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라는 후배는 교회 오빠를 좋아했다. 수련회 갔을 때 리더십이 강하면서도 팀원들을 자상하게 배려하는 모습에 반했다. 특히 사람들이 이리저리 주차해 놓은 차를, 키를 받아 일렬로 정돈했을 때 B는 교회 오빠에게서 후광을 보았다. 오빠도 B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둘은 사귀기 시작했지만 길게 가지 못했다. 교회 오빠가 아니라 남자친구가 되자 리더십과 자상함과 배려심이 있던 자리에 징징거림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오빠는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리더십 있고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일 것이다. B와의 ‘관계’가 달라지자 다른 모습, 어쩌면 진짜(?) 자신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A와 그 당시 팀원들, B와 교회 오빠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평생 겪고 사는 것 아닐까? 그러면서 그렇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또 하나의 사소한 예는 다음과 같다. 20년 전 캐나다로 이민 간, 한국에 일이 있어 10개월 정도 함께 살게 된 언니는 발에 뭔가를 바른 후 슬리퍼를 신지 않고 다니는지 거실 바닥에 얼룩이 지는데 젊어서는 라식을, 몇 년 전에는 백내장 수술을 해서인지 어떨 때는 가까운 데가 안 보이고 어떨 때는 먼 데가 안 보인다고 한다. (어떨 때가 어떤 때인지는 신만이 알 것 같다.) 어쨌든 자신이 낸 거실 발자국을 못 본다. 그렇게 깔끔하지도 않은 나는 그 발자국이 거슬린다. 그래서 ‘내가, 내가 아는 것보다 깔끔한 사람이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같이 살게 된 언니 말고 다른 언니의 딸인 조카가 5년 만에 캐나다에서 한 달 일정으로 왔다. 그 아이는 언니보다 더 했다. 샤워를 하고 온몸에 로션을 바르고는 수건만 두르고 나와 거실 바닥에 엉덩이로 앉아서 조잘거린다. 조카가 일어나면 바닥에 언니 발자국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넓은 면적이 번들거리는데 거슬리기는커녕 귀엽다. 나는 결국 번들거리는 바닥이 거슬린 게 아니라 언니(와 그 주변부, 또는 언니와의 관계)가 거슬렸던 것이다. 조카가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다.
그런 일들은 대상이 없어도, 혼자서도 일어난다. 어렸을 때는 누가 돈을 줘도 먹고 싶지 않았던 마늘장아찌나 청국장을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그때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사랑이 아니었던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때, 그와 다투고 헤어진 일이, 꼭 붙고 싶었던 시험에서 떨어진 사건이,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반이, 이 길을 걷지 않고 저 길을 걸은 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고 내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었는지 내가 알 수 있을까? 나를 거슬리게 한 것이 언니인지, 언니 발자국인지, 언니에 대한 내 마음인지도 모르는 내가? 나는 이렇게나 불확실하고 명석판명과는 거리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