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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과하게 누리려다가 등뼈가 벌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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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10-27 17:02 조회1,4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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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게 누리려다가 등뼈가 벌어지다


이성남(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重山艮 ䷳

艮有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

初六, 艮其趾, 无咎, 利永貞.

六二, 艮其腓, 不拯其隨, 其心不快.

九三艮其限列其夤薰心.

六四, 艮其身, 无咎.

六五, 艮其輔, 言有序, 悔亡.

上九, 敦艮, 吉.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지인이 올린 글을 읽고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이유인즉슨 그녀가 미국과 캐나다를 2주간 체류예정인데, 여행 가기 전날 척추에 주사 6대를 맞고 진통제를 챙겨가서도 무리를 하고 있어서다. 몇 년 전 여행에 눈이 멀어 과욕을 부리다가 허리디스크 고질병을 얻게 된 나의 케이스가 떠올랐다. ‘열정과 의욕이 넘쳐서 욕심인 줄 알면서도 시간이 아까워서 잠도 못 자요. 돌아가서 몸살 날지언정 최대한 보고 싶어요.’라며 그녀는 여행, 뮤지컬, 독서 리뷰를 위해 온몸을 불태우고 있었다. 내가 볼 때 중독 수준이다. 몸이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멈추지 못하며 습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골이 휘는지도 모르고 쾌락에 눈이 멀면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제발 멈추라고 삐-익 경보를 수없이 울렸음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생명의 신호를 무시할 때 치러야 할 대가는 돌이킬 수 없다.

고대 삼역 중 하나인 『연산역』에서는 간괘(艮卦)를 맨 처음 배치했다. 고대인들이 건괘나 곤괘 못지않게 멈춤의 도리를 담고 있는 간괘 또한 중요하게 여겼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단서가 되는 구절이 『단전』에 있다. 그쳐야 할 때 그치고 가야 할 때 가서 움직임과 고요함에 그 때를 잃지 않으니그 도가 밝게 드러난다.(時止則止時行則行動靜不失其時其道光明)” 멈춤의 도(道)는 다름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알아서 그칠 줄 아는 지혜다. 그런데 때를 잃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공자님이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멈출만하면 멈추고 오래할 만하면 오래하고 신속하게 해야 할 때라면 신속하게 해야 하는 때를 그때그때 알아 움직였다는 그 이치다. 그러니 간괘에서 멈춘다는 말을 단순하게 ‘STOP’하라는 말로 오해하면 안 된다. 시중(時中)! 상황에 부합하는 딱 그 자리(位)에서 멈추라는 의미다.

간괘의 효들은 발이나 장딴지, 허리, 몸, 뺨과 같이 우리 신체 부위에서 각각 어떻게 그치고 있는지 멈춤의 여섯 단계의 과정을 보여준다. 때를 잃지 않고 적절하게 멈추거나, 때를 놓쳐 어리석게 멈추거나. 그중 나나 지인의 경우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구삼은 한계에서 멈추는 것으로서등뼈를 벌려놓은 것이니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艮其限列其夤厲薰心) 이 상황은 한계에서 강제로 멈추게 되니, 우리 몸의 위아래를 연결하는 척추가 끊어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 몸의 중심인 척추가 어긋나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가장 궁색한 지경으로, 모든 활동이 중지되는 위험천만한 상태다. 우리 삶도 적절하게 멈추지 못하고 임계치를 넘어버리면 균형을 잃어 휘청거린다. 이렇듯 구삼효처럼 때를 놓쳐 멈추게 되면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 경로를 이탈한 등뼈가 근육의 신경을 건드려댈 때 그 통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몸도 무너지지만 애태우며 마음 졸이는 번뇌는 또 어떤가. 그 심신의 고통을 ‘열기인 려훈심(列其夤, 厲薰心)’으로 리얼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중독에 빠지면 왜 적절한 자리(位)에서 멈추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쾌락의 회로는 고속도로와도 같다. 감각의 노예가 돼버리면 내달리기만 하지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주역은 ‘간기배(艮其背)’하라고 한 것이다. 등에서 멈추라! 중독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간괘가 내린 행동강령이다. 그런데 왜 하필 등일까? 우리 몸에서 등은 내가 볼 수 없는 곳이다. 또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외물과 접촉할 때 생기는 탐심은 감각으로 오는 것이니, 볼 수 없고 움직이지 못하는 등이야말로 가장 담백할 수 있는 신체부위가 아니겠는가. 한편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척수는 우리 몸의 가장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어 쾌락의 열기를 식히기에도 알맞다.

‘등에서 멈추면 몸을 얻지 못한다.’라고 괘사에서 말한 의미가 이제야 풀린다. 감각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하게 그칠 줄 알면 몸이 자유를 얻는다는 말이다. 신발이 내 발에 잘 맞을 때 신발을 신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듯이, 등에서 적절하게 멈추면 몸을 잊어버리는 이치다. 그 때 몸의 고통도 번뇌도 자연스럽게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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