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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글소식]<내 인생의 주역>썩은 것에서 생성의 향기를 맡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06-10 20:19
조회 : 517  

썩은 것에서 생성의 향기를 맡다



박장금(감이당 금요대중지성)

 

山風蠱

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初六 幹父之蠱 有子 考 无咎  終吉

(아버지의 잘못을 바로잡는 아들이 있으면 아버지의 허물이 없어지고위태롭게 여겨야 끝내 길하다.)

九二 幹母之蠱 不可貞

九三 幹父之蠱 小有悔 无大咎

六四 裕父之蠱 往 見吝

六五 幹父之蠱 用譽

上九 不事王侯 高尙其事

만약 쓰레기더미 옆을 지나간다면 코를 틀어막고 그 자리를 잽싸게 피할 것이다. 헌데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니 내가 쓰레기라면? 아무리 코를 막고 눈을 감아도 썩은 냄새가 온 몸에서 진동하고 썩은 물이 뚝뚝 떨어진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이런 상황을 당황스럽게도 주역은 크게 형통할 뿐 아니라 큰일을 하는 시기라고까지 말한다. 산풍고의 고(蠱)자를 파자하면 ‘벌레(蟲) + 그릇(皿)’으로 음식이 썩어 벌레가 꼬인 모습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고괘 앞에는 수(隨)괘가 있었다. 수괘는 ‘따른다’는 뜻인데 올바름을 따르지 않고 쾌락을 따르면 병이 든다는 것이다. 소동파는 이 병이 갑작스럽게 온 게 아니라 잘 다스려짐이 오히려 병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즉, 잘 다스려짐은 편안함을 낳고 편안함은 즐거움을 낳고 즐거움은 안일함을 나아서 병이 된다는 것.

나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삶에 대한 질문 없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소비하면서 쾌락을 추구하는 게 잘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쾌락을 위해 편안한 삶을 추구했으니 심신이 병들 수밖에. 그렇다고 고괘에서 문제 삼는 것은 병 그 자체가 아니다. 노자 『도덕경』 71장에 이런 말이 있다. “성인은 완벽한 자가 아니라 이 병이 없는 것은 그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니, 이런 까닭에 병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고괘의 형통함은 자신의 병을 병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병을 알았으니 이제 해결하면 되는데 그것을 ‘큰 강을 건넌다(利涉大川)’로 표현했다. 왜 큰 강으로 표현한 걸까. 이유는 고가 하루 이틀에 생긴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패 청산은 적폐 청산이기도 하다. 초효에서 ‘幹父之蠱 有子(간부지고 유자)’ 아버지의 일을 처리할 아들이 있다는 뜻인데 고의 상태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됐음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생활 밀착형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

공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정말 기뻤다. 병든 나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괘 첫 효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幹父之蠱 有子 考 无咎 厲 終吉(간부지고 유자 고 무구 려 종길)아들이 아버지의 적폐를 인식하고 청산을 잘하면 아버지의 허물이 없어지는데 위태롭게 여겨야 끝내는 길하다는 것. 공부하기 전에는 외부 가치 기준과 내가 하나 되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공부를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면서 나를 ‘아버지’와 ‘아들’로 분리할 수 있었다. 예컨대 ‘쾌락을 위해 소비하던 과거의 삶’이 아버지이고 ‘병든 상태를 알아차린 지금의 나’를 아들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초효 외에 다른 효들도 다음과 같은 지혜를 알려준다. 적폐는 오랜 때가 들러붙은 거라 한두 번에 해결되지 않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조급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좌충우돌의 과정도 부패 청산의 의지가 확고하면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의지를 잃고 적폐와 타협할 때 생기니 초심을 끝까지 견지하라는 것.

소동파는 말한다. 그릇은 항상 쓰이고자 하고 몸은 항상 움직이고자 하고 천하는 사계절을 쉰 적이 없다고. 그런데 우리는 자연 법칙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추구하니 그것부터가 이미 반생명적인 삶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큰 환란이 없으면 날마다 안일함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게 소동파의 진단이다. 그러니 부패를 청산하려면 나를 환란(변화)의 장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헌데 밀어 넣기에 앞서 자신이 썩은 지도 모르고 쾌락을 쫓으니 무지가 병이다. 앞서 언급한 ‘병을 병으로 알아야 병이 없다’는 노자의 말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쾌락의 욕망을 병으로 인식하려면 다른 거 없다. 생명의 이치에 반하는 나의 상태를 알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래야 안정이란 판타지 속에서 소비와 쾌락에 중독되어 ‘썩은 냄새 진동하는 나’를 구할 수 있다.

주역은 반전의 텍스트이자 긍정의 텍스트이다. 부패에 이른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알고 치료한다는 것은 얼마나 형통한 일인가. 부패는 끝이 아니다. 나의 부패를 자양분 삼아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구이다. 그것을 알아차릴 때 썩은 것에서 생성의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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