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때를 아는 강하고 합당한 물러남이란 어떤 것인가? 둔 괘의 괘상을 보면 내괘에서 두 개의 음효가 자라나고 있다. 힘의 중심을 소인이 차지하니, 군자는 멀리 물러나는 꼴이다. 자연의 형상으로 풀면 위로 하늘이 펼쳐지고 아래에 산이 자리하니, 소인의 세력이 산처럼 치받아도 하늘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나 이 괘의 실세는 소인이다. 싸워야 할 때라면 싸워야겠지만, 지금은 둔의 시대. 소인이 성대해질 때이니 싸워도 이길 수 없다. 이럴 때 싸우고 미워하면 소인은 더 집요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소인을 멀리하되, 미워하지 말고 엄히 대하라(遠小人 不惡而嚴). 둔괘 상전의 가르침이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상대에게 미운 맘이 드는 게 우리들이다. 하물며 그가 못된 짓을 하는 걸 목격하면 당연히 미워해야 한다고 여긴다.
다시 우리 집 얘기를 하자면, 요 몇 년 사이 남편은 점점 명령하고 평가하는 감독관처럼 굴고 있었다. 자기 마음에 들면 칭찬을 하고, 들지 않으면 싫은 티를 내면서 점점 ‘가장’으로 진화 중인 남편은 점점 식구들과 멀어져갔고, 그만큼 외로워졌고, 외로움을 권위로 메꾸려 들었다. 더 희한한 건 나였다. 왜 저러나 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니 절로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닌가.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면 외롭기는커녕 세상 편했다. 이렇게 눈치 보게 만드는 남편도, 눈치 보는 나도 미웠다. 하지만 미움은 다시 부끄러움과 억울함, 앙심을 그리하여 다시 미움을 불러오는 법. 둔 괘를 읽으면서 나는 이런 방식을 되풀이하는 일이 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 미움을 주고받으며 이기려 드는 것은 서로를 내 맘대로 하려는 일이고, 이것은 얽매임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는 소인의 세상을 더 견고하게 구축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미움 없이 안방을 나왔다. 남편을 미워하면서 거실로 나왔다면 그것은 물러남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남편을 상대하기를 그만두고 내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 나왔다. 둔(遯)! 그 싸움의 전선에서 홀연히 물러선 것이다. 물론 나는 둔의 마스터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지금 내 처지는 “얽매이는 운둔이라 병이 있어서 위태로우나, 신하와 첩을 기르는 데에는 길하다(係遯 有疾 厲 畜臣妾 吉)”는 구삼효 쯤이 아닐까 싶다. 상체의 거칠 것 없는 하늘에 자리한 사효, 오효, 상효는 좋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둔의 경지(好遯, 嘉遯, 肥遯)에 올라 있다. 하지만 구삼효는 막아서고 얽어매는 하체 간(艮)에 자리하고 있는 계둔(係遯), 육이효에 꽁꽁 매여 있는 둔이다. 그래서 신속하게 물러나지 못하니 병이 있고 위태롭다.
그런데 ‘물러남이면 물러남이지 매여 있는 물러남도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동시에 그 관계 안에서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최선은 계둔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계둔은 늘 위태롭다. 자칫하면 이 매임 때문에 병들기 쉬운 까닭이다. 얼마 전부터 나는 거실살이를 청산하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다. 미워하는 대신 멀리하는 법을 배웠고, 그로 인해 우리는 둘 다 약간 더 자유로워졌음을 느끼고 있다. 역시 주역 공부는 매우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