

나는 바로 그런 순간들에서 굉장한 즐거움을 느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변태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삐짐’은 바로 이 쾌감을 얻기 위해 발동된다. 상대가 나를 알아줄 때의, 이뻐해 줄 때의 쾌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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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쾌감을 더욱 강하게 느끼기 위해 내가 쓴 방법 중 하나가 ‘이별통보’다. 그때는 온몸이 질투로 달아올라 감정이 극에 달해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쾌감 역시 강력한 한 방의 것을 필요로 했다. 머릿속 망상에 시달리던 나는 마침내 배팅을 걸었다. 과연 어떤 결과가 찾아올 것인가…!

내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그 애는 그 어느 때보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함께 고민해주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나서야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는 걸 느꼈다. 이렇게나 나를 알아봐주다니. 그 애가 직접 다가와 ‘난 네 거야.’라며 자신의 소유권을 내어주는 걸 보고 있는 게 정말 좋았다. ‘오호~ 이것은… 참으로 신박하게도… 살아있는 장난감이 아닌가?!’ 연두가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연두는 이런 곳에서 쾌락을 먹고 살았던 것이다.

이건 다른 관계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끈적함이었다. 강렬한 쾌감, 찐~한 느낌. ‘너를 가진 사람은 나’라는 사실이 주는 즐거움 속에서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는 이 감정의 정체, 그건 바로 ‘권력욕’이었다. 히틀러 같은 사람들도 이런 감정에 도취해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했다. 그런 히틀러가 내 안에서도 작동했다. 그 애가 나를 풀어주기 위해 하는 말, 행동들은 모두 내 귀에 ‘하일 히틀러!’ 하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것으로 들렸다. 이걸 계속해서 누리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질투의 감정에 스스로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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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스스로를 부정적인 감정에 빠뜨리면서까지 권력욕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은 커플들 사이에서 아주 빈번하게 나타난다. 내가 어딘가 기분 상했음을 뿜어내어 상대가 내게 관심 갖길 바라는 것, 난 너무 힘들고 아프다고 느끼면서 나를 몰라주는 상대에게 마구 화를 내는 것. 생각해보니 10대 때 봤던 인터넷 소설에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연인 때문에 여주인공이 자살을 하는 이야기도 그려졌었다. 그런 매체에 노출되기 쉬웠던 여성들은 파괴적인 방식으로 권력욕을 얻는 연애를 머릿속에 떠올리기가 더욱 쉬워진다. 어디 인터넷 소설뿐이겠는가? 그런 식의 테마는 드라마, 광고, 영화의 단골요소다. 우리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인기를 끌겠다는 심산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히틀러가 되기를 욕망하는 씨앗은 도처에 뿌려진다. 우수수, 우수수.

게다가 이 욕망은 연애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이 욕망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은 내가 종종 끄집어오는 ‘가족’이라는 장이다. 너무나 우리의 존재 자체와 결합되었기에, 스스로가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를 인식하기가 정말 어려운 바로 그곳.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는 우리에게 욕망 씨앗을 뿌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욕망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그 현주소를 낱낱이 보여주기도 한다. 한때 한창 유명했던 드라마 ‘SKY 캐슬’은 그 드라마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지금 부모와 아이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부모와 아이, 특히 엄마와 아이 사이는 강렬한 쾌감이 발생하는 자리다. 엄마는 자신의 몸에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아이를 내 ‘소유’라고 생각하기가 무척 쉽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내꺼’인 것이다. 그러니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의 욕망을 무진장 투사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 이거야말로 캐슬가 엄마들이 기가 막히게 보여주지 않았나? 자신들이 움켜쥐어온 캐슬을 그대로, 아니 더 튼튼하고 빛나는 모습으로 이어가기 위해서 아이들을 쥐고 흔드는 엄마들, 아니 히틀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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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풍자극 같은 그 드라마를 보면서 친구들이랑 같이 성대모사를 따라 하기도 하고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들 욕을 엄청 했다. 자기 인생도 아니면서 왜 저런 짓까지 하는지를 당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서 좀 따지고 싶었다. ‘대체 왜 그러세요!?’ 정도만 다를 뿐이지, 세상에 저런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건 내가 한 짓을 모를 때 하는 소리다. 하하;; 캐슬가 엄마들이나, 이별통보를 즐기는 나나, 사실상 욕망의 자리는 똑같다. 우리는 아주 닮아있다. 상대에게서 ‘나’만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만족시켜줄 기쁨을 그런 곳에서밖에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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