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하다. 석영이와의 일처럼 매사 주춤거리던 내가 어떻게 움직이게 된 걸까? 평소 나는 어떤 액션을 취하기 전에 상대를 의식하며 그 속마음을 가늠해보곤 했다. 대개는 ‘저 사람도 나를 불편해하고 있을 거야.’ 같은 부정적인 망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또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장님과 나 사이에는 언어가 다르다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기에 그의 말 한 마디, 표정, 제스처도 놓치지 않아야 했다. 그야말로 스타트선 앞에 선 달리기 선수의 ‘스탠바이’ 상태였다고나 할까. 그것은 두려워서 온 몸이 딱딱해지는 긴장과는 달랐다. 반대로 뭐 한마디라도 놓칠까 귀가 쫑긋해지고 온 몸의 세포가 활짝 열리는, 뛰쳐나가기 위한 힘을 극도로 응축해놓은 모드였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의식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어플을 내밀었다. ‘자동차로 상공산에 가고 싶습니다. 4명.’ 이 문장으로 우리의 치열한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 시간이 너무도 쏜살같이 지나가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나는 번역기가 번역하기 쉽게 간단한 문장을 만들려고 애썼고, 사장님이 조사가 엉망으로 번역된 한국어 문장을 내밀었을 땐 완벽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두뇌를 풀가동 했다는 것밖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땐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OK 사인을 보냈고, 근영샘이 내가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했을 땐 망설임 없이 다시 물었다. 사장님도 비교적 정확한 문장이 나오기까지 번역기에 말하고, 또 말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으며, 이해했다. 아, 그 과정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사실 나는 사장님을 보기 전부터 기대에 차 있었다.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렇기에 중국어를 모르면서도 무작정 근영샘을 따라 갔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만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는데 나는 사장님과 누구보다도 강렬한(?!) 접속을 할 수 있었다. 무엇을 꼭 알아내야겠다는 목적의식도 없었다. 석영이 때처럼 속마음이 어떤지 짐작하고 살피는 과정도 없었다. 그저 이 만남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예감으로 무작정 부딪혀보니 마음이 열리게 되고 오롯이 그 상황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자 상대의 반응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포착했던 것은 단지 정보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 섞여 들어오는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즐거움, 기쁨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순수한 ‘강도(強度)’ 그 자체였다. 나는 그 강도를 따라 상대의 이야기에 빨려들어 갔다. 그것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긴장과 리듬감을 동반했다! 겉으로는 우리가 정보만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그 안에는 다른 흐름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움직임을 좇느라 ‘나’라던가 ‘너’라던가 하는 의식은 까마득히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