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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그냥 지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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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1-15 21:03 조회1,3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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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켜보기’

화요대중지성 정리

질문자1: 좋아하는 이성이 생기면 만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노력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노력을 해야 만날 텐데 ‘내가 왜 이러지?’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고…

정화스님: 지금 20대가 일반적으로 베이스에 깔고 있는 생각이 같은 생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좋아할 수도 있고 만날 수도 있지만, 가정을 이뤄서 아기를 낳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별로 없어요.

우리나라가 지금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불평등지수가 높은 걸로 3등 안에 들어갈 거예요. 갑을 관계는 거의 1등을 가고요. 그런데 옛날에는 이런 것을 보는 것을 어른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먹는다는 식으로 합리화가 됐었어요. 지금은 어른들의 말을 들어도 떡도 나오지 않아. 쓸 데가 없잖아요. 사회를 보니까 불평등하고 갑을 관계가 심해요. ‘나도 이런데 내 새끼까지 힘들어지는 상황을 내가 뭐 하려고 하려고 해’ 라는 것이 의식적 상황이 아니에요. 무의식이 이미 젊은 애들한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물론 좋아서 동거를 하긴 하되 애는 갖지 말자.’ N포 시대라는 말은 단순한 사회적 책임의 정도를 넘어서 결혼해서 출산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불평등한 상황을 대를 물려준다는 무의식적 기제가 이미 작동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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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님이 그렇게 안 하는 것은 단순히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아이고 그런 걸 꼭 해야 해? 결혼할 필요가 뭐가 있어?’ 하는 무의식이 만들어놓은 내부 통로가 굉장히 강력해요. 지금 보니깐 좋긴 하지만 ‘내가 저거를 만나 인생 불편하게 살 거 뭐 있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깊어요. 그런데 아까처럼 연습을 해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지금 거기에 약간의 금이,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거예요. 지금 상황에서. 그래서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하고 싶으면 좀 더 사귀어서 구멍이 커지면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거고, 구멍이 안 커지면 그 무의식적인 판 자체가 안 바뀌어요. 그러면 (그 사람을) 만나면 싫어할 이유를 찾아요. 좋아서 만났잖아요. 그런데 판이 만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싫어할 이유를 찾아, 그래요. 나는 안 그럴 거 같아도 인간은 원래 그래요. 그래서 약간씩 좋아하는 연습을 하다가 구멍이 커지면 그때는 좋아하는 이유를 훨씬 많이 찾게 되고 그렇게 하려는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그 판이 적으면 균열이 적으면 거기에 맞게끔 적게 해야 해요.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면 만나고 와서 ‘아 괜히 만났네.’ 이렇게 하기 쉬워요. 지금 애들, N포 시대의 이 이야기 자체가 우습게 할 이야기가 아니에요. 사회적 무의식과 개인의 무의식이 ‘너 그렇게 살아서 자식 낳아서 너 혼자 고생하는 것도 힘든데 새끼들까지 고생시키고 싶냐?’ 하는, 우리의 뇌 속에는 이런 판이 깔려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할 수 있는 한에서 노력을 하면서 내가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판에 있는 힘을 조금씩 상쇄시켜가야 해요. 그게 상쇄되지 않으면 ‘되고 싶은 것’하고 ‘저렇게 되지 말라’고 하는 것하고 부딪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되지 말라고 하는 힘이 더 큰 거잖아요. 그러니까 되지 말라고 하는 힘이 크니까 갔다 만나고 오면 그 만나고 온 것이 계속 안 될 이유를 만드는 거예요. 특별한 의미를 갖지 말고, 만날 기회가 있으면 자주 만나고, 안에 판들이 ‘만나 봐도 괜찮네.’라는 것이 성립되면 아주 좋아할 거예요. 지금은 그냥 어떻게 생각하면 만나고 싶고, 안에 무의식은 ‘뭐 그걸 만나냐?’ 계속 두 가지가 이런 거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것이죠. 어려워요. 그래서 옛날에 이러한 과정을 불교에서는 통틀어서 그냥 업(業)이라고 해요. 업. 이 업이 그래요. 요즘은 연애, 결혼, 출산을 3포라고 해요. N포의 대표격이죠. 처음에는 N포의 대표였어요. (이들은) ‘결혼을 요즘 뭣하러 해요? 안 해.’ 그러다가 했어. 어쩌다가. 그러면 ‘출산을 왜 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를 깔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연애적 지침이 그런 것을 훨씬 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되어버린 거예요. 사회적으로. 이런 게 사회적으로 있으니까 정부에서 무슨 실제 보수 진보인지 알 수 없지만, 보수 진보 정권들은 막 수백 조 넣어서 제발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라고 수백 조를 투자했어요. 대통령들이. 근데 거의 아무 효과도 없어요. 돈을 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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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보살님도 언젠가는 연애를 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끌어당겨야 되는 것이지요. 어느 계기를 떠나서 균열이 좀 생겨서, 자꾸자꾸 만나서, 억지로 하면 잘 안 되니까 계속 만나서 균열을 좀 키워가기 시작해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에요. 적극적으로 해봐야 균열 나기 전엔 더 만나지 않기를 단단히 할 거예요. 편안한 게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만나지 마시고.

질문자2: 저는 평소에도 ‘제가 좀 문제다’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피해의식이 많더라고요. 저희 엄마한테도 그렇고, 관계 맺는 (독특한?) 사람들한테 항상 제가 약하고 당했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지금도 조금 괴로워하고 있어요. 이런 의식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화스님아니 그냥 피해의식이 아니고 피해를 입은 거죠. 그런데 그분들은 피해를 준 지도 모르고 있을 뿐이지.

질문자2: 그런데 일방적이지는 아닐 거 같아서요. 제가 일방적으로 당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정화스님: 어렸을 때 기억은 피해를 입었던, 안 입었던, 상관없이 그런 기억이 남아 있으면, 자신을 그 상황에서 피해받는 것으로 기억하는 일이 만들어져요. 그렇게 만들어지는 데에 그분들 작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용이 저쪽에서 어떻게 했던 상관없이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접속 코드가 각기 다른데 그쪽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잘 감지할 수가 없어,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서로 잘 모르니까. 엄마라고 해도 딸을 모르고 아빠도 딸을 잘 모르니까 본인들이 살아왔던 경험 기억을 가지고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본인이 그것이 피해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피해라는 거에요. 일방적으로 원했던, 안 원했던, 관계없이. 그래서 내가 피해를 별로 안 받았는데 피해받은 것처럼 느끼는 게 아니고 (그렇게 되어있으면) 그것 자체가 이미 피해받은 거예요. 상대가 고의적으로 한 것하고 상관없이 나한테 남아 있으면.

그런데 이런 것들을 받아들일 때, 방금 말씀드렸듯이 본인이 접속하는 방법 중 하나거든요. 이것도 잘못된 게 전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들 중에서, 형성된 것 중에서 특히 어떤 사람이 잘못했거나 내가 잘못했거나 이런 게 아닌데 내가 그런 인연들의 조각들을 조립할 때 그렇게 하는 성향이 있었던 걸 강화하는 거예요. 거기까지는 잘못했다 잘했다 말할 수가 없어요. 성격이 형성됐을 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예를 들면 전에 늘 말씀드리지만 태어나자마자 환경과 접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경험을 계속 만들어 가요. 사람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것을 인지할 때 지금 이 자체를 전부 인지하는 게 아니고 여기 대충 얼키설키 만들어놓고 공간이 텅텅 비어있어요, 1차 지각은. 2차부터는 그곳에 전부 채워 넣는 거예요. 채워 넣기가 사람이 지각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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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간혹 보살님이 어떤 인연과 반응해서 나머지 다른 인생에 경험들을 어떻게 채워 넣을 것인가가 학습되어있는 양이 그런 식으로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내가 지각 있고 생각이 있을 때도 안에 만들어진 채워 넣은 조각들 중에 그런 것이 많이 쌓여있을 수 있는 거예요. 여기까지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그냥 쌓여있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일을 당하기만 하면 “아! 이거 또 내가 약해서 당하나”라는 식으로 파악하기 쉽도록 생각의 한 루트가 정해져 있는 거예요. 그렇게 일어나면 여기까지는 잘잘못이 아니에요. 본인이 당하는 괴로움이나 힘든 게 있는 것이지만 잘잘못을 따질 수가 없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주변에서 일방적으로 나한테 한 것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위해를 가하지 않는 행동인데도 나한테는 거기까지 접속이 될 수 있는 거예요. 거기까지는 그냥 ‘아~ 내가 살아온 과정에서 만들어놓은 세계 해석에 조각들이 이 부분이 많은 거구나.’라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1차에요, 마음을 바꿔서 훈련하는 게 1차.

거기다 대놓고 두 번째는 ‘나는 왜 이래?’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이것은 그냥 자동적으로 무의식이 만들어 준 거예요. 의식은 굉장히 자기가 주체적으로 의식하는 게 거의 없어요. 무의식이 만들어 준 것을 가지고 의식한 것처럼 의식하는 거예요. 근데 이 무의식은 아까 말한 대로 그냥 지가 이런 사건이 오면 개입하고 싶은 조각들을 거기다 끼워 넣는 거예요. 이걸 내가 어떻게 막을 수가 있겠어요. ‘아 그래서 이런 조각이 끼워져서 지금 나한테는 이런 심리 상태가 있는 것이구나.’라고 거기까지 보고 여기에 대해서는 너무 그런 쪽으로 개발하지 말고요. ‘내가 불필요한 조각들을 많이 집어넣으면서 힘이 들고 있구나.’ 거기까지면 돼요. 거기까지만 알아차리고 훈련을 계속하면 나중에 이 조각들이 점점 끼어들지 않게 돼요. 즉 의식해서 피해의식이라고 하는 인지가 딱 떠서 거기서 ‘나는 왜 이래.’ 뭐 이렇게 하잖아요. 그것이 다시 안에 영향을 끼쳐서 다음에도 그 조각들을 빨리 끌어오도록 하는 힘을 계속 키워가는 거예요.

상황이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어도 올라오면 그렇게 돼요. 그래서 혹시 그런 사람을 만나거나 보는 일이 있으면 ‘쟤는 왜 저렇게 욱하지?’, ‘쟤는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상한 얘네.’ 이렇게 볼 수가 없어요. 그것이 내 안에서 자기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에요.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하지만, 그 사람한테는 유일무이한 세상을 보는 방법 중 하나에요. 그러니 괴로워요. 근데 그것은 지금 내가 안 하고 싶다고 해서 안 일어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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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부터는 아까 말한 대로 일어나면 불교에서 말할 때 그냥 지켜보기라고 해요. 그냥 지켜보기’ 마음을 챙긴다는 건 특별히 챙기는 게 아니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좋다나쁘다라는 분별을 개입하지 않고 그냥 보는 거예요. 그것이 나예요. ‘나는 약간의 피해의식을 느끼는 (여기 피해의식을 안 느끼는 사람이 없는데 그건 강도의 차이죠) 강도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많구나.’ 여기까지가 끝이에요. 거기까지만 알면 돼요. 그러면 다음부터 그것이 다음 감정을 만들어 내는 데 크게 개입을 하지 않기 시작해요.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한 게 좀 줄어들 거예요. 지금부터 계속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일어나다가 일어나면 ‘아 그 조각이 개입돼서 해석과 감정이 올라오고 있구나.’ 그리고 또 다른 일을 하면 돼요. 지금 당장은 안 일어나게 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그것이 하나의 생각의 루트가 만들어지려면 단백질이 단단해지고 시냅스가 커지고 도로가 커지고 그래요. 내 안에 이미 그와 같은 도로들이 잘 나 있어요. 근데 그것은 어떻게 하루아침에 없앨 수가 있겠어요.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보는 훈련을 해야 해요자책 판단하지 마시고 그것이 불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마음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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