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괘의 형상은 하늘 위에 불이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하늘 위에 태양이 높이 떠올라 만물을 고루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니 풍족하다고 본 것이다. 태양이 어떤 존재인가? 생명 에너지를 우리에게 무한대로 보시하는 우주 최고의 증여자 아닌가. 대유의 군주, 오효가 그런 모습을 지녔다. 존위한 오효는 홀로 음효이고 다섯 양효를 거느리고 있다. 그 비결은 오효는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다. 그래서 다섯 양효들이 오효에게 호응하고 있다. 특히 상구효는 윗자리에 있지만 육오를 따르니 그 모습이 가상해 하늘이 돕는다고 했다.(自天祐之, 吉 无不利.) 풍족함의 극한에서 하늘의 보호까지 받는 형국! 신기하다. 우리가 지겹도록 본 드라마의 파국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개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권력과 부를 독점한 후 부정부패로 망가진다. 하지만 상구는 대유의 극의 자리에서 소유를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고, 오효를 도와 천하를 이롭게 했기에 ‘하늘이 돕는다.’고 한 것이다.
재산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물욕에 사로잡혀 지혜롭기가 쉽지 않다. 정이천도 풍성한 시대에 해로움과 접촉하지 않는 일은 현명한 자공이라도 피해갈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풍성함을 누리려면 어떻게 소유의 극한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하는지 각 효마다 윤리적 태도를 지속적으로 얘기한다. 우리가 풍요로움에 취해 잊게 되는 마음. 그것을 꼬집어주는 효가 사효이다. “지나치게 성대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匪其彭, 无咎.)” 자신에게 온 부를 혼자 독차지할 때 탈이 나는 것이다. 쉬운 것 같지만 자기에게 온 부를 지나치지 않도록 억제하며 흘려보내는 원리를 체득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특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증여와 선물하는 방식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렇다면 사효가 제시하는 성대함에 처하지 않으려면? 「상전」에 의하면 “明辨晳也.(명변석야)”라고 했다. 즉 분명하게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면 소유의 극한으로 치닫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분명하게 분별해낼 수 있어야 할까? 오늘의 부는 내 노력만으로 온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 천지의 것을 덜어내 나에게 보태준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그만 잔치 하나만 해도 어디 내 힘만으로 잔치가 굴러갔나 생각해보면 전혀 아니다. 잔치에 모였던 사람들의 정성과 진실된 마음들이 모여 함께 풍성함을 누렸던 것일 뿐.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알고 나누고 흘러가도록 풍성함을 즐기면 된다. 그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풍성함에서 자칫 해로움으로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소인이 풍족한 소유를 얻게 되면 세상이 해롭다고 한 이유도 나에게 온 부를 흐르지 않게 막아버려서이다. 풍족한 소유는 부유함을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천리를 따라 흐르도록 해야 한다.
작년 연구실을 운영하면서 강의보시, 음식보시, 연주보시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선물과 증여가 연구실로 흘러오고 흘러나갔다. 우리는 그 안에서 풍요로움을 맘껏 즐겼다. 풍성하게 소유하고 그것을 누리는 충만함은 선물과 증여가 막히지 않고 흐르도록 순환시키는데 그 비밀이 있었다. 고여 있지 않고 흐르고 순환하는 소유. 그게 바로 ‘큰 소유’라는 사실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