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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물구덩이에 빠졌다면 물이 차도록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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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11-24 09:38 조회1,5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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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덩이에 빠졌다면 물이 차도록 기다려라






이성남(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重水 坎 ䷜

習坎, 有孚, 維心亨, 行有尙.

初六, 習坎, 入于坎窞, 凶.

九二, 坎有險, 求小得.

六三, 來之坎坎, 險且枕, 入于坎窞, 勿用.

六四, 樽酒, 簋貳, 用缶, 納約自牖, 終无咎.

九五, 坎不盈, 祗旣平, 无咎.

上六, 係用徽纆, 寘于叢棘, 三歲不得, 凶.

 

얼마 전 수능이 끝났다. 입시철이 돌아오니, 작년 이맘때 공부로 아이와 복닥거리며 갈등하던 때가 떠오른다. 학교교과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는 아이를 치열하게 경쟁하는 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나의 험난함은 시작됐다. 나는 아침마다 아이를 등교시키며 차안에서 아이의 공부를 점검하고 틈틈이 아이의 뒤처진 공부를 도와줄 족집게 선생님을 붙여주고 성적을 올려준다는 학원을 골라 보냈다. 공부에 몰입하기를 바라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는 공부는 건성이고 외모 꾸미기와 취미활동을 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바짝 공부해서 괜찮은 대학엘 들어가야 아이 인생의 다음 스텝이 열리는 거 아닌가? 나는 불안했다.

인생사에서 예측불허의 물구덩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괘가 감괘(坎卦)이다. 감괘의 감(坎)은 물이다. 감은 물의 지혜로움과 동시에 느닷없이 만난 물구덩이, 험난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감이 당면한 국면은 초효부터 육효까지 마음을 졸이게 한다. 캄캄한 웅덩이로 들어가 흐르지 못하거나 종국에는 가시덤불에 던져져 삼년 동안 꼼짝없이 갇혀있게 되는 상황까지. 한시라도 마음 놓을 때가 없는 험한 괘다. 감괘의 이런 고투와 험난함이 연이어 온다하더라도 물은 지혜를 상징하니 험난함을 대처하는 방식도 남다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괘사에서 붙들고 있는 유일한 형통함이 ‘유부(有孚)’이다. 오직 진실한 마음에만 의지해서 가야만 형통하고 가상하단다.(維心亨, 行有尙) 헐~

그러나 사람이 험지(險地)에 처하게 되면 먼저 이 사단이 나게 된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남 에게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한다. 딱 육삼효의 상황이다. “오고가는 때에 빠지고 빠지며, 위험한데 또 타인의 도움에만 의존하여 더 깊은 웅덩이로 들어가니 쓰지 말라.(來之坎坎, 險且枕, 入于坎窞, 勿用.)” 육삼효는 물구덩이에 빠졌을 때 쓰면 안 되는 카드를 썼다. 험난함을 벗어나려고 꼼수를 쓰면 오도가도 못 하는 위험만 초래할 뿐이다. 구덩이에 빠졌다면 물이 차도록 기다리는 인내심이 ‘정도’이다. 그런데 육삼은 ‘목침’을 베고 아예 누워버렸다. ‘침’은 타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다. 그런 태도로는 험난함을 통과해 가기란 어림도 없다. 험하고 힘들다고 다른 꼼수를 써봐야 더 깊은 웅덩이로 내려가 험한 꼴만 당할 뿐이다. 그 이치를 알려 주는 구절이 ‘험차침 입우감담 물용’이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를 천천히 기다려주며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를 살피기보다 성적을 올리겠다는 목표만 설정해 밀어붙이다 결국 육삼효까지 이르렀다. 초조해진 나는 급기야 철학관을 찾아갔다. 아이의 사주가 자기기운이 강해서 고집이 세니 작명하는 방법으로 태과한 기운을 덜어내 균형을 맞추라는 조언을 들었다. 거금을 들여 아이의 새 이름을 받아들었을 때 문제가 곧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이가 완강하게 거부해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하고 낯선 이름을 적은 종이는 장롱 속에 잠자고 있다. 지금 돌아보면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아이는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대화를 거부했다. 학교생활도 교우관계도 엉망이 돼 가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감이당 도반 선생님에게 나의 이런 상황을 상담했다. “그렇게 애면글면 하지 말고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무난하게 3년을 마치는 걸 목표로 하면 안 될까?” 의외로 선생님의 답변은 단순하고 담담했다.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가 ‘공부 못하는 아이’로 고등과정을 마친다는 선택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경쟁이 덜한 학교로 전학 아니면 자퇴까지도 생각하며 아이를 닦달해오고 있었다. 이런 나의 어리석음이 고등학교 과정을 ‘입시지옥’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아이와 내가 허우적대고 있는 구덩이 상황이 인지됐다.

정이천은 위험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정도로만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육삼효와 같은 처신은 물용! 쓰면 안 되는 카드다. 절대 구덩이에서 헤어날 수 없다. 우선 나의 헛된 욕심 때문에 어그러진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했다. 아이에게 그간의 미안함을 진심을 다해 전달했다. 진실한 마음이 통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여유롭게 고3을 맞이하게 됐다.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이고 시험제도가 달라질 리도 만무하다. 입시지옥을 부추기는 경쟁과 출세, 성공도식을 따라가던 나의 어리석음을 끊어내자 찾아온 마음의 평화다. 험난함에 빠지면 묘책이 따로 없다. 물이 차올라 물구덩이가 메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려야만 험난함을 통과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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