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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족의 탄생] 청년 ‘백수’, 결혼하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10-22 16:11
조회 : 255  


이소민(감이당)

동거에서 결혼으로

남친과 동거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까. 만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서로의 집에 인사를 드렸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른들은 물으셨다. “언제쯤 결혼할 것이냐”고. 사실 우리는 이미 동거 중이었다. 결혼식만 하지 않았을 뿐 사실혼인 셈이다. 엄마에게는 동거하기 전 미리 말씀드려 알고 계셨다. 하지만 남친은 아버님께 말할 수 없었다. 남친의 아버님은 엄청나게 보수적인 분이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우리가 동거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오고 싶어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남친은 각종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 나도 종종 누군가 물어오면 일일이 설명하기가 번거로웠다. 친한 친구들에게는 남친과 같이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굳이 남들에게 남친과의 동거 사실을 먼저 알리고 싶진 않았다. 우리끼리는 떳떳했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또 언제까지 아버님께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차라리 결혼식을 하는 게 우리에게 더 편할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결혼하겠다고 말하니 그들이 물었다.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어? 뭔가 이 사람이라는 느낌이 왔어?” 또 친구들과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내가 한 사람과 평생 같이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 정말 그랬다. 사랑이라는 변화무쌍한 감정을 결혼으로 붙잡아 둘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남친과 동거할 때는 언제든지(?) 그만 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금 나를 사랑하는 남친이 변하는 것도 불안했지만 오히려 이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이 달라질까 봐 두려웠다. 결혼하기 전부터 여러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왜냐고? 이제껏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분명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였는데 예상대로 되는 건 거의 없었다. 나는 단순하게, 남친과 함께하는 지금이 좋다는 이유로 결혼도 그냥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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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하게, 남친과 함께하는 지금이 좋다는 이유로 결혼도 그냥 해보기로 했다.

그다음 코스. 우리는 결혼식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고민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결혼식을 올리려면 얼마나 필요한지 아는 게 없었다. 결혼 시장이 플래너에 따라 또 상담하는 사람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혹시나 호갱(호구 고객)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비정규직 알바생인 나와 대학교를 갓 졸업한 남친. 모아둔 돈도 앞으로 벌 수입도 별로 없었지만, 부모님께 손을 벌리긴 싫었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과 여친 혹은 남친 사이에서 힘들어했다. 결혼식 장소부터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것까지! 하나하나 부모님께 확인받아야 했다. 돈 때문에 부모님께 얽매이긴 싫었다. 남친과 나는 가진 게 없어도 우리 힘으로 준비해보기로 했다. 화려한 집에서 마음 불편하게 지내기보다는 9평 원룸에서 자유롭게 사는 게 더 좋았다.

“최소 비용, 최소 노력”의 결혼식

우리의 결혼 목표는 “최소 비용, 최소 노력”이었다. 최대한 평범하게, 형식만 갖추는 것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남친과 나는 저렴하다고 소문난 결혼 박람회장에 도착했다. 최저 결혼율이라는 언론 보도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예비 신혼부부들이 와있었다. 결혼식 준비의 3대 요소는 “스드메”이다.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 각 업체에 따라 가격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남친과 나는 스튜디오 촬영은 스냅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결혼식 당일에 입을 드레스와 메이크업 업체만 골랐다. 기본적인 업체로 정해서 비용은 65만 원! 생각보다 저렴했다. 게다가 우리의 예상 결혼 일자는 감이당 방학인 1월 중순. 마침 결혼하려는 커플이 가장 없는 비수기란다. 그 덕분에 3달 전에 예식장에 갔는데도 원하는 날에 식장 대여료 하나 없이 계약할 수 있었다. 일단 결혼식장과 드레스, 메이크업이 해결되니 막막했던 마음이 개운해졌다.

결혼식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마치 미션 수행하듯 하나하나 해치우고(?)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청담동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다. 왜 거의 모든 웨딩 업체가 청담동에 몰려있는지! 그러다 뜻밖의 장애물을 만났다. 느닷없는 한복이 걸림돌이었다. 우리는 결혼식에서 입을 한복을 대여하기로 했다. 결혼식 전, 업체를 방문해서 미리 입어보며 길이를 재고 어떤 색으로 할지 골랐다. 추천해주시는 것으로 정하고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며칠 뒤, 외할머니께 연락이 왔다.

  새신랑 새신부가, 한복 색이 너무 칙칙하더라~ 내가 원래 하던 데서 맞추면 되는데, 왜 이상한 곳에서 했니?

한복

순간, 억울했다. “할머니가 돈 대줄 것도 아니면서!”란 마음이 올라왔다. 사실 나도 파스텔 톤의 더 예쁜 한복을 입고 싶었다. 대여가 아니라 색도 직접 고르고 내 몸에 딱 맞는 한복 말이다. 한복을 고르며 내 안에 숨겨진 욕망을 발견했다. 나름대로 결혼에 대한 로망이 남들보다 적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막상 하나하나 경험해보니 메이크업도 일반 직원보다 원장님이 해주어야 더 잘할 것 같았고, 드레스도 여러 업체를 돌아다니며 입어 보아야 나에게 더 잘 맞는 것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커플은 최소한으로 준비했는데도 너무나 피곤했다. 백화점, 마트에 가는 것과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결혼 준비 기간은 소비에 대한 욕망을 조절하는 나 자신과 싸움이기도 했다. 그 결과 많은 코스를 줄일 수 있었다. 집도 원래 동거하던 곳에서 살고, 예물 생략, 프러포즈 생략, 결혼반지는 남산골 야시장에서 5만 원짜리로 대체, 한복&턱시도 대여, 신혼여행도 최소한으로 가기로 했다. 총 결혼 비용은 460만 원! 결혼식장 대여료에 결혼식 당일 준비, 신혼여행까지 합친 금액이다. 미리 낸 웨딩홀 계약금 100만 원을 제외하면 더 적게 든 셈이다.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결혼 업체들 속에서 소신껏 준비한다면, 결혼식 올리는 것은 아주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산골 야시장 결혼반지

정신없었던 하루, 그럼에도 얻은 것

결혼식은 정말 순식간에 끝났다. 하나하나 시간 들여 준비했지만, 사람들은 내가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 식장 앞에 꾸며놓은 포토 테이블은 어떤지 1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는 사건 하나. 우리는 남친의 턱시도를 웨딩드레스 업체에서 빌리지 않고 따로 대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드레스 업체의 이모님도 턱시도를 챙겨 오신 것이다. 남친은 전혀 의심 없이 이모님이 주신 옷을 입었고,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결혼 준비하면서 신경 쓴 것들, 우리의 욕망을 일으킨 것들은 식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참, 허탈하고 당황스러웠다. 결혼식을 치러보고 알았다. 화려한 결혼식도 그저 하나의 이벤트성 추억 남기기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결혼식을 치러보고 알았다. 화려한 결혼식도 그저 하나의 이벤트성 추억 남기기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연기처럼 사라진 것들이 있었다면, 기억나는 건 따로 있었다.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준 사람들이었다. 시간 내서 찾아와준 분들이 감사했다. 그들의 마음은 축의금(?)으로도 전해졌다. 마침 결혼을 준비하면서 생긴 아기 덕분에 그런 것일까? 친구들과 연구실 선생님들은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한 푼 한 푼 모아 무려 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선물해주셨다. 아버님의 친구분도 축하한다며 500만 원을 건네주셨고, 아버님께서도 돈을 보태서 천만 원을 만들어 주셨다. 우리는 덕분에 아가를 키울 수 있는, 햇살이 잘 드는 곳으로 이사 갈 수 있게 되었다.

분명 결혼식은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들고, 복잡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와 남친은 그럼에도 결혼식을 잘했다고 의견을 모았다. 결혼식 후,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는 남친과 다투면 자연스럽게 아버님과 시누이들 그리고 연구실 선생님들까지 떠오른다. 수많은 하객 앞에서 잘 살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으니 말이다. 서로의 관계에 조금 더 책임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싸우고 나면 서로에게 ‘그만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동거하기 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의 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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