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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한서라는 역사책]한나라의 가을, 공정한 신상필벌이 필요한 시대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11-05 12:33
조회 : 66  




한나라의 가을, 공정한 신상필벌이 필요한 시대

박장금(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선제 유병이의 운명은 드라마틱하다. 아버지가 황제가 될 운명이었으나 무고의 화로 인해 죽었고, 그 화가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했지만 귀인 병길의 도움으로 목숨을 보존한다. 18년간 평민으로 추락했다가 갑자기 황제로 급상승. 생사를 오가는 굴곡 속에서 정신 차리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굽이굽이 마다 잘 대처하는 그가 너무 놀라웠다. 정치적 기반이 없을 때는 조용히 곽광의 도움을 받아 국정을 운영하다가 자립할 시기가 되자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정치를 펼쳐 보인다.

솔직히 곽광이 주도할 때의 그는 유순한 왕으로 여겨져 리더쉽을 제대로 발휘할까 싶었다. 하지만 과거의 칼을 찾는다며 허황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강단 있는 선제에게 놀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황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고, 평민 생활에 익숙한 그가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거둘 수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기우였다. 그는 나약한 군주가 아니었다. 무제에 이어 또 한 번의 중흥기라고 평가되는 시기가 선제가 정치를 펼친 때이다. 무제 이후 휘청거렸던 한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선제만의 정치! 그것은 어떤 정치였을까.

선제는 법가인가?

그의 정치 색깔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선제와 앞으로 원제가 될 태자의 대화를 들어 보기로 하자.

태자 : “폐하의 형벌 적용은 너무 각박하시니, 마땅히 유생을 등용하셔야 합니다.”

선제 : (화를 내며) “한가(漢家)에 내려온 제도는 본래 패도와 왕도를 혼합 적용하였는데 어찌 덕정과 교화에만 맡기는 주나라의 인(仁)의 정치를 쓰겠는가. 게다가 속유(俗儒)는 시의(時宜)를 알지 못하여 즐겨 옛 것이 옳고 지금 것은 틀렸다고 말하여 다른 사람에게 명분과 실제를 혼동하게 만들며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맡길 수 있겠느냐?”

(탄식하며) “태자 너 때문에 나라가 혼란할 것이다.”

이로부터 선제는 태자를 멀리했으며 법을 편애하며 말했다.

선제 회양왕은 똑똑하고 법을 좋아하니 내 아들로 마땅하다.

그러면서 회양왕의 생모인 장첩여를 더욱 총애하였다. 선제는 회양왕을 태자로 삼으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젊어 허씨(허황후)에게 의지했었고 부자가 미천한 자리에서 기신하였기에 끝내 허황후와 태자를 버리지 않았다.

(「원제기」, 『한서』 1권, 명문당, 496쪽)

이 대화만 봐서는 선제가 유가를 외면하고 법가를 편애한 것으로 보인다. 맞다. 선제는 법가를 중시했다. 물론 우리도 진나라가 법가로 망했기 때문에 법가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선제를 진시황과 비슷한 왕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진시황이 법가에 대한 이미지를 망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법 자체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나라를 다스리려면 법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법을 다루는 사람이다. 아 지금도 여전히 그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검찰 개혁을 외치는 이유 또한 검찰, 즉 사람이 바뀌지 않기 때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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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는 유생 등용을 주장하는 태자를 나무라고 있다. 유학의 나라에서 이것이 왜 문제인지 언 듯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선 태자가 유학을 선호하는 이유부터 이해해야 한다. 한나라는 황로학을 정치 이념으로 삼았다가 무제 시대부터 유학으로 갈아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태자는 유학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주나라 정치를 이상으로 삼은 태자의 시선에는 선제의 형벌 적용은 가혹해 보였을 것이다. 선제는 궁중에서 자란 온실 속 화초 같은 왕이 아니었다. 생사는 물론이고 평민과 황실을 오가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처세의 달인이다. 그가 볼 때 태자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몽상가 정도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반고가 기록한 어린 선제를 잠시 보고 가기로 하자.

  “황증손은 동해군의 복중옹에게 시를 배웠는데 재능이 뛰어났고 호학하였으나 유협의 기질에 투계와 말타기를 좋아했으며 마을의 불량배와 관리들의 선악을 잘 알고 있었다, 능현을 둘러보았고 삼보 지역을 두루 돌아다녔으며 가끔 연작현의 염지에서 타인에게 시달림을 당하기도 했었다. (중략) 온몸과 발에도 털이 많았고 누워 있을 때는 몸에서 빛이 났다. 증손이 떡을 사면 떡장수는 그날따라 많이 팔렸는데 황증손도 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선제기」, 『한서』 1권, 명문당, 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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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는 문무에 뛰어났다. 무협기질을 가졌을 뿐 아니라 불량배와 관리들의 선악을 분별하는 판단력을 타고났다. 이곳저곳을 두루 다니는 활달한 성품의 소유자이도 했다. 시달림을 당했다는 것은 약자 입장을 경험해 본 것이다. 만약 황실에서 태어났다면 약자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유달리 선악 분별이 강한 선제의 눈에 이유 없이 시달림을 당했으니 부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선제의 정치는 평민 시절 자신이 온몸으로 경험한 것을 반영하지 않았을까. 온몸에 털이 많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온 몸의 털은 피부와 관련이 있으므로 폐가 주관한다. 폐는 오행 중 금기에 배속된다. 금기는 가을 기운으로 숙살지기의 기운이다. 선제의 기질은 금의 기질을 타고 난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선제는 현실적인 군주였다. 그 계산에 의하면 법을 잘 써야 한다. 태자가 때를 모르고 형벌을 부정하는 철부지 같은 멘트를 하니 선제는 답답했던 것. 오죽하면 태자로 인해 나라가 혼란해질 거라는 말까지 했겠는가. 그리고 태자까지 바꾸고 싶었겠는가. 선제는 타고난 금기의 자질로 인해 의리를 중시한 황제였다. 태자가 못 마땅함에도 내치지 않은 것은 허황후의 도움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니 의리의 황제 선제 캐릭터가 그려진다. 가을의 기운, 금의 기운을 타고난 선제는 과연 어떤 정치를 펼칠까.

선량한 2천석, 좋은 사람이 필요해

선제는 곽광이 죽은 후 모든 정사를 친히 챙겼다. 황제가 직접 정사를 챙기고 5일에 한 번씩 보고를 받으니 승상 이하 모든 신하가 자기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선제는 인사도 일일이 챙겼다. 친히 만나서 경력을 물어보았고, 실무능력과 언행을 살펴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으면 반드시 밝혔다. 선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민이 편히 농사지으며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은 ‘정사와 송사가 공정’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이를 이룰 자는 아마 오직 선량한 2천석일 것이다.”

(「순리전」,『한서』 8권, 명문당, 293쪽)

선제 또한 백성이 편히 농사짓기를 바라는 마음은 문경제와 다르지 않았다. 그가 선왕들과 다른 점은 ‘정사와 송사의 공정성’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것을 강조한 것은 과거에 비해 그 만큼 풍속이 문란해졌음을 의미한다. 문경제 때는 진나라의 폭정으로 인해 백성들이 지쳤기 때문에 원기 회복이 다스림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백성은 이미 무제 때 물질적으로는 풍족해졌다. 선제 때에는 그 풍족함이 지나쳐서 조절이 불가피한 지경에 이른다. 이제 과함이 지나치니 가을의 서리처럼 매서운 신상필벌이 필요하다. 공정한 법이 적용될 때 억울한 백성이 없게 될 것이고, 다른 신경 쓰지 않고 농사에 전념을 할 거라고 선제는 판단한 것이다.

‘선량한 2천석’은 이 정도의 녹봉을 받는 관리로 ‘태수’를 의미한다. 선제는 백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 관리가 백성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이런 판단은 평민 시절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리라. 하여 태수가 자주 바뀌면 백성이 불안하니 백성과 신뢰를 쌓으면서 오래 재임하게 했다. 태수는 행정 관리이지만 동시에 백성의 스승이 되어 백성을 교화에 힘써야 했다. 관리가 백성을 교화한다니 공무원하면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직업 정도로 여기는 우리로써는 참으로 낯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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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는 백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 관리가 백성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주공이 백성도 천명을 받은 존재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왕은 천명을 받은 존재지만 천명은 백성에게도 주어졌다. 왕은 백성을 교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직접 할 수 없으니 태수를 통해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니 태수는 천명을 전하는 전령사이자 백성의 스승이어야 했다. 태수가 청렴한 관리이자 백성의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선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2천석 녹봉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국서를 내려 격려하고 녹봉을 늘려주고 금전이나 작위를 하사한다.

훌륭한 태수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앙관리가 결원이면 표창을 받는 지방 관리 중에서 선발하여 순차적으로 등용하였다. 선제의 태수 중시 정책으로 인해 중앙 관리와 지방 관리의 차등이 없어졌다. 굳이 중앙 관료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고, 오직 정성을 다해 백성을 돌보고 교육하는데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백성을 살리는 디테일한 정치

당시 한나라는 건국 초기가 아니다. 번성한 무제의 시대를 지나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국력이 커지고 번성한다는 것은 가을로 수렴해야 하는 운명을 내포하고 있다. 가을은 숙살지기이다. 그 기운은 여름의 무 작위적으로 번성한 것을 차갑고 결단력 있는 엄정함으로 정리하는 기운이다. 차가운 날씨, 마르는 낙엽을 보라. 무더운 한 여름의 더운 공기를 한 순간에 차가운 시공간으로 전환해 버린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가을의 풍요로움이란 화려함을 절제하여 기운을 안으로 향할 때 가능한 법. 여기서 기운을 안으로 행한다함은 백성의 민생 안정을 뜻한다. 그러니 가을에 가을답지 못한 것들에 대해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엄격히 하는 것은 당연지사. 쉽게 말해 적폐청산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만약 봄과 여름이라면 법가의 정치는 가혹할 수 있다. 새싹이 자라지도, 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뭐 그리 절제할 일이 있겠는가. 지금은 가을이다. 문란해진 풍속을 다스려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가을에는 가을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 가을에 봄의 정치를 하게 되면 여름에 번성한 적폐가 죽지 않고 계속 번성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은 기대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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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풍요로움이란 화려함을 절제하여 기운을 안으로 향할 때 가능한 법.

가을의 신상필벌이 죽이는 듯 보이나 적폐청산이 그러하듯 목적은 백성을 살리기 위함이다. 선제의 백성을 살리는 마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흉년이 들면 백성 구제를 위해 궁실에 필요한 인력을 최소화하여 나머지 인력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도록 한다거나 부모나 부부가 죄를 지어서 사형에 처하면 가족들은 숨길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선제는 인륜 관계를 헤아려 처벌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천자 이름 병이(病己)가 너무 흔한 글자였다. 황제 이름에 쓰인 글자는 함부로 쓰면 안 되었는데 자칫 하다 쓰게 되면 법에 걸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자 선제는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순(詢)으로 바꿀 정도로 백성을 헤아리는 마음이 디테일한 곳에 가 닿아 있었다.

  “짐은 백성들이 생업을 잃고 가난한 것을 생각하여 사자를 지방에 파견하여 군국을 순행하면서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보게 했다. 어떤 관리들은 사욕을 채우려고 백성을 괴롭히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니 않는다. 아니 짐은 이를 심히 안타까워한다. 금년에 많은 군국에서 수해를 당하여 빈민을 구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소금과 백성의 양식 그 두 가지가 모두 비싸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천하의 소금 가격을 낮추도록 하라.”

(「선제기」, 『한서』 1권, 명문당, 449쪽)

늘 백성의 고통을 살피고 지방관리 감독도 잘하고 소금 값이 비싸면 가격을 낮추는 등 백성의 삶 속에 깊숙이 개입하여 백성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그의 배려는 폭넓고 세심하여 옥중에 있는 죄인에게도 미쳤다.

  “영갑(令甲_법령과 명령)에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고, 형으로 잘린 몸은 다시 자라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선제께서도 매우 걱정하셨으나 관리는 거기에 부응하지 못했다. 지금 갇혀 있는 백성이 고문을 당하거나 아니면 굶주림과 추위로 옥중에서 병사하는데도 마음 씀씀이가 어찌 이처럼 인도와 어긋날 수 있는가! 짐은 심히 마음이 아프다. 군국에 명령하여 갇혔던 죄수가 고문이나 태형 또는 옥중에서 1년간 몇 명이나 죽었으며 그 죽은 죄수가 연관된 관리의 이름, 형과 작위와 마을을 보고하게 하여 승상과 어사대부는 효과(孝課)에 반영한 뒤에 짐에게 보고하라.”

(「선제기」, 『한서』 1권, 명문당, 500쪽)

왕이 죄수의 굶주림과 추위로 인한 병사까지 챙기기가 쉽겠는가. ‘마음이 아프다’는 말에 유마 거사의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선제는 구체적으로 명령하고 있다. 어떤 벌로 몇 명이나 죽었는지, 관리가 누구인지 등. 백성을 힘들게 하거나 관리가 소홀한 지방관을 필터링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는 늘 좋은 관리를 천거하도록 계속 조서를 내린다.

  “관리나 백성 중에서 수신하여 행실이 바르고 경학에 박통하여 선왕의 통치술을 잘 알아 그 진의를 궁구한 자를 널리 추천 받아 2명씩 짐에게 천거하고 중이천석 관리는 각 1명씩 천거하기 바란다.”

(「선제기」, 『한서』 1권, 명문당, 453쪽)

  “형옥(刑獄_형벌과 감옥)은 만백성의 생명과 관계가 있으니 폭력과 사악을 금지하여 군생을 양육하려는 뜻이다. 산 자에게 원망을 듣지 않고, 죽은 자에게는 원한이 없어야만 법문을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아니하니 법을 적용하면서 어떤 자는 교묘한 속셈으로 법조문을 다르게 해석하며, 형량이 달라 공평하지 못하고, 없는 말을 보태거나 잘못을 지어내어 죄를 읽어내기도 한다. 사실과 다르게 상주하면 짐도 알 길이 없도다. 이는 짐이 명철하지 못한 것이니 천하 백성은 어디를 쳐다보겠는가. 태수는 소속 관리를 잘 살피되 그런 자를 등용치 말라. 관원은 멋대로 요역을 부과하고 규정 이상으로 음식을 접대하거나 전사(傳舍_객사)을 꾸며 지나는 사자의 환심을 사고 직분과 법을 어기면서 명예를 얻으려 하는데. 이를 비유하자면 얇은 얼음을 딛고서 한낮의 해를 기다리는 것과 같으니 어찌 위태롭게 않겠는가! 지금 온 천하에 역병이 크게 유행하여 짐은 심히 걱정스러울 뿐이다. 군국에 명령하여 재해를 심하게 당한 자에게는 금년의 조부(租賦)를 면제 시키라.”

(「선제기」, 『한서』 1권, 명문당, 455~456쪽)

금의 기질을 타고난 선제는 가을의 신상필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군주였다. 하지만 진시황처럼 법 그 자체 보다는 법을 쓰는 자를 키우는 데 공을 들인다. 공정한 법이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법도 사심이 개입되면 간사한 법이 되기 마련이다. 결국 공정한 법은 백성의 억울한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함으로써 생업에 집중할 수 있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여 한나라의 또 한 번의 중흥기로 평가되는 이 시대는 선제의 때를 읽는 힘과 왕이라는 지위, 그리고 백성의 고통이 어디에 있는가를 디테일하게 짚어내는 능력, 이 3박자가 만들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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