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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키티와 나의 행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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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03-17 08:16 조회2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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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티와 나의 행복 찾기

신 해 선(감이당)

내 인생에서 3가지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면 첫째 결혼, 둘째 출산, 셋째가 감이당 공부다. 결혼은 나에게 있어 삶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청소하시는 부모님과 가난한 집안 형편이 너무 부끄럽고 싫었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집안의 딸이라는 세상의 평가를 받는 것이 두려워 가능한 한 이 사실을 숨기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초라한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전념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 때문이었는지 비록 결혼 시기가 한참 늦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사람 좋고 직장도 든든한 남편을 만나 번듯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나는 마치 출신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결혼은 삶의 마침표가 아니었다. 결혼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나는 완전히 웃음을 잃어버렸다. 가난했어도 부모님의 지지를 받으며 자유롭게 자랐던 나는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남편은 주말에도 바빴고 아이도 없는 상태에서 남편보다 시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루에 몇 시간씩 시부모님의 말동무를 해드려야 하고 가족이 식사를 꼭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 모두 속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자식 된 도리로 차마 분가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서 적당한 탈출의 시기가 오길 기다리며 참고 참았다. 그러다가 결혼 4년 만에 어렵게 아이를 낳고 그 기쁨으로 잠시 숨을 돌리기도 했지만 회사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체력적으로 감당이 힘든 육아, 시부모님에 대한 불편함 등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어리석게도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지고 나서야 아픈 몸과 육아에 전념한다는 것을 핑계로 비로소 분가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왜 그토록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왜 자꾸 당당하고 용기 있게 내가 원하는 일을 지금 바로 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때를 기다리며 원만히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삶이 고단하기만 하고 항상 결핍 속에 허덕이던 나는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감이당에 접속하게 되었다.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불효자 소리 듣기 싫고, 착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이 ‘자의식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공부하며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남’이 가득한 줄 알았는데 ‘남의 눈치를 보는 나’로 가득했던 것이다. 나는 비로소 내 안에 가득한 ‘나’라는 존재를 덜어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4학기에 읽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인해 극적인 삶을 살았던 안나와 어떻게 살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성장해가는 레빈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처음에 나는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키티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었고 레빈과 함께 성장해 가는 그의 파트너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행동에서 왠지 모를 끌림을 느꼈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악인이 될지언정 위선자는 되지 않겠다.’라며 당차게 주장하는 키티의 단단함이 좋았던 것 같다. 키티는 보통의 우리가 겪는 여러 가지 욕망들 사이에서 때로는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하지만 그 단단함으로 다시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키티가 어떻게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지 그 여정을 함께하면서 키티처럼 나도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내 안에 ‘남’이 가득한 줄 알았는데 ‘남의 눈치를 보는 나’로 가득했던 것이다.

성공한 결혼이라는 욕망 앞에 작아지는 사랑

19세기 러시아의 결혼풍습은 자유연애가 일상화된 현재와는 많이 달랐다. 자유연애란 실질적으로 자식의 경제력이 부모를 벗어나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원활하게 동작 가능한 제도이다. 농업국가인 러시아에서는 경제력이 부모에게 집중되어있었고 산업화된 서구의 자유연애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으나 실질적인 결혼의 결정권은 부모에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교계에 데뷔하여 춤을 추며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결혼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결국 중매결혼에서는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라는 열정이 끼어들면서 ‘감정적인 사랑’과 ‘조건 좋은 결혼’의 충돌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젊은이들은 자신의 사랑을 외면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부모들은 자녀가 무도회에서 허튼 사랑이나 구설수에 빠지지 않으면서 어떻게 좋은 배필을 찾을지 고민이 깊어지게 되었다.

당시 최고의 신랑감은 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신식 기마대 장교였다. 페테르부르크는 상업이 발달한 부와 권력이 집중된 최고의 도시였으며, 기마대 장교는 부를 기반으로 서구식 예법을 익힌 자유롭고 고결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러시아 여성들과 귀족 가문들은 모두 이러한 조건을 가진 신랑감에 열광했다. 18살에 모스크바 사교계에 진출하여 눈부신 성공을 거둔 순진하고 어여쁜 키티에게도 성공한 결혼이라는 욕망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준수한 용모에 세련되고 쾌활한 기마대 장교 브론스키 백작이 그녀의 집에 드나들며 다정한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더없이 기뻤다. 전도유망한 페테르부르크의 젊은 귀공자와의 결혼은 그녀에게 찬란하고 밝은 미래를 선사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키티에게는 오래전부터 호감을 느끼고 있던 다른 사람이 있었다. 상대는 죽은 오빠의 친구였던 시골 지주인 레빈으로 삶에 충실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레빈과 친했기에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이 많았으며 그를 만나면 기분이 즐겁고 편안했다. 그러나 안락하고 즐거운 도시 생활을 버리고 외딴 시골에서 농부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키티는 애써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며 외면해 버렸고 이 판단은 그녀의 엄마인 공작부인의 뜻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때로는 한 사람씩 따로따로때로는 두 사람을 같이 놓고 눈앞에 그려보았다…… 브론스키와 같이하는 미래를 상상하면 그녀 앞에는 곧바로 행복에 찬 빛나는 광경이 전개됐지만레빈과 같이하는 미래는 그저 어슴푸레한 안개에 싸인 듯 보일 뿐이었다.” (레프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 1문학동네, 95)

한편 가정의 소중함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유주의자이자 쾌락주의자였던 브론스키는 결혼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자신이 결혼 의사도 없으면서 처녀를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순수하고 젊은 처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었던 그와의 예정된 파국은 상상 이상의 방식으로 키티를 강타해 버렸다. 키티는 브론스키로 부터 청혼을 받을 거라 굳게 믿고 있던 바로 그 무도회에서 브론스키와 그녀의 사돈인 유부녀 안나에게 동시에 배신을 당하고 만다. 당시 키티는 매력적인 안나를 무척 좋아하여 매일같이 그녀를 만나고 있었고, 안나는 키티와 브론스키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둘은 키티를 무시한 채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으로 다정하게 춤을 추었던 것이다. 농락당한 키티는 그들의 위선과 허위에 심한 고통과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그들을 마냥 욕하고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 자신도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티는 브론스키를 만나면서 뭔가 불편한 허위가 자신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브론스키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의 훌륭한 조건을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예쁜 옷을 입고 애써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결혼이라는 거래에 적극 가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티는 자신의 이러한 모습에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느꼈으며 더욱이 잘못된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해 버린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 그녀는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자신을 비롯한 세상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슬프지는 않아.” 그녀는 마음이 가라앉자 말했다. “그러나언니가 알아줄지는 모르지만 난 온갖 것이 천박하고 역겹고 야비하게만 보여그중에서도 나 자신이 가장 그래언니는 분명 상상도 못할 거야무엇을 보아도 왜 그렇게 천박한 생각만 드는지.” (같은 책, 1권 240~241)

 

키티는 이러한 쓰라린 경험을 통해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저지르는 잘못된 거짓과 위선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오히려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녀는 슬픔과 자책으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지만 진정 소중한 것은 진실한 사랑의 교감이지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지금보다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숭고한 종교적 삶에 대한 표면적 모방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은 키티가 요양차 떠난 새롭고 낯선 독일의 온천장은 그녀에게 기분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키티는 호기심을 가지고 미지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상상하며 지냈다. 그중에서 그녀의 관심을 끈 것은 공작부인 마담 시탈과 그녀의 양녀 역할을 하고 있던 마드무아젤 바렌카였다. 바렌카는 공작부인 마담 시탈의 병구완을 하며 보냈지만 이 온천장에 있는 다른 중환자들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태도로 그들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바렌카는 오직 자기를 잊고 남을 사랑하는 것만이 가치 있는 일이고이것만이 사람을 평안하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한다(같은 책, 1권 422)는 것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키티는 바렌카의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배신과 위선으로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를 느꼈다.

 

지금의 키티에게는 마치 진열되어 고객을 기다리는 상품 같다는 생각까지 들어 부끄럽고 꺼림칙스러운 사교계의 남녀관계를 초월한 흥미로운 생활가치 있는 생활의 본보기가 바로 그녀에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 미지의 벗을 관찰하면 할수록 키티는 더욱더 이 처녀야말로 자기가 평소 마음속으로 그리던 완전무결한 인간임을 확신하게 되고더욱더 그녀와 사귀기를 바라게 되었던 것이다.” (같은 책, 1권 406~407)

 

키티는 마담 시탈과 바렌카와의 만남을 통해 세속적이고 본능적인 생활이외에 보다 숭고한 정신적인 가치가 있으며 이것은 종교를 통해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속적 욕망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던 키티는 바렌카처럼 병자나 죄인, 임종에 이른 불행한 사람들을 도우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낮에는 온천장에 요양 온 아픈 병자들을 돕고 밤에는 프랑스어 복음서를 읽으며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키티는 자신이 그 처신에서 바렌카를 흉내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틈에 걷는 법에서 말하는 법눈을 깜박이는 법까지 그녀를 흉내 내고 있었다(같은 책 1, 423)는 사실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한 마음과 행동이 아닌 남의 겉모습을 따라 하는 모방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키티는 머지않아 자신의 이러한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키티는 가난한 폐병 환자인 화가 페트로프의 가족과 가깝게 지내며 간호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페트로프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기며 그녀를 멀리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키티가 아픈 페트로프에게 베풀었던 친절이 순수한 호의가 아닌 각별한 애정의 표현으로 오해를 받았던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키티가 간호사와 아내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고 환자와 간호사 사이에 필요한 연민과 사랑의 교감을 만들지 못한 채 간호사 흉내 내기에 몰두한 나머지 벌어진 일이었다. 키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난처한 사건을 겪으며 자신의 호의가 순수한 마음의 발로가 아니었으며 더욱이 잘못된 표현 방식으로 인해 말썽을 일으켰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페트로프에게 느꼈던 감정이 자긍심에서 비롯된 동정심과 선행의식에 불과한 또 하나의 위선이었다는 것을 뼈아프게 통감했다. 그녀는 남들에게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존경과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키티는 자신이 동경하던 숭고한 삶이 그녀가 실행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그녀가 진정 원하는 삶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위선이며 자기기만 없이 그녀가 오르고 싶어 했던 그 높은 경지를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걸 통감했다그뿐 아니라 그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슬픔이며 병이며 죽음의 지경에 이른 사람들의 세계에서 압박감을 느꼈다그리고 그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해온 그 노력도 갑자기 고통스럽게 여겨져서 한시바삐 맑은 공기 속으로러시아로언니 돌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옮겨갔다는 예르구쇼보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같은 책, 1권 444)

온천장에 오기 전에 키티는 소중하고 진실한 사랑보다는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부와 명예라는 세속적 욕망에 흔들리는 자신에 대해 혐오와 경멸감을 느끼며 다시는 위선적인 삶을 살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나 그 결심이 무색하게 이번에는 아프고 불행한 사람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겠다고 하면서도 그러한 종교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중요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직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인 욕망과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 번의 아픈 경험은 키티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욕망하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명확히 통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녀는 성녀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허튼 욕망이나 허위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강인함과 현명함을 갖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과거의 슬픔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러시아 집으로 돌아왔다.

교감으로 완성한 행복한 사랑

키티를 잊지 못해 그녀를 찾아왔던 레빈은 그녀의 이런 변화를 즉각 알아챘다. 키티는 예전의 키티가 아니었으며 이전보다 훨씬 매혹적으로 변해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키티와 장황한 설명 없이도 서로 교감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의 울림 속에그 입술과 눈과 손 하나하나의 움직임 속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의미가 담겨 있는 듯 느껴졌다거기에는 용서를 비는 바람도 있었고그에 대한 신뢰도 있었으며부드럽고 수줍은 애교와 맹세와 희망과 그에 대한 애정까지 있었다그는 그 애정을 믿지 않을 수 없었고 행복감으로 질식할 듯했다.” (같은 책, 2권 281)

사람들이 말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상대와 소통하며 교감의 기쁨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키티와 교감으로 충만해진 레빈은 이 교감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전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논쟁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레빈과 키티는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이를 대화로 풀어나간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는 너무 복잡하고 난해하여 가장 중요한 본질을 말하는데 때때로 어려움을 만들 곤 한다. 특히 자신의 마음을 외면한 채 사랑하는 사람의 청혼을 거절하고 다른 남자를 선택했던 여인과 이에 상처받고 미워하기까지 했던 남자가 다시 만났을 때 이러한 복잡한 감정과 사정을 적당한 말로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때 레빈은 복잡한 설명과 질문이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핵심을 담아 단어의 첫 글자들만 적어 키티에게 보여준다.

“‘?’ 그 뜻은 이런 것이었다. ‘언젠가 당신은 나에게 그럴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영원히 라는 의미였습니까아니면 그때는 이라는 의미였습니까?’” (같은 책, 2권 305)

수수께끼 같은 문구를 보여주고 나서 긴장 속에 답변을 기다리는 레빈과 이를 해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키티는 그 뜻을 해석하며 교감하는 그 환희의 시간 속에서 문장 사이사이에 숨겨진 용서와 사랑의 속 깊은 의미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진 키티의 ‘당, 그, 일, 잊, 수, 있, 그, 용, 수, 있.’ 즉, ‘당신이 그때의 일을 잊어주실 수 있다면, 그리고 용서해주실 수 있다면.’ 라는 답변을 통해 둘의 모든 대화는 훌륭히 완성되었다. 단, 2개의 문장으로 둘은 하고 싶은 모든 말, 아니 모든 감정의 소통을 나누며 사랑의 완성을 이루어내었던 것이다.

 

나. 앞. 세. 교. 행. 싶!

키티는 두 번의 큰 성장통을 겪으며 사회적 욕망에 수동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과 교감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마침내 행복한 사랑의 결실을 이루어 내었다. 키티와 레빈의 수수께끼 문장 맞추는 모습은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단 두 마디의 문장으로 그동안의 쌓인 모든 감정을 해소하고 사랑으로 거듭난 그 모습은 말의 양보다 교감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교감이란 나와 타인을 구분 짓지 않으며 서로를 인정해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타인과 세상과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자의식으로 인해 고통받을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나의 문제는 세상과의 불통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나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은 바로 세상과 단절된 채 나만의 관념에 빠져 스스로를 소외시킨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키티에게 끌렸던 것은 바로 키티가 세상과 교감하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해가는 그 과정이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적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미숙하고 실수도 많았지만 아픈 경험을 통해 자신을 풍성하게 만들어 나갔다. 포용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세상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나는 또한 그 행복의 열린 가능성이 부러웠던 것 같다.

그럼 이제 키티를 통해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정답을 찾은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라도 나는 소리쳐 외치고 싶다. ‘나. 앞, 세. 교, 행, 싶!’ (추신. 문제를 푸신 분은 연락주세요~. 우리 함께 밥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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